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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Sep 10. 2020

오징어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말라가는 중, 원하지 않는 식습관, 결국 내가 자초한 일



중고등학생 때만 해도 날씬한 친구들을 보면 마냥 부러웠던 시절이었다. 나름 대학교 입학 때까지 통통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던 내가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건 단순한 스트레스 시작된 체형의 변화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에서부터 인지 알아서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내가 잘 먹는 게 보기 좋아 보이셨는지 볼 때마다 먹는 걸 권유하며 잘 챙겨주시는 할머니와 함께 사는 덕분에 살은 쉽게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운동을 따로 챙겨서 하는 편은 아니었던 고로 나는 운동을 하고 싶어 하면서도 운동을 하지 않았으니, 지금 와서 든 생각은 내가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운동을 좋아한다고 얘기하며 살아온 것 같다. 하지만 내 주변에 있었을 운동을 진짜 좋아하고 즐겨한 사람들은 이미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도 몰랐던 내가 좋아하는 취미에 대한 내용이다. 물론 거짓말은 아니다. 내가 좋아한다고 착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물론 운동을 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라면 시간도 없거니와 어떤 일이든 습관화하는 길들임이 낯선 탓이다.


이런 내가 아주 습관화된 행동이 생겼는데, 이건 "안 먹는 것"이다. 단순히 귀찮아서 그런 걸까? 먹는 게 즐겁지 않아서일까? 이에 대한 이유는 나조차 알 수 없다. 어느 순간부터 안 먹는 게 너무 편해졌다. 다이어트를 따로 할 필요도 없고 체중에 대한 압박도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다. 오히려 안 보다가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살이 빠진 것 같다며 신기해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칭찬처럼 생각하고는 속으로 우쭐대며 아무것도 안 했는데, 살이 빠졌을까, 그런 의문에 들기도 했다.


몸무게가 중요하단 생각이 들지 않으면서부터 체중계 위에 올라갈 필요가 없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5년 전부터 목욕탕에 갈 때마다 궁금해하고 재보던 습관은 사라졌다. 군더더기 살이 찌지 않는 것, 날씬한 게 아가씨 때는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내가 결혼을 하면서 달라졌다.

악습관이었던 "먹지 않음"이 진정 내게 도움이 안 됐던 것을. 간섭할 사람인즉 내게 애정이 있는 사람인 것이었다. 결혼을 통해 독립을 하고 나니, 내게 입는 것, 먹는 것, 자는 것으로 잔소리나 이야기해줄 사람이 없어졌다. 처음부터 이런 생활이 당연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매우 편했고 금방 익숙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점심을 먹지 않는 것, 점심시간이 내게 처음부터 없었던 듯 눈 깜박하면 지나가 있었다.


'아이를 가져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무렵, 매번 날 만날 때마다 너무 말랐다는 할머니. 할머니가 걱정이 되셨는지 본인도 쉽사리 지어먹지 못하던 보약을 덜컥 지으러 가자며 내 손을 끌고 한의원에 가셨다. 의사 선생님께 잘 좀 지어달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 숙여 부탁하셨다. 쑥스런 마음에 일주일 내로 택배가 도착했다.


밥을 잘 먹지 않던 습관의 영향이었는지, 약도 제때 챙겨 먹지 않다 보니 밀려지고, 어느 순간 밀린 숙제처럼 먹었다. 그탓에 효과를 보지 못했다. 약을 받았을 당시에 아직은 아기를 가지기엔 이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완강했다. 그래서 약빨이 걱정됐던 탓인지 미뤘으리라. 지금 와서 든 생각은 할머니께 필요한 약 한 첩이라도 지어드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죄송스러운 마음이 컸다.


가끔 다리가 후들거리기도 하고, 움직임이 많은 탓에 새끼발가락의 뼈가 변형되는지 통증이 가끔 느껴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밥 잘 챙겨 먹어야지!' 하면서도 다음날 점심시간이 되면 다시 밥보다 집안일을 하거나 개인적인 시간을 선택하게 되었다.  




'아이를 가지려면 지금 몸무게에서 5~10kg는 더 쪄야 될 텐데요, 아이를 들려면 손목 허리에 힘이 많이 들어갈 텐데...' 걱정스러운 말을 내뱉던 한의사분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지금부터 잘 먹어도 살이 찌기나 할까. 운동을 하는 게 힘든데 근력이 생기기나 할까. 어제 미루던 일이 오늘 미루는 일이 되었다.


문득 거울을 바라보니 다리가 바짝 마른오징어 한 마리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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