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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Feb 08. 2022

제가 자서전 써드릴게요

내가 할머니께 10년 전에, 그리고 5년 전에 했던 그 말이 문득 떠올랐다.


막상 할머니와 함께 지내던 그때는 마냥 그 일이 쉽게만 느껴졌달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던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할머니는 그때 내가 했던 약속을 믿고 기다려주고 계신 건지, 아니면 나처럼 잊고 계신 건지 모르겠다.


특별히 글재주는 없었던 것 같은데, 간혹 한 번씩 성의를 다한 글은 내게 크진 않지 않은 포상을 주곤 했다. 그걸 나는 내게 주어진 유일한 재능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 같은데... 지금 와서 보면 초등학교 때 재량활동으로 선택했던 운문부, 중학교 이후부터 계속 책과 연관 있는 부서나 동아리 활동을 해오며 다른 데는 눈길을 주지 않았달까. 그덕때문인지 크게 다른 재주를 부려볼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할머니가 내 나이였을 그때 그 시절에는 대학 가는 게 참 어려웠다고 한다. 그런 할머니는 나름 명문대로 불리는 D대학의 국문과 학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의 가정형편상 중퇴를 하고 취업을 하셨다고 들었다. 그런 할머니였기에 내가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간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주셨던 것 같다.


십 년 전, 그땐 내가 3학년에 오른 무렵이었다. 할머니와 별반 다를 것 없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할머니의 어린 시절도 패스츄리처럼 이야기 중간에 끼어 듣고 했었는데... 그 와중에 할머니가 '고달팠던 인생이라 내 자서전을 남기고 싶었는데 눈물바다 될까 봐 남길 생각을 못했네' 그런 말을 어렴풋이 꺼내셨다.

 

뭐, 어렵다고. 내가 써드릴게요.


할머니의 인생을 내가 글로 담는다?


처음에는 흥미로웠고, 다음으로 두려웠다. 할머니의 인생을 담는다는 건 참으로 무거운 임무 같았달까. 서기처럼 적는 건 쉽지만 그걸 어떻게 어떤 시각으로 담아내느냐에 따라 어떻게 보일지도 걱정스러웠다. 누군가의 인생을 살펴본다는 게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었다. 그런 생각을 했다가 살기 바빠 그냥 잊힌 말이 되었는데,


3년 전 백수 시절에 다시 시도해보려 했었지만... 언제든 가능하다며 그렇게 미뤘다. 다시 세월에 치이고 잊혔던 그 기억이 결혼을 하고 할머니의 곁에서 떨어져 지내다 보니 가끔씩 할머니의 흔적이 떠오르기도 하고 남기고 싶어 져서 떠오른 것이다. 할머니 옆에 있을 때 좀 더 이야기를 많이 나누며 남기지 못했던 게 막상 후회스러워졌는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한 장씩 남겨보고 싶어졌다.


더 늦기 전에 오래된 약속을 꺼내어 지키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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