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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Aug 26. 2020

나는 고꾸라진 돈나무입니다

언제부터였을까


 돈나무가 갑자기 쓰러졌다.

하늘로 뻗을 만큼 잘 자라던 돈나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집에 있는 나무는 총 5개다.

그중 2개는 행복나무와 돈나무, 나머지 3개는 미니 선인장이다.


 행복나무와 돈나무는 식물을 사랑하는 시아버님으로부터 선물 받았고 나머지 3개는 신랑에게 생일날 선물 받은 녀석이다. 돈나무에게 도니라는 이름을 붙여줬었다. 식물을 잘 키울 자신은 없었지만 잘 키워서 보여드리고 싶었다.

 

 도니는 물을 곧잘 받아먹던 아이였는데, 며칠 전 물 주려다 고개를 땅 아래로 푹 숙이고 있는 걸 발견했다. 놀란 가슴에 줄로 고정도 해보고 영양제도 급하게 투여해봤다. 그건 일시적인 방책이었을 뿐이었다. 지나고 보니 소용없는 행위였던 것 같다.


 돈나무는 가지를 크게 두 갈래로 뻗어가고 있었는데, 좀 더 풍성하게 자라던 가지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 신랑의 모습을 대변하듯 잘 자랐었다. 문제는 그 옆에서 소심하지만 조금씩 잎을 내보이던 가지와 이파리였다. 한 번씩 잎갈이었는지 떨어져 있는 걸 보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영양제를 투여했었는데, 쓰러지기 전에 이파리가 떨어진 가지가 말라있는 걸 봤었다. 얼른 물도 주고 햇빛도 주고 바람을 쐬어줬었다. 마치 나 같아서 안쓰러웠다.



 

 결혼하면서 타지로 이사를 했고, 원래 타지 생활이 원래 만만치 않은 건지 취직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던 중에 코로나가 터져 일자리를 구하는 게 더 힘들어졌다. 화려한 결혼식이나 호사로운 신혼여행을 보낸 건 아니었지만 검소 절약하고 신중히 선택해서 알차게 준비했던 신혼살림이었다. 부모님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의지가 됐고 생각보다는 수월했던 것 같다.


 하지만 소소하게 살림의 빈틈을 채워가야 했다. 없으면 불편하고 있으면 부담스러운 살림의 부피. 그러면서 전에는 드물었던 소비가 늘어났다. 온라인 쇼핑의 늪에 빠진 듯이 매일 시간 날 때면 핸드폰 쇼핑 사이트를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나를 구입해도 몇 군데의 사이트를 들려 가격도 성능도 구분해서 구입해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몇 백 원이라도 할인해서 느끼는 만족과 바꾸곤 했었다. 그렇게 이게 '없으면 시간이 더 들 것이고 몸이 힘들어질 것'이란 생각으로 하나 둘 샀던 물품들. 내겐 필요했지만, 없어도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은 비상금으로 조금씩 사다 티 안 나게 살림에 보태곤 했다. 과소비하는 아내로 보이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 해서 신랑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기에...


 "코로나 바이러스 19", "수돗물 유충 사건"과 같은 사건들이 생겨났다.

 겁부터 났다. 그리고 가족들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지금 아니면 안 된다. 꼭 필요하다! 앞으로 구입하기 더 힘들어질 것이기에 지금 꼭 사야만 한다. 는 명목으로 구입했다. 샤워기 필터, 마스크는 그렇게 내 인생에 있어 필요한 것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한 순간이라도 없으면 안 되는 물품으로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여자이기 때문에 필요한 물품도 분명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쇼핑으로 끝낸 경우도 허다했다. 하지만 할인하는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영영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었다.


 한 번씩 꾹꾹 마음속으로 눌러 담아뒀던 위시리스트에 담겨있던 쇼핑 목록 속 물품들을 모두 구입할 수 있는 돈이었다. 그걸 포기하고 구입해야만 했기에 나 역시도 아까웠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적도 있다. '내가 너무 오버하는 건가?' 마치 착한 아이 콤플렉스 같은 것에 걸린 게 아닌가 싶은 착각도 들었었다. 수입은 없는데 이유 있는 지출로 나 자신을 설득시키고 이해시켜서 했던 행위들이었기에 무리한단 생각이 가끔 들었으니까. 하지만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내가 해야 할 도리는 하고 살아야지 않을까." 그래야 마음이 조금 편할 것 같았다. 그렇게 그동안 짬짬이 가족들을 위해 또는 우리를 위해 유용하게 썼던 비상금은 끝내 바닥을 보였다. 그러던 중에 돈나무를 발견했다. 돈나무를 바라보니 자신에 대한 허탈함과 허무함으로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고 고개 숙인 나를 발견하는 듯싶었다.




 줄도 영양제도 아무 소용이 없었는 것 같아 신랑에게 분갈이를 부탁했다. 분갈이한 도니는 오히려 더 불안해 보였다. 역지사지, 역전된 위치였다. 작은 잎이 매달린 가지는 억지로 서있었고 무성한 잎은 땅속으로 빨려가듯이 아슬아슬하게 붙어있었다. 가지까지도 곧 떨어질 기세였다.


 다음날 내 손으로 아래를 파헤쳤다.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에, 끝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뿌리가 하나도 없는 나무, 뿌리는 어디로 간 걸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우리의 뿌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했던 걸까...


 풀이 무성한 잔디에 고이 묻어주고 왔다. 씁쓸했던 팔월의 어느 오후였다.  


※ 다육이 염좌 : 다육 식물 중에서 염좌가 부자가 되는 다육이 중 하나라고 합니다. 본글에서 의미하는 돈나무는 금전수가 아닌, 돈나무로 여기고 키워온 다육이 염좌가 돈나무로 지칭되었음을 정정해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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