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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Feb 24. 2022

안경 하나 구입하기도 참 어렵네

처음부터 잘못이었나, 변덕스런 상황때문이었나

핸드폰을 가진 할머니에게 우리는 카카오톡을 깔아드렸다. 문자 적는 건 어려워하셨지만... 다행히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사용 보낸다거나 받은 글이나 영상을 공유하는 정도는 몇 번의 연습으로도 충분히 해내셨다. 


아주 가끔씩 잊어버리셔서 다시 알려드리곤 했었지만, 처음에 스스로 카카오톡으로 이모티콘을 보내셨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말로 다 할 수 없다. 아직 내가 아기 키워본 적이 없다 보니 확실한 감정으로 비유할 순 없겠지만, 아마도 아기가 첫걸음마를 뗄 떼 부모가 느끼는 감정과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그 정도로 기뻤고 즐거웠던 할머니와의 카카오톡 대화가 몇 달 전부터 잠잠해졌다. 카카오톡을 통해 공유하는 게 유일한 취미이자 즐거움이었던 할머니였기에 갑자기 걱정이 됐다. 문제는 밤이 되면 눈이 깜깜해져 글이 잘 보이지 않고, 그래서 그런지 보기 싫어졌달까. 


걱정이 돼서 집 근처 안경점에 같이 가서 시력검사를 해서 안경을 새로 맞췄다. 그리고 할머니는 새로 맞춘 안경을 꼈지만, 계속 살이 빠지다 보니 얼굴살까지 빠져서 그런 건지 안 그래도 작은 얼굴에 안경테가 자꾸 흘러내려 제대로 껴보지도 못했다. 


억지로 안경점으로 모시고 갔던 게 문제였던 건지. 돈벌이 없는 손녀에게 의지하는 게 미안하고 빚진 것 같아 겁이 나셨던 건지. 마음에 들지 않는 안경테였던 건지. 어디서부터 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처음부터 맞지 않는 그릇이 달그락거리듯이 한 번씩 내게 안경 이야기를 꺼내놓으셨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께서 안경점에 찾아오셔서 새로 안경 맞추신다고 하셨는데... 저희 안경점 안경이 아닌 걸 가져오셔서 저희 집에서 맞췄다고 그러시네요. 


아침부터 난감한 연락을 받았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달까... 맘에 안 드는 안경을 바꾸고 싶어 하는 할머니의 마음보다, 할머니의 노화 증상이 빨라진 게 아닌가 싶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누구보다 총명했고 사리분별 잘했던 할머니라서 그런 걱정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생각한 대로 이해하고, 

듣고 싶은 대로 듣고,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위한 우기기


그런 게 아닐까?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아이들이 떼쓰는 것처럼. 아이와 다르게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 든 어른들 세대는 우리가 보기엔 갑질과 같은 행동 같을 수도 있지만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기 때문에... 속히 지 않기 위한 작은 발버둥 같기도 했다. 


아직도 100%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지만, '혹시나..., 어쩌지?' 그런 마음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익숙한 안경테를 가져갔었다. 안경점에선 렌즈 굴절에 문제가 있다며 안된다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었다. 그렇게 갑자기 선택했던 안경테도 문제였을 수 있겠지만, 기껏 심혈을 기울여 맞춘 '렌즈'는 안경테에 따라 탄생하기 때문에... 안경테가 맘에 안 들면 제 값어치를 하나도 못하는 일회성 쓰레기 같은 존재가 돼버린달까. 렌즈만을 위해 지불한 몇 십만 원이 허공에 날아간 기분이 들어 허무해졌다. 


이해심 많은 사장님의 배려 덕분에 사건은 일단락 마무리됐지만, 오해와 오해 사이에서 아직도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다. 행방 묘연한 안경도 찾아내야 하니까 말이다. 

 

옛날에는 어떻게 그렇게 쉽게 테도, 렌즈도 선택했던 건지... 처음에 갑갑하던 안경에 시간이 흐르면 눈이 맞춰졌었는데... 할머니에겐 그런 쉬운 일이 그리 쉽지 못한 것 같았다. 적응력이 떨어진 할머니에게 적응해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아주 조금 실감해가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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