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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Nov 01. 2020

가시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내게는 숨겨둔 비밀이 있었다, 가시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말처럼 치명적인 나의 비밀은 이내 밝혀진 듯싶다. 특히, 가장 숨기고 싶었지만 가까이에서 나를 알아가고 당신에게 이따금 보이고 있었다.


가시를 품고 있는 장미. 선인장. 고슴도치 중에서 나는 과연 어떤 가시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걸까...


어젯밤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숨겨뒀던 가시가 다시 돋아나버렸다. 그동안 한 번씩 나조차 참지 못하는 가시가 입 밖으로 튀어나와서 당신의 마음을 쿡, 찌르면 당신의 몰랑한 마음이 짠내 나는 물방울을 내보일 쯤에서야 아차, 하곤 보듬게 된다. 편안한 지평선을 그리는 강처럼 당신의 마음만은 내가 헤아려주길 바랄 텐데 정작 나는 그러지 못했었다.


여자

나름 외모관리에 무심한 탓이 크지만, 거울을 폼으로 보는 건 아니었는지 한 번씩은 멋나게 꾸며도 보고 싶고 누구에게든 예쁜 사람처럼 럼 보이고 싶은 여자였던 것 같다. 당신에게만큼은 당신의 애정이 식지 않기를 바라면서 기분 좋은 냄새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한 편으론 SNS에 올릴 정도로 누구에게 자랑할 만한 이벤트를 기대했다기보다 한 번씩 당신이 날 생각하며 준비하는 고민과 생각의 시간을 엿보고 싶을 때가 생기곤 했던 것 같다. 예쁜 마음에 흔들리는 여자니까.



마음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랄 정도의 시간이 우리 사이를 지나간 아니지만, 내 마음이 무색할 정도로 당연시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당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알아주길, 바라고 있었던 아닌가 싶다. 


사랑이란 머리로 재며 바라는 거 없이 주는 거라고 했지만. 그렇다면 나는 사랑이 아니었을까.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것일까?


어느새 당신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있었다. 결혼 전 우연히 봤던 글에서 '사랑하는 사이에서 서운해지기 시작하면 끝이라고 했다' 서운하다는 것은 상대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바란다는 건데, 당신에게 나도 바라기 시작한 걸까. 단지 당신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는 건지 돈의 크기가 아닌 행동으로 보고 싶었는데 그 역시도 욕심이었던 것 같다. 


가끔 당신의 여린 마음을 한 번씩 콕콕 찔러내는 내 안의 가시가 이내 미워질 뿐이었다. 대화를 통해 입장을 생각해보고 상황을 파악하고 정리한다 생각했었는데 지나서 생각해보니  매번 그 시간이 당신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반성을 자초했던 침묵을 건넸던 게 아닐까.


가시로 돋아난 말의  씨앗이 공기 중으로 던져진 순간. 서로가 알고 있던 진실의 밭은 공허함으로 가득 찬다. 마른 침묵의 시간이 다가오게 되면 서로의 존재는 안갯속으로 멀어지게 될 뿐이었다. '당신은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지금 어떤 생각을 하게 된 걸까...' 내게 실망한 게 아닐까, 나의 가시까지 품어준 당신에게 미안해졌다.



모순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할까. 더 큰 화를 부르기 전에 대화를 통해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속 시원하게 우리 사이를 현재 내가 바라본 시선으로 적나라하게 이야기하고 나면 후련했다가도 이내 복잡 미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예전과는 다른 우리의 모습이 낯설어지곤 한달까. 한껏 품었던 환상을 움켜쥐고 있었던 손을 놓는 순간, 구름 사이로 멀리 멀어져 가는 풍선을 보듯 허무해졌다.


점점 말수를 줄여가는 우리 사이로 가끔씩 수화기 너머를 통해 들었던 당신의 속마음. 일상 속 흥미로운 사건들에서 찾은 흥겨운 숨소리들도 이제는 들을 수 없게 됐다. 매번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했던 방식대로, 또다시 움크려든다.


내게 다가올수록 당신이 다치게 될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가까워지고 싶었던 사이였지만 너무 가까워지면 위험하다는 것을. 우리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는 필요했던 것이었다. 당신이 아파하지 않을 정도로 내가 지켜줄 수 있는 거리.


사진출처

Markus Spiske 님의 사진, 출처: Pexels

Rikonavt 님의 사진, 출처: Pexels
John Finkelstein 님의 사진, 출처: Pexels

Jodi Pelman 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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