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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Aug 28. 2020

머리카락은 가볍지만 질기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보기 싫은 아이러니

 내가 탈모일 거란 생각은 1도 하지 못했다. 머리가 자라려면 상했거나 약한 머리카락을 당연히 빠지는 원리라고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날이 지날수록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티브이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아들이 아버지를 생각해 탈모 전문 병원에 찾아가는 걸 봤다. 두피 하나 심는걸 모 심는 것에 비유하는데, 가격이 꽤나 비싸 보였다. 그래서 대안책으로 가발을 맞추는데 그것만으로 무척이나 행복해하는 모습이었다. '내겐 저런 아들 하나도 없는데 나이가 들면 어떡하나' 그런 걱정이 먼저 들었다.


 '아, 지금부터라도 좀 관리해야겠는데...' 사실 이런 생각을 한 건 좀 오래됐다. 하지만 그렇게 걱정스럽지가 않았었던 탓이다. 미용실을 가서 돈을 좀 투자해봤자 또다시 빗자루 빗같은 머릿결로 돌아와 있곤 했다.


 머리를 감을 때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아프지만, 곧 수건으로 털고 말리고 나면 금세 괜찮다 싶다. 아무렇지 않은 듯 거름망에 한 뭉텅이씩 걸려있는 머리카락을 잡고, 속으로 '여전히 이만큼 빠지네' 인정하며 쓰레기통에 넣어버린다.


 거울을 보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눈에 띌 때면 한 번씩 기름을 묻혀주는 게 유일하게 신경 쓰는 노력이었다. 그렇다 해서 다들 어떻게 관리하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더 이상으로 신경 써주는 게 오히려 악 효과가 생길 것만 같았다. 어차피 드라이하는 게 열을 가해서 더 상하게 할 것이고, 두피 마사지라 해도 어차피 약에 화학성분이 들어가지 않겠는가.


 그런 자기 합리화로 돈도 아끼고, 머리카락의 배출 양도 유지했다. 머리 감을 때만큼은 뺄 만큼 빠지라고 아주 열심히 잡아 뜯는다. 그러고 나면 더 이상 빠지지 않을 거라 굳게 믿으면서.

 욕실 밖에서의 머리카락의 만행은 아주 넘쳐났다. 수시로 빠지는 머리카락은 무시하지 않고서야 매번 걸리적거리는 존재였다. 가끔 살갗에 떨어지는 머리카락이 성가시긴 해도 오감을 발휘해 찾아내 제거할 때면 속 시원해지는 기분은 이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매 순간 바닥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을 볼 때면, 청소 강박증에 시달리는 내겐 엄청난 고문이나 다름없다. 욕실에 다시 들어서는 순간 방금 전만 해도 머리카락을 완벽히 제거했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욕조에, 벽면에, 거울에 붙어 약 올리는 이것은 다리에 붙어 피 뽑아 먹는 거머리 같아서 빨리 떼네고 싶어 졌다.


 "제발 그만 좀 보자." 숨 쉬는 공기 중에 계속 떠다니는 건지, 아님 투명망토로 숨겨둔 그늘 혹은 물건 뒤에 숨어있다 슬그머니 움직이며 숨바꼭질을 시도하는 건지, 내가 모르는 채 달고 다녔던 건지, 끊임없이 내 눈 앞에 떡하니 나타나는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졌다.


 심지어 가벼운 무게 덕분에 욕실 천장에 붙어 있는 그를 발견하곤 했는데, 욕실에서 머리카락을 없애기 위한 노력 덕분에 물을 시도 때도 없이 퍼붓는 바람에 욕실 바닥과 구석에는 균이 붉게 생겨나는 걸 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 덕에 정해둔 욕실 청소일자는 매번 앞 당겨지곤 했다. 어쩌면 머리카락 덕분인 건지, 냄새에 민감한 청결 주의 성격 때문인 건지, 신혼집의 장점이었던 화장실 2개는 오롯이 내 몫이 되어버렸다.


  어째서 발견하게 되는 머리카락의 길이는 매번 길었다. 짧은 걸 하나도 보지 못했다. 밖에서 일하느라 항상 바쁘고 지쳐있는 신랑을 생각하면 묵묵히 집안일을 수행하는 게 당연한 가정주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실 청소가 너무 하기 싫어서 미루고 미뤘다가 하곤 한다.


 미리 담당을 정했어야 했는데, 이미 늦어버린 타이밍에 숙명인 듯 받아들이고 있다. 화장실을 두 곳을 청소할 때면 어디 숨어있다 나오는지 끊임없이 둥둥 떠다니다 또다시 어디든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머리카락 덕분에 물을 사정없이 퍼붓지만 물 붓는 만큼 시간을 흘러가서 만신창이가 되어 욕실 밖으로 나오곤 한다. 일종 머리카락과의 전쟁이라고나 할까.


  어디서든 잘 붙어있는 머리카락은 머리 두피로써 찰 썩 같이 딱 붙어있어 주면 좋겠건만, 그의 가벼운 무게 덕분에 지금도 어김없이 마주하게 되는 고혹한 대면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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