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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Mar 01. 2022

60대 아버지의 두 번째 직장

가장 가깝고 친숙하지만 힘든 환경에서 공존해야 하는 곳



나의 아버지는 작년 여름에 명예퇴직을 하셨다. 첫 직장에서 아버지는 몇십 년간 바닥부터 성실히 배우며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가며 직장 내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하며 부서를 옮기는 어려움을 감수하며 명석한 두뇌로 빠른 적응을 해내셨다.


아버지는 가장의 무게로 집에선 힘든 내색 한 번 안 하셨고, 노조 사태에서도 묵묵히 맡은 업무를 일당백으로 해내며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셨다. 직업 특성상 마음 편히 가족끼리 가까운 데 놀러 한 번, 여행 한 번 가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울 따름이었다. 잠조차 편히 못 자신 게 한이 되신 건지, 퇴직하시고 나서는 오전, 애매한 오후 시간이나 식사시간에도 잠을 주무시고 뒤늦게 식사를 하시는 습관을 가지게 되셨다.


그게 걱정스러워 말씀드리려다가도, 늘 잠을 잘 자라며 조언해주시던 아버지의 말이 떠올라, 잠 주무시는 시간을 이해하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며칠 전에 아버지께 오래간만에 연락드렸더니 출근을 하신다고 수화기 너머로 멋쩍은 듯이 말씀하셨다. "경비원으로 출근한다."


젊은 날에는 노동도 하셨지만 몇십 년간 사무관리직으로 종사하셨다 보니,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통보에 내심 놀랐었다. 그만큼 아버지가 어려운 결정을 하셨구나 싶었다. 축하드리기보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달까. 순간 사회초년생 시절의 내가 생각났고, 퇴사 후 이직할 때의 그 마음이 떠올라 아버지의 걱정과 불안을 보듬고 싶어지는 마음을 담담하게 표현했다. "한 번 해본다고 생각하세요."


나 역시도 구인공고를 볼 때마다 다른 직종의 일을 살펴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하는데,... 막상 어렵게 들어가면 힘겨운 상황을 통해 고배를 마시기도 하고 새로운 일을 찾아보기도 하다 보니 혹여나 그런 일이 생겨나면 어렵게 시작한 용기 있는 도전이 무색해질까 봐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바로 축하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서 장문의 톡을 보냈는데, 평소와 다르게 장문의 톡으로 답을 주셨다.




구인공고를 보던 나처럼 해보고 싶은 일은 많지만, 거의 뽑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 듯한 경력, 자격증과 학력, 나이 등 다양한 조건으로 많은 능력을 요구하다 보니 쉽게 다른 꿈을 선택하기도 어려우셨던 건 아닐까. 나이 들면 직업에 대한 선택의 폭은 당연히 좁아지고, 무엇인가에 익숙해지는 것도 어렵다. 쉽사리 새로운 직업을 선택하는 건 어려우셨을 것이기에... 아마도 아버지는 수개월 동안의 고민 끝에 현실에 타협하신 것 같다.


'혼자 살면 적게 들겠지?' 하는 생각이 잘못된 것처럼, '2~3명 사는 집'에서도 상상 이상의 생활비가 드는 걸 몸소 겪어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가 퇴직 후 기초 생활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드실 테고, 할머니께도 매달 보태드리는 생활비와 보내드리는 용돈의 무게 또한 꽤 무거우시지 않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걱정은 말아라, 아빠가 다 알아서 한단다." 


늘 그렇게 이야기하시며 드시고 싶은 건 안 드시며 지갑 안에 아껴뒀던 5만 원을 결혼한 딸에게 차비하라며 꼭 챙겨주시던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야 알아간다. 하나밖에 없는 딸인데 참으로 무심하단 생각을 해왔던 지난날, 그게 속상해 끝내 아버지 앞에서 터트렸던 지난 여름날의 눈물은 아버지를 울렸다고 할머니가 전해주셨다. 직장 생활할 때도, 결혼해서도, 용돈 한번 제대로 드려본 적 없는 불효 막심한 딸이라 죄송스러울 뿐이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아보련다...!"

나의 자랑스러운 아버지는 실업급여 수급기간 종료 한 달 전에 구직에 성공하셨다.  


"사람이 일이 있어야 되더라. 일을 하다 안 하니까 힘드네." 이렇게 말하셨는데, 몇십 년간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시간은 보상은커녕 1년도 아닌, 6개월 만에 다시 일터로 나가시게 됐다.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 쉼보다 다시 일을 선택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에, 타의로 쉬면서 당연히 누릴 시간이라 여겼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달까.




아파트를 지키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들 중에서도 가장 가깝고 자주 보게 되는 사람은 경비아저씨. 우리들의 아버지가 경비원이 되셨다. 하나의 아파트에는 여러 동으로 이뤄져 있고, 수많은 주민들이 머물며, 각기 다른 사람들로 이뤄지는 가정에서는 매일 다양한 일들이 생겨날 것이다. 먹고 쉬고 잠자는 가장 중요한 생활공간을 지켜주는 사람. 우리의 아버지가 해야 하는 일을 경비원이 해주고 있다. 임금을 주는 만큼 일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들 하지만, 한 번씩 잊힐 때마다 사건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걸 보면, 세상에 보이지 않는 갑질과 횡포가 여전히 존재하는 듯싶다.


관리는 매우 쉬워 보이지만 총괄해야 하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각 가정에서 꺼내놓은 재활용품을 분리수거 날 총정리하는 것도 전문업체에서 하기보다 경비원이 한다고 한다. 불법주차를 살펴보는 것도 경비원이 하는 것 같다. 어쩌면 아파트 환경 조성을 돕는 건 아주 부수적인 역할이지 않은가? 경비지키는 행위로 보안을 담당하는 경찰과도 같은 일을 지칭한다. 감시자와 같은 업무지만 이외 일이 더 많아 보이는 건 왜 일까.


아파트 설비를 책임지는 기술자나 관리자가 따로 있겠지만, 경비원에서 관리인으로 명칭을 바꾸기로 결정됐다는 어느 언론의 대안을 뉴스로 접할 때, 관리인으로 부르며 여러 잡다한 일들도 시키는 주민들이 있다고 한다. 도움을 요청하는 게 아닌, 본인의 편의를 위해 누군가의 지위를 이용하는 참으로 몹쓸 행위이지 않은가 싶다. 이렇듯이 다양한 고충이 있어 우려스럽지만, 한편으론 주변에서 열심히 일해 주시는 경비원분들을 볼 때마다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던 걸 떠올려보면 우리 아버지들도 참으로 멋진 일을 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곁에는 누군가의 아버지가 자식처럼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


3개월의 수습기간 동안 아버지의 숨은 능력을 하나씩 찾아가시길, 그리고 이제는 진짜 행복을 찾는 시간으로, 가족이 아닌 본인만을 위한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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