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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Mar 15. 2022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나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

남들보다 생각도 행동도 결정도 빠르지 못한 편이라 늘 나는 내가 가진 것들 중 하나를 포기하거나 양보해야만 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쉽게 찾았던 방법이 '밥 먹는 시간'이었다.


중고등학생 때는 잠이 많아 일찍 잠드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야자시간을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시작했었고... 대학생 때는 점심을 과자로 때워가며 과제를 하기 일 수였고, 회사원 때는 점심시간에 간단히 김밥이나 라면으로 때우면서 업무를 봤었다. 그런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며 말 한마디씩 건네주는 이들도 있었으나 분명 뭘 그렇게까지 애쓰냐는 식으로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시선도 있었으리라.


내가 하는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할지라도 나만의 방식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엄청난 결과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타협점이었기에 묵묵히 나만의 방식을 지금까지 지켜왔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자연스레 백수가 됐고, 전업주부가 됐다.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하는 매우 어렵고도 중요한 역할이지만 보수가 없는 전업주부. 즉, 돈벌이를 잃은 상태에서도 여전히 나는 이와 같은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한번 발을 드리니 끊을 수가 없었다. 술도 담배도 아닌 굶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나는 어쩌면 어릴 적부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간헐적 단식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우쳤는지 모르겠다. 가장 쉽고 편리하게 시간을 벌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게 나를 괴롭히는 식습관이 되어버렸고 나를 가장 후순위로 두는 행동이 시작이었단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밥 드세요.


신랑은 내가 걱정이 됐는지, 항상 밥시간이 되면 정확하게 연락을 해준다. 메뉴를 알법한 사진과 함께 하는 말이다. 처음에는 '내가 무슨 애인가?'라는 생각으로 받아들였으나 그냥 하는 말은 아니었었다. 이렇게 밥을 권유한 지 벌써 6개월이 넘었고, 하루는 그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일부러 식사시간에 맞춰서 연락하는 거라고 했다.


그나마 연락을 받은 지 한두 시간이 지나서야 억지로 라면밥이나 간식처럼 챙겨 먹게 된달까. 하루 한 끼라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몇 달을 보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기 전에는,


속이 쓰린 건지 꾸르르, 소리가 나다 속이 쓰리다가, 뱃가죽이 내장과 붙은 느낌이 들다 보니 뭐든 넣어줘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과자를 하나 집어 먹거나 두유 한 팩을 들어마시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엔 배에 구멍이 뚫린 같은 기분이 들었다. 통과하는 기분이랄까.


하루 한 끼는 맛있게 먹자.


신혼 초에는 신랑에게 아침마다 밥상을 차려줬었다. 결혼 전에는 할머니 덕분에 집에서만큼은 거의 영양소를 고루 담긴 밥상을 먹었던 터라, 나보다 제대로 못 챙겨 먹었을 신랑을 위해 열심히 챙겼던 것 같다. 많이 먹은 건 아니지만 그가 갑작스레 늘어난 체중으로 아침은 간단히 먹고 싶어 하는 눈치였던 터라 간소하게 두유 한 팩으로 바꿨다. 그러면서 나는 그와 함께하는 하루 한 끼, 저녁식사는 가장 많이 그리고 맛있게 먹게 됐다.    


얼마 전 먹고 싶었던 분식을 날 잡고 왕창 주문했다 평소처럼 먹었는데 내키던 음료를 자꾸 들이켰던 탓인지 그새 줄어든 내장 때문인지 금세 배가 불렀으나 꾸역꾸역 먹은 탓에 배탈이 나서 혼쭐이 났다. 그 순간

낮에 간혹 느끼는 몸을 관통하는 듯한 텅 빈 기분이 머릿속을 쓱 지나갔다. 갑자기 어디서 본 적이 있었던 건지, 들어본 건지 위궤양, 위암 등 이런 단어들이 떠올랐다.


그릇


예쁜 그릇을 보면 할머니가 떠오른다.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하나씩 사다 놓은 그릇인데, 웬만하면 배운 사람처럼 예쁘게 담아 먹어라고 하셨다. 예쁜 그릇을 보면 정성스레 담아 먹고 싶어 진달까. 이후 딱 그 순간이 지나 점심이 찾아오면 그새 귀찮아, 라면을 찾고, 과자를 찾고, 빵과 커피를 찾으며, 대충 먹고 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었다. 나를 챙기지 않는 것. 그러면서 점점 몸이 망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무서워졌다. '아직 젊은데 뭐,  한 끼 정도 안 먹어도 별 탈 없지.'   


누군가 그랬다. 집밥을 먹으면 힘이 난다고, 어릴 적에 먹은 음식에 대한 기억 때문에 행복한 거라고.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밥은 살아갈 힘을 준다. 내일의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그리고 지나가는 오늘이 행복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위한 밥을 차려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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