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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Jul 19. 2023

기억하지 못하는 게 어쩌면 다행인 걸까

나의 외할머니는 안경을 두 가지로 착용하셨다. 돋보기와 그냥 멋 내기식으로 색을 넣어 눈을 보호하는 시력 안경을 끼다가 다초점안경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나는 함께 동행했고 늘 그녀의 곁에서 안경테 구입 값은 흥정을 하며 안경알 값은 온전히 드리는 그런 상황을 지켜보며 자랐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장사를 하셨고 그래서 내가 봤을 때는 택도 없는 가격을 먼저 제시하는 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장님들은 그런 할머니의 말에 따라 순순히 가격을 조율해 주신다는 사실이다. 나라면 택도 없을 일이다. 그런 할머니는 내게 있어 보증수표와 같은 인물이었다. 할머니만 곁에 있으면 뭐든 어떤 상황이든 프리패스가 되는 그런 존재감.


그런 할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졌고, 나는 나를 가장 예뻐해 주시던 할머니의 따스한 손길이 그리운 순간들이 매번 찾아온다. 발행하려다가 머뭇거리게 되는 이유는 눈물을 동반하는 글이라는 것이다. 내가 쓰고 있는 #꽃할머니병동일지는 단 한 번도 눈물 없이 적은 적이 없다. 그 정도로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쓰는 것이기 때문에...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다른 일들을 모두 제쳐두고서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마음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기 전에 남기려는 나의 필사적인 몸부림과 같다.

기억은 소중하다. 그리고 휘발한다. 때론 며칠 묵힌 양말 냄새처럼 코끝을 찡하게 만들다가도 심장을 나대게 하는 기분 좋은 향수와 같이 은은하게 곁에 제법 오래 남아있기도 한다. 모든 기억이 좋고 행복할 수는 없지만 기억으로 불리는 추억의 힘은 정말로 크고 위대하다.


그런 기억을 관리하는 게 우리에겐 뇌다. 뇌가 건강해야 한다는 걸 간과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도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건강을 챙기려 노력하던 부지런한 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지고 뇌수술을 하고 마음대로 움직이거나 말하거나 생각해내지 못하는 걸 보니 가슴이 먹먹하다.


그녀는 불과 1년 전, 어쩌면 3년 전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결혼과 동시에 그녀는 흔히 독거노인이라고 불리는 가족구성원으로 지내게 됐다. 나는 오히려 그녀가 혼자 있음으로써 더 많은 도움과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고 워낙 똑소리 나는 분이라 안심했었다.


눈이 침침해졌고 다리가 후들거렸고 뭘 먹어도 입맛이 없다며 변비와 설사를 약처방에 따라 번갈아 아침저녁으로 화장실에서 사투를 벌이며 그렇게 지내오던 무료하고도 나약한 그녀의 일상이 반복되고 있었음을 이제껏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는 노인이었고 꾸준한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했던 것이다.

무심한 세월이 흐를수록 흐릿해지는 기억만큼이나 그녀는 사진에 대한 애착도 없었다. 전에는 카메라를 찍으려면 포즈를 취해주시던 그녀가 몇 년 전부터 내가 들이대는 카메라에도 시큰둥한 표정만 보일 뿐이었다. 사고 후 요양원에 가서도 여전했다. 시큰둥하다가도 애잔한 그 눈빛이 불현듯이 떠오른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걸까? 그녀는 수술 후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걸까?

뇌출혈 이후 3개월이 지나가고... 그동안 그녀는 수술직후 담당의사 선생님의 소견처럼 그렇게 빠른 인지능력을 회복해내지는 못하고 있다. 어쩌면 그런 척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의심도 해보지만 한 편으로는 완벽하게 기억해 내고 현재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할머니와 같은 상황에 있던 분들 중에는 인지가 완벽히 돌아온 이후에 우울증 증세가 너무 심해서 퇴원조치가 이뤄진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어쩌면 지금이 할머니는 그나마 마음이 덜 힘들겠다 싶었다. 몸도 힘든 데 마음까지 힘들면 어떻게 살아갈까.


할머니는 스스로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을 테고, 나는 지금의 할머니도 사랑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나의 사랑스러운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일상 속에서 중간중간 끄집어내 이렇게 적어보고 있다. 할머니가 멀리 여행을 가신 건 아니고 다행히 숨을 쉬고 회복이라는 말보다는 버텨내고 있는 지금에 감사하지만 함께 지내왔던 나의 울타리이자 친구 같은 인생멘토 할머니의 잔소리가 무척 그립다.


영원히 보관할 수 있는 저장소가 우리에게도 있다면, 아니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행복한 기억도~ 불행한 기억도~ 소중하고 좋았던 기억, 밉고 화났던 감정 섞인 기억까지도 우리는 계속 가져갈 수도 없고 점점 잊혀 간다. 할머니에 비하면 한참 어린 나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지워지는 기억들을 느끼고 있다.


어쩌면 나는 64GB밖에 안돼 부수적인 SD카드가 필요한 입장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늘 이렇게 적고 남기느라 시간의 할머니가 많은갑 보다... 남들이 봤을 땐 허송세월을 보낸다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겐 이 모든 행위가 소중하니까 말이다.


그녀와의 추억이 언제까지 내 머릿속에 그리고 가슴속에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초고화질로 문득문득 꺼내지는 중이지만... 나 역시도 닳아서 그런 건지 처음에 비해서는 조금 담담해졌는데, 그래도 아직은 현실 자체를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갑갑하다가도 심장이 울렁거리곤 한다.


결혼하기 전의 내 삶에서 할머니의 비중은 99.7%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이기에 할머니를 빼놓고는 말할 게 그다지 없었고 할머니는 내 삶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사람이었다.


정신적 지주나 마찬가지였던 할머니의 역할 부재는 이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젠 물어볼 수도 없고 이야기를 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단지 할머니께 말할 준비, 기쁜 표정과 용기를 전할 담력을 가지는 연습만이 필요할 뿐이다.


일부러 나도 어른이라고, 이젠 아이 아니라고,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보여드리려고 묻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그토록 총명하던 할머니가 기억을 잃어가고 있었음을 눈치채지 못했었고... 1년 전 우울증 증세로 방문한 병원에서 발견된 할머니의 초기 치매증세를 듣고 나서야 왜 통화하면서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는지를 이해하게 됐었다.


우리 사는 대로 살자.

할머니가 요양원 입소하실 때 처음 신랑과 찾아뵌 날. 심심한 응원과 위로의 말을 열심히 꺼내던 내게 해주셨던 말이었다. 그 이후로 정확한 말을 제대로 들어보진 못하게 됐지만. 여전히 할머니는 내게 존재만으로도 위로 그 자체였다. 그 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됐고 힘이 됐는지 모르겠다.


인생이 무너져 버린 것 같이 느껴졌던 순간에 할머니는 내게 괜찮다고, 위로를 해주셨다. 내겐 아낌없이 줬던 그녀에게 나는 뭘 해줄 수 있을까.



#기억 #추억 #할머니기억 #노화 #요양원 #위로 #할머니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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