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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Oct 30. 2020

소중했던 순간은 또 이렇게,

매번 지나가는 그때가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시간의 굴레

정해진 시간에 맞춰 업무를 넘겨야 했고, 보고해야 했던 직장인으로 살았던 때에는 시간에 얽매여 살았기에 만약 내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정말 소중하게 써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또 했던 날이 있었다.



나는 결혼하기 6개월 전에 미리 퇴사하고 바쁘게 결혼 준비를 해내며 결혼과 동시에 신혼 라이프에 접어들었다. 신혼집은 신랑의 일터에 맞추다 보니 내 일터의 중심은 자연스레 집이 되었다.


코로나 덕분인지 내게는 무한대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렇다 해서 이전부터 꿈꾸며 바라던 온전히 자유로운 시간이 내게 주어진 건 아니었다. 내가 직접 나서지 않고서야 진행되지 않는 집안 살림이야말로 온전한 내 차지가 됐다.


결혼 전에 자취를 해봤더라면 좀 더 결혼을 늦췄을까, 아님 빠르게 척척 뭐든 해내는 베테랑 주부의 삶을 시도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어느새 일 년, 깨 볶을 만한 신혼생활은 깨 위에 물이라도 부웠는지 약간 눅눅해진 채로 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아기와 엄마의 상관관계

허니문 베이비는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었다. 아기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다거나, 부정적인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한 번쯤은 제대로 '나'로만 살아보고 싶었다.


벌써 결혼한 지도 일 년이 됐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임신에 대한 생각과 걱정이 앞서게 되었다. 그래서 요리책도 안 찾아보는 내가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임산부 관련 책을 검색해 뒤적거리기라도 했으니 조금은 나아진 셈이었다. 그렇게 본다 해서 내 꺼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아기를 맞이할 마음이 자연스레 가져질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아기천사가 찾아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거나 피드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되는 일들이 잦아지면서 나도 모르게 내겐 강박증이 생겨나고 있었다. 몸으로 움직이기 전부터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고 머리가 먼저 힘들어했다. 너무 이기적인 걸까. 지금의 내 모습이라면 아이가 생긴 다할지라도 미안해지는 일들이 더 많이 생기게 될 것만 같았다.  


단지 아기를 맞는 엄마의 마음과 태도를 책으로 배워가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더 많은 노력이 오랜 시간 동안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주변에 일찍 결혼한 언니들의 경우만 봐도 열심히 일을 하다가 1~2년 후에 아기를 가졌던 사례가 있는데, 어쩌면 다들 아기를 맞이할 준비기간으로 먼저 계획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내겐 먼 나라 이야기인 것만 같다. 살림만 도맡아 하는 주부생활에도 아직 미흡할뿐더러 한 번씩 게으름이 튀어나와 며칠씩 미뤘다가 집안 곳곳에서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청소와 정리를 하게 되곤 한다. 오히려 내겐 엄마가 될 준비를 하는 시간보다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는 시작한 시간인 것 같다.


어쩌면 아이 엄마로 살거나
누군가의 아내로 살기엔
아직도 나는 어린 게 아닌가 싶었다  


바깥 일하는 남자와 동등한 입장에서, 맞벌이도 거뜬히 해내는 멋진 여자로서의 삶. 나 역시도 그런 꿈을 꾸고 있었다. 비록 타지에 신혼살림 꾸릴 집을 마련했지만, 벌 수 있는 금액의 가치를 벗어나 나도 일을 하는 주부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은 나만의 착각이었던 것 같다. 코로나 때문인 건지, 능력이 부족했던 탓인지, 지역과 내가 맞지 않은 건지, 1년 가까이 강제 휴직을 하게 되었다.


여러모로 사업이나 다른 분야로 일을 하기엔 무리수가 있었기에 한 우물만 파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어려웠기에 멘붕의 시간이 어느새 흘러가버렸다. 일하는 엄마로 자리 잡고 아이를 위해 조금은 안정된 미래를 대비하고 싶었지만 모든 게 물거품이 된 것만 같았다.


아이가 생기면 과연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싶다. 세상을 잘 알고 많이 배워서 현명하고 지혜롭게 키워낼 자신도 없었고 모든 게 처음이고 자신 없어 당황하며 부끄러워할 일들이 생겨날 게 뻔했다. 드라마에서 종종 볼 수 있듯이 왜 나를 낳았냐, 키웠냐는 불만과 원망을 해내는 불효자식까지도 잘 타이르며 보듬어줄 수 있는 부모로서의 아량이 내게 조금이라도 생길지 의문이었다.


내게는 여유가 없었다
[경제적 여유, 시간적 여유, 심적 여유]
 


과거, 현재, 미래

생각하며 살지 않았다. 어떤 문제가 생기든 어렵게 접근하면서 이해하는 방식으로 대하다 보니 뭐든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준비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마음이 받아들일 준비, 제대로 바라보고 알아볼 준비, 어떻게 실행할지 정리할 준비. 어쩌면 준비하다가 시간이 다 지나가버려서 그냥 포기할 때도 수없이 많았다. 그렇게 기억 속에서 잊혔고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집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길 바라는 신랑의 바람을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지만 바로 닥칠 미래에 자신이 없었고 두려웠기에 피해버린 현실이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아직도 어렵고 막막하지만 그렇다 해서 숨이 쉬어져서 쉬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내일 내가 어떤 삶을 살아내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어떤 삶을 꿈꿔볼지 모를 스스로를 막바지로 내몰고 싶진 않았다.


어느 누구든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든지 대신 삶을 살아줄 수 없기에 우리가 마주하는 지금 이 순간은 너무나 소중하다. 우리는 언제 또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겠다. 매일을 마주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안부를 묻는 사이일지라도 서로에 대해, 나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사랑하고 있을까. 홀로 집에 남겨지는 나날의 연속. 함께 있다가 혼자 마주해야 하는 시간들이 찾아올 때면 이에 다시 적응해야만 하는 중에 문득 드는 생각들이 있다.


생각해보면 그리워했던 시간들은
어쩜 모든 순간들이었고
지금 이 순간이다


사진 너머 그리워해 온 빛바랜 리즈시절보다

엊그제 신랑과 함께 무료하게 보낸 주말,

같이 어수선하게 저녁밥을 차려먹던 시간이 더 그리워졌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지금 당신이 무엇을 하든, 어떤 삶을 살든, 어떤 꿈을 꾸고 있든, 이 모든 게 당신이 존재하기에 숨 쉴 수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으면 된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게 아닐지라도 어떤 길을 통해 꿈을 맛볼 수 있을 것이고, 내가 원하는 꿈을 위해 포기한 길에서 맛본 패배를 통해 새로운 도전의 달콤함으로 매일을 견뎌가면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시간이 계속 흘러갈지라도 탓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떳떳한 시간이라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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