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지협 Sep 10. 2020

갑자기 남편이 아프다고 한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일이라 덜컹 겁부터 난다

열이 난다며 내게 울상이 되어 쳐다보는 얼굴, 눈이 붉게 충혈되어 쳐다보는 초점은 흐리다. 오늘 하루도 참 고생 많았나 보다. 힘든 하루였구나 싶다.


내색 한번 안 하고 묵묵히 제 할 일 해내는 사람이라 특별히 걱정하지 않았었는데, 요즘은 부쩍 지친 기색이 엿보인다. 억지로 묶은 고무줄이 시간이 지날수록 삭아가며 풀리는 셈이었다. 그가 겨우 묶어둔 노곤한 일상에서 빚어낸 사건의 감정들이 꾸역꾸역 몸에 쌓여있다가 몸살 기운으로 열을 뿜어내는 듯싶다.


"속병 나겠다. 말 좀 해요."


약만 주면 먹고 조용히 잠들면 순순히 가라앉던 화기가, 쉽게 가라앉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냉동실 속에서 빼낸 얼음팩으로 열을 투박하게 좌우로 움직이며 오분마다 옮겼다. 새벽 두 시, 나도 잠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이라 머리 위로 얼음장을 올려놓고 잠들었다.


다행히 아침엔 열이 내려있었고, 막막했던 시간은 그렇게 지나갔고, 애쓴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아프면 남편이 해줄 수 있는 건 많아도 남편이 아프면, 나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돈도 부족하고 운전도 못하고 몸도 약하니 메리트랄 게 없다. 그건 매우 속상하면서 미안한 일이었다.


이런 나와 같이 사는 남편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척척 뭐든 시원하게 해내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그가 속으로 답답했던 적이 분명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곤 했다.

늘 변함없이 내 옆에서 든든하게 버텨주고 믿을 구석이 되어주는 그가 아프다 하니 간호밖에 해줄 수 없는 내가 무척 초라하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그가 내게 아낌없이 베푸는 사랑이 몸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신랑 #아플때 #간호 #몸살 #감기 #건강 #부부


매거진의 이전글 오징어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