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후 시작된 거리두기
우리 사이에 거리두기가 시작된 게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다른 연인들이나 부부가 함께 하는 시간보다 떨어져 지내는 개인 시간을 더 갈구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콧방귀를 꿨었다. 우리 사이에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지금 와서 보면 무슨 배짱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한심스럽게 여겨지는 과거의 나였다.
혼전동거, 시험관 아기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한 건 불과 석 달 전의 이야기다. 결혼 후 3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전혀 우리 앞에 펼쳐질 문제들에 대한 조짐조차 느끼지 못했달까... 단지 3년이 고비였다. "결혼 3년 차에는 임신소식을 들려줘야 하는 게 며느리의 도리인 건가?" 싶을 정도로 이뤄 말할 수 없는 중압감 때문에 견딜 수 없는 서글픔에 휩싸여 하루 반나절을 통으로 보내기 일 수였다.
무의미하게 보내는 시간들이 모여, 달력을 한 장씩 뜯을 때마다 '아, 올해는 그냥 이렇게 보내는 건가?' 싶어서 눈뜨면 도착하는 내일이 무서워졌다. 매일이 설레고 행복할 거라고 꿈꿨던 2년간의 신혼생활이 허무맹랑하게 지나가버렸고, 허겁지겁 나의 정체성을 찾으려 부단히 노력 중이다.
버리는 게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제법 모인 살림살이에 익숙해져 크게 변화를 주지 않고 지내다 보니 살림을 처음 시작할 때처럼 잔손이 많이 가는 일은 제법 줄어든 편이었다. 그렇다 해서 집안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계절마다 시기마다 애정을 가지고 손봐주고 교체해야 하는 것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식단 메뉴에 대한 고민은 매일 어김없이 찾아왔고, 사다둔 재료 소진을 위한 레시피를 찾아 벼락치기 검색으로 요리하는 습관이 생긴 덕분에 요리 솜씨는 여전히 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늘어난 건, 이유모를 속상함이었다. 어디서부터 생겨난 건지 모르겠다. 무엇이 그렇게 맘에 안 들었던 건지... 가장 가까운 가족이지만, 나를 위한 노력이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것. 그게 다였다. 매 순간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입이 뾰족 튀어나와 숨길 수 없는 나의 장난 같아 보이는 삐짐 때문에 그다음 날이 되면 나조차 난감하고 부끄러워졌던 날들도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냥 자면 되잖아."
그 말이 어찌나 차갑게 들리던지 모르겠다. 갑작스러운 복통과 두통으로 어지러워 눕는 것조차 힘들어했지만 그게 보기 싫었던 건지, 신경 쓰였던 건지 방에 들어가길 권유했다. 날 생각해서 하는 말일지 모르겠지만... 나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마음이 1도 느껴지지 않는 것. 그게 다였다.
'당신이 뭘 알아?' 왜 내가 그런 기분이 들었던 건지 알고 싶지 않은 그 사람의 모습에 더 이상은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그조차 그랬을지 모르겠다. 침묵은 우리 사이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언어다. 그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침묵을 깨는 게 어려웠다. 아무렇지 않게 말을 다시 하고 받아들이면 내가 했던 제스처는 그냥 해본 장난이 될 것 같아서.
그는 늘 먼저 말을 건네 왔지만,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물어보는 일이 없었다. 무거워지는 공기를 견뎌내지 못하는 것 같았고 나도 일부러 눈감아 버렸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차곡차곡 적금처럼 쌓이고 있는 것 같달까. 나도 모르게 만기가 앞당겨질까 봐 무서워, 둘이 달리는 차 안에서 억지로 고민을 꺼내 보일 때도 있지만 그는 똑같았다.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단지 나는 항상 그를 믿어야만 했고 지금도 믿을 수밖에 없다.
우리 사이에 새롭게 생겨난 문제는 '아기'였다. 결혼 초부터 그는 아이를 가지고 싶어 했고, 나는 그런 가정적인 모습의 그가 좋았다. 단지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막상 아기를 갖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고, 우리는 흔히들 부르는 난임부부가 됐다. 쉽게 찾아오지 않는 아이. 나는 아기를 갖는 것부터 키우는 모든 것이 걱정스러웠고, 주변에서 건네는 "별 신경 쓰지 말고 지내다 보면 생기게 되더라.", "때가 되면 찾아올 거야.", "막상 생기면 다 키우게 되더라. 아직 안 급해서 그래. 불통 튀면 다 하게 된다." 그런 말들에 위로도 공감도 안되니까 더 겁나고 포기하고 싶어 진달까.
아이들과 놀러 나가는 동네 부부를 볼 때면 부럽다가도... 부모님들께 인정받아 아기 없이도 둘이서도 알콩달콩 잘 지내는 부부를 볼 때가 더 부러웠달까. 내 맘대로 안 되는 내 삶인지라, 본인의 인생에서만큼은 승리자가 되어있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고 한없이 부러워하며 지내는 나 자신이 얼마나 작고 형편없게 느껴지던지. 그는 모를 것이다. 입 밖으로 꺼내기엔 낯 부끄럽고 답답한 속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그는 알아주길 바랐고, 알리 없는 그에게 괜한 심통을 부렸던 것이다.
우리 사이에 아이가 있어도 만약에 없을지라도 괜찮다 했던 그의 말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일까, 그게 불안한 게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천생연분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가 가진 아픔까지도 감싸 안을 수 있다고 여겼기에 지금껏 큰 바람 없이도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가치관은 희생이 아닌 배려였던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소중히 여겨주는 마음.
전문가처럼 당당하고 자신 있던 첫인상에 비해 생각보다 해본 게 별로 없는 나와 뭐든 해보는 걸 좋아해 주는 그였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만의 시간만으로도 행복하게 여겨왔기에 우리 사이의 거리두기가 가끔은 낯설었던 것이다. 거리두기는 필요했다. 많은 부부들이 거쳐온 거리두기의 시간은 어쩌면 상대를 생각하고, 나 자신을 위하는 시간이었으리라.
내가 나를 감싸 안아줄 시간이 필요했던 것. 그런 나를 가만히 두는 방식으로 나를 이해하는 것을 표현하는 게 바로 그였다. 그의 배려 안에서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 그게 우리 사이의 거리두기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