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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Nov 07. 2020

오늘은 목욕탕 가는 날

일주일 한 번씩은 빼먹지 않고 함께했던 날들

나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항상 내 입에서는 '할머니'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그만큼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람이 바로 할머니다. 내게 엄마같은 할머니는 엄마이기도 하고 할머니이기도 하다. 어릴 적에는 호랑이 할머니로써의 기억이 컸는데, 한번씩 친구라고 하기엔 너무 나이 차이가 많긴 해도 가끔 친구처럼 내게 편하게 대해주시기도해서 내겐 베프(Best-friend)같이 속마음을 터놓을 정도의 사이다. 아마도 우리가 목욕탕을 삼십년간 같이 다녔기에 더 친한 사이가 된건지 모르겠다.


할머니를 떠올릴 때면 목욕탕을 빼놓을 수 없다. 어릴 적 엄마와 이모와 함께 목욕탕에서 추억을 쌓으셨던 것처럼, 할머니는 나와 추억의 공간을 함께 나누고 싶어하셨던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19 영향으로 목욕탕 가는 것도 조심하게 되다보니 같이가는 일도 눈에 띄게 드물어진 편인데다 결혼하면서 떨어져 지내다보니 더 어려워졌긴 하지만.


모든 걸 제쳐두고 매주 함께 목욕다니던 시절이 이토록 그리워질 줄 그때는 몰랐었다. 그래서 할머니께 투정부리듯 짜증을 많이 냈었다. 내겐 시험 시간에는 시험공부를 더 할 수있는 시간이었고, 친구들과 오랜만에 놀러가면 좀더 수다를 떨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평소 보고싶어했던 책과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목욕탕에서 보냈던 3시간을 그때는 무척 아까워했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올라갈 때, 한창 공부하려했던 나이였기에 주말에도 보충학습과 자율학습을 의무상 해야했기에 학원을 나가야만 했었다. 이로 인해 일주일에 한번은 꼭 가야한다는 할머니의 특훈이 내려진 바람에 토요일 하교길은 집이 아닌 목욕탕으로 향했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는 학교마치자마자 바로 목욕탕을 가서 집에서 싸갖고온 김밥을 먹은 후 목욕하고 학원으로 곧장가곤 했었는데,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했던 내 일상이었다. 목욕탕 냄새가 유독 그날 폴폴 풍겼는지 같이 공부하던 친구는 내게 "너, 목욕탕집 딸이었나?"라며 장난처럼 물어본 적이 있다. 지금 내겐 그때의 기억이 엄청난 추억이 되어버렸는데, 그 중심에는 할머니가 있었다.  


새로운 게 하나 없는 매번 보고 아는 풍경, 그 속에서 나는 매주 반복하듯 시간을 할애했던 편이었는데 참 신기하게도 들어갈 때는 툴툴거리며 짜증냈던 내가 3시간이 지나고 나면 몸이 깨끗해지는 만큼 마음이 깨끗해지는 걸 느끼게 되었다. 개운한 기분이 들더니 어느새 마음까지 온기로 풀려있었다. 매번 그렇게 목욕탕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주말에는 목욕탕 가는 것보다 더 재밌는 유혹의 손길이 있었기에 매주 다시 돌아오는 그 시간이 오면 내가 짜증을 부리는 건 여전했었다.


그렇지만 목욕탕에서 할머니가 때를 밀어주시면 나 역시도 가만있지 않고 할머니의 때를 밀어드렸는데, 다툴 일이 생겨 마음이 상했더라도 목욕탕에 가서 서로의 때를 밀어줄 때면 마음을 헤아려보게 됐고 어느 순간 서운했던 마음을 들어내 보였던 시간을 목욕탕에서 보냈던 것이다. 가끔은 목욕탕의 마법이 통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내겐 화해의 징검다리와 같은 곳이기도 했다. 한번은 할머니가 바나나 우유를 사주셨는데, 어릴적에 한번씩 엄마가 사주면 좋아했던 나의 취향을 기억하고 계셨던 것 같다. 그렇게 할머니는 나에게 사랑의 단맛을 보여주셨다.


할머니의 연세가 많아지시면서 어느새 서로의 때를 밀어주는 일은 자연스레 생략되었는데, 나 또한 내 인생에는 절대 없을거라 생각치도 않았던 수술을 겪게 되면서 힘을 주는 일이 어려워지게 됐다. 그래서 마음씨 좋고 팔 힘있는 목욕탕 이모들의 손을 빌리게 되곤 했는데, 때밀이 수건으로 시원하게 밀려나오는 때를 만나는 경외로운 일을 잃게 된 건 내게 아쉬운 일이 되었다. 지금은 추억의 공간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긴해도 향수가 깊든 그곳을 예전같이 함께 편하게 드나들 수 있길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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