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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Feb 10. 2022

폰에서 빠져나온 오후 3시

커피 한 잔과 파운드케이크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 되면, 숙제와 시험에 치여하지 못했던 것들을 해야겠단 생각에 첫날부터 왕창 써 내려가던 나였는데... 3일이 지나면 언제 결심을 했었냐는 듯이 내겐 너무나 관대한 나를 보게 된다. 문제는 이것이다. 그 넓은 관대함이 방학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는 것.


방학이 끝났다. 그러면 다시 바쁘게 굴러가는 굴레 같은 일과에 치여 잊고 지내면서도. 가끔 생각나는 리스트들을 곱씹어보면서 방학을 기다린다. 때가 되면 꼭 해야 하는 것들을 억지로 해오면서 나 자신과의 적절한 합의를 통해 너무 어렵거나 힘든 건 가끔 눈 감아주곤 했다.


그렇게 성인이 됐고, 직장인이 됐고, 백수가 됐고, 아줌마가 됐다. 뭐 그렇고 그런 하루가 모여 무의미한 인생이 된 것 같다. 백지장 같은 지금을 살펴보면서 또다시 먹고 자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백수가 된 지, 3개월째가 되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뭐 먹고살아야 할까. 코 시국에 일할 만한 데나 있으려나, 날 받아주는 데는 있을까? 신랑에게 용돈 받는 건 생각지 않는 편이라, 용돈벌이도 시급하면서 집 한 채 사기도 벅찬 세상이라 돈 벌 궁리를 손 놓고 지낼 순 없달까.


뉴스를 볼 때마다 늘어가는 코로나 감염자 수에 놀람과 더불어 밖에 나가면 감염될 것 같은 기분으로 세상과 담쌓고 사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느려지는 반응속도에 겁이 나기 시작한 것 같다. 가끔씩 유튜브를 켜보기도 하고 인별을 열어보기도 하는데.


오늘 유튜브에서 만난 그 여자가 잠자고 있던 나를 건드렸다. 나와는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세상과 붙어 싸워도 이길 것 같은 패기가 있는, 한마디로 똑소리 나는 아가씨였다. 일찍이 세상 밖으로 나가 부지런히 시간을 잘 써먹는 그런 사람. 세계로 나가는 포부로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부럽기도 하고 잠시 심쿵했달까.


집 밖으로 못 가면서 맛 들인 모바일 쇼핑에다 신용카드의 실적에 발 묶인 신세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핸드폰을 손에서 놓기가 참 어렵지만 오늘은 모처럼 폰을 손에서 놨다.

 

나야 뭐 늦은 인생이지만... 늘 그랬듯이 하다마는 그런 건, 올해라도 좀 던져버리고 새롭게 환골탈태하고 싶어 졌달까. 벌써 2월이다. 1월에도 느꼈듯이 올해도 이렇게 지나가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 불안감이 몰려왔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조금씩 변하는 나를 만나보고 싶었다.


오후에 차 한잔을 곁들이며 브런치의 맛에 취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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