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하고 싶은 말이 문득 떠올랐던 날들이 있었지만... 하루를늦게 시작할 때는 금방 해를 보게 되는 바람에 저녁 준비로 정신없었고, 일찍 시작할 때도 미뤄둔 집안일들이 차례로 줄을 서는 바람에 쉽게 글을 적을 생각조차 하는 게 힘들었다. 오랜만에 글을 쓰다니 꿈만 같고 숨통이 조금 틔이는 것 같다. 늦은 밤, 이른 새벽을 넘은 시각이지만 기여코 몇 자 적어본다. 오늘이 지나면 또 꺼내기 힘들 것 같아서.
요즘 토요일마다 기다리는 친구가 있다. 토요일마다 모바일로 공개되는 '며느라기'라는 드라마인데, 그 드라마를 보면 머지않은 내 앞날이 될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고 속상해지다가도 "잘 살고 있다"라고 스스로를 응원하게 된달까. 며느라기야말로 3년 차 며느리 입장에선 속사정 다 알고 속마음까지 나누는 친구처럼,묵은 속 뚫어주기도 사이다 같다가도 서글픈 마음을 수프같이 몽글하게 데워주기도해서 기다리는 시간조차도 무척 설렌다.
며느라기는 며늘+아기의 옛말, 며느리를 귀엽게 부르는 말이자 '시댁 식구에게 사랑과 이쁨을 받고 싶은 시기'를 의미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현재 진행 중인 것 같다가도 과도기를 겪는 기분이 드는 어디쯤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사춘기 같은 단어이거니 싶다가도 이유모를 감정에 가슴 한쪽이 찡했다.
결혼 이후 달라지는 가족관계에 대해 결혼식날까지도 생각해본 적 없었던 내게 이후 닥쳐올 전개야말로 안전벨트 없이 몸소 겪게 되는 모든 상황과 감정들이 사회생활보다 더 복잡하고 심난하게 느껴졌기에 쉽게 금방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어쩌면 내가 너무 예민한 게 아닐까?" 하면서 가끔씩 신랑에게 상황과 고민을 나눠보지만 크게 동요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받는다기보다 속 좁은 사람처럼 비칠까 봐 걱정스러웠다. 무엇보다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줄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파악이나 개선적인 조언을 원했으나 괜히 터무니없는 고민만 늘어놓는 것 같아 이런 대화는 서로에게 무의미하단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누구에게든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어
결혼과 함께 생겨난 가족들까지 생각하고 챙기기 위해 노력하는 게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열심히 해내는 거라고 여기며 지금까지 애써왔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사랑받고 싶어 했던 어린 날의 내가 삼십 대를 넘어갈 무렵 그건 나의 욕심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혼을 통해 자연스럽게 관계 정리를 하게 됐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 상대도 생각해주지 않고, 내가 주는 관심만큼 상대가 주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Give and Take.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다는 공식이 현실에선, 특히 사람 관계에선 언제나 성립하진 않는다는 걸 말이다.
"며느라기 같이 볼까?" 신랑이 먼저 권유했었다. 내가 쉽게 속마음을 나누는 편이 아닌 줄 알기 때문에 같이 처음 겪는 결혼 후 생활과 변화를 같이 맞이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다. 물론 가끔씩 혼란스러운 감정이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게 '며느라기 2'였다. 며느라기에 이어 2로 갈수록 좀 더 감정선을 디테일하게 다뤄준 덕분에 상황에 몰입하며 내 마음을 살짝살짝씩 내 비추곤 하면서 속으로 신랑이 내 입장에서 봐줬으면 했었다.
며느리와 사위
시누이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시어머니는 장모가 됐고, 사위가 생기셨다. 장모님 사랑은 사위라고 하지만 아주 미묘하게 느끼는 차별 아닌 차별은 서운하지 않을 수 없달까. 며느리인 내게는 "우리 식구"라며 편하게 생각하시는 듯이 대하시는 편인데, 사위에겐 "손님"이라며 매무새도 음식마저도 조금 더 신경을 쓰시는 듯했다. 특히 같이 나누는 밥상 반찬에서도 엿보이는 사위사랑일까. 내게는 단 한 번도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좋아하는 과일이 뭔지, 물어봐주신 적이 없었다. 늘 시댁에 가게 되면 신랑 그늘에 파묻혀 신랑이 좋아하는 음식이나 과일을 준비하시고 꺼내 주시는 걸 보며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걸 느끼며 씁쓸해지곤 했다. 한 번은 내가 좋아하는 걸 말하던 신랑의 이야기를 듣던 시어머니는 처음 듣는 말인데도 불구하고, "그걸 좋아하는구나"라는 말 대신, "ㅁ서방도 그거 좋아하는데..." 이런 말을 하셨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시댁에 가면 아버님과 어머님이좋아하시거나 시누이가 좋아하거나 신랑이 좋아하거나 하는 음식 위주로 먹어왔다.
그중에서도 잡채,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 잡채를 유독 사위가 올 때 자주 내놓은 시어머님. 결혼한 이후 두어 번밖에 맛보지 못했는데 말이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보지 않는데 말하는 것도 억지스럽고, 관심도 없는 사람 앞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셈인 것 같아 뻘쭘해지는 상황이 싫어 아예 꺼내지 않는 말이다.
'며느리와 사위'는 바깥 가족으로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래 한 가족인 것 같으면서, 가끔씩 손님으로 여겨지도 하는데 이는 무엇으로 형용하기 곤란하달까. 딸 같은 며느리는 없다. 딸같이 친절하고 살뜰한 며느리를 바라시는 것이리라. 며느리는 자식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처럼 대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지는데, 이건 자식 이상일 필요는 없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잘하면 당신도 잘해주겠지?
그런 생각에서부터 시작한 나의 노력이었다. 언제부턴가 그건 나만의 착각이지 않을까 싶었다. 무조건이라는 건 없었고, 나와 같은 마음은 아니었단 걸 조금씩 느끼게 됐다. 공평하지 않았다. 챙겨주시는 마음이 감사해서 받으려고 했지만, 단지 자식을 생각해 챙겨주려는 부모의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내게 주어지는 건 나의 취향이나 의사와는 상관없이 주어지는 물건들이 종종 있었는데, 언제였는지 필요하지 않은 건 말할 권리가 있고 표현할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건 괜찮아요, 어머니" 그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 내게 속상했는지 한 번은 "그냥 별말 말고, 챙겨주는 거 가져가면 다 쓸모가 있단다~" 이렇게 말하시며 극구 챙겨가라는 엄포를 내리셨다.
꿀 먹은 벙어리
맞는 말이다. 가져오면 쓸모 있는 경우가 더 많다. 무엇보다 챙겨주시는 부모님의 마음이 귀중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작게나마 누군가를 위해 챙김을 해보고, 시간을 할애하며 마음을 써보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 줄 알기 때문에 힘들 수 있는 부모로서 가지는 의무와 같은 짐을 조금 덜어드리고 싶은 마음도 한편에 있었다. 다 큰 자식에게 내 뜻대로 해라는 말이 통하지 않듯이 며느리도 사위도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내 자식도 어찌 못하는데 남의 자식이면 오죽하겠나 하며 넓은 마음으로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가족과 가족 사이에서 생기는 서운하고 헛헛한 감정을 쉽사리 표현하지도 못하고 공감받지 못하며, 내겐 관심이 없지만 나는 무단히 관심을 가지고 전전긍긍 애써야 하는 매사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고충은 결혼을 통해 나타났다. 자랑스러운 며느리도, 사랑스러운 아내도 아닐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로 존재하기 때문에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식을 생각하는 고슴도치의 마음처럼 그 곁에 머물러야만 하는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우리들도 가끔은 살펴봐주면 좋겠다는 생각...
물론 오늘의 이야기가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남을 수 있고.
또다시 섭섭한 마음을 부여잡고서 펜을 들게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 며느리들은 각기 다른 시월드를 만나게 되다 보니, 누군가는 더 곤란하다거나 반대로 더 행복하다 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멜랑꼴리 한 일들로 인해 감정의 시소를 타게 될 것이니, 덜컹이는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멘털도 마음도 잘 부여잡다 보면 이내 하늘도 주변도 바라보는 여유를, 이 모든 게 아무렇지 않은 일반적인 일들일랑 여기는 담대함을, 자신을 위해 챙겨보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