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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Jun 17. 2023

삶과 죽음 사이에 있던 당신을 나는

어떻게 한 걸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살면서 최고로 잘한 선택입니다


함께 같이 살지는 못하지만 매일 아침, 저녁으로 전화라도 하면 저의 빈자리를 조금이라도 덜 느끼실 거라고 생각해서 시작했던 전화통화. 어디 여행으로 타지에 놀러 가거나 데이트를 할 때마다 맞춰둔 당신과의 통화시간 알람은 신랑의 눈치를 보게 만들 때도 했고 모든 행동을 멈추고서 폰을 찾아 전화를 걸어야만 하는 반의무적인 통화시간이었지만 어쩌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게 더 컸던 나날들이었습니다. 그게 쉽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이제 와서 보면 그때 내가 당신을 생각했던 행동이 당신에게 성가신 행위였거나 나를 더 그립고 생각나게 만드는 자물쇠 같은 게 아니었을지... 혼란스러운 감정이 여전합니다.


벌써 할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진 지 100일 하고도 5일이 더 지났네요.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밥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챙겼던 아침저녁 통화가 사라지고 나서 어색할 것 같던 그 시간이 온전히 신랑과 같이 티브이를 보면서 저녁을 먹거나 마실 다니는 시간으로 바꿔 있었고. 통화시간 알람은 약 챙겨 먹자는 알람으로 변경해 둔 상태입니다. 신랑은 약도 잘 안 챙겨 먹으면서 왜 그렇게 맞춰뒀냐고 핀잔을 주지만... 저는 이렇게라도 할머니와의 시간을 남겨놓고 싶은가 봅니다.


가끔은 할머니와 저의 연결고리였던 아침과 저녁 통화시간이 시시콜콜하기도 하고 형식적인 인사말로 채워지기도 해서 무료하단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1시간 가까이 할머니의 투정을 듣고 나는 그걸 진지하게 대하는 그런 고민상담의 시간도 가끔 있었기에 보이지 않는 정서적인 애정과 위로 전해지기도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영원한 일과가 돼 있을 것 같았던 그 시간이 순식간에 한 순간의 사고로 이토록 제 삶을 흔들 줄은 몰랐으나 아직도 저는 할머니와의 저녁통화시간 8시 20분부터 30분까지 계속되는 전화연결음으로 불안과 걱정이 결국 요양센터장님의 도움으로 확인된 후 전달받게 됐죠. 할머니는 위급한 건강상태였으나 자리가 없다는 병원들의 입장으로 인해 두세 군데를 거쳐 마지막으로 진찰받은 의료원의 응급실에서의 할머니 상태는 이전처럼 대수롭지 않게 위험한 고비를 넘긴 듯 보였어요. 그래서 한 고비를 넘어가나 보다.... 그렇게 일단락 지을 뻔했는데.


뇌출혈로 판정받고 나서 잠시는 별문제 없이 알아보고 대화했다지만... 상태는 급격하게 나빠져 수술까지 하게 됐어요. 그렇게 중환자실을 거쳐, 일반병실, 요양병원으로 이렇게 이관하게 되는 상황까지 오게 됐네요...


할머니, 저는 할머니가 감감무소식일 때 느꼈던 불안함 안에서 늘 얘기하셨던 "나는 자는 잠으로 가고 싶다."는 할머니의 신조를 저버리게 만든 게 아닌가 싶어 혼란스럽습니다. 저야말로 할머니가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가 없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늘 우스갯소리로 제게 '이 어린 걸 두고서 눈을 어찌 감겠냐'면서, '혹여나 그런 일이 생겨도 너무 울지 마라'시고, '공기 좋고 아름다운 곳이면 훨훨 날아가련다...' 그런 말들을 하셨던 게 떠올랐어요.


제가 의사도 아니고 신도 아니지만 저는 할머니와 매일 아침저녁으로 전화해 온 이유로 할머니의 삶과 죽음 사이 경계선에서 당신을 이끌 수 있었습니다. 한 끗 차이였다는 게 더 맞는 말이 될 것 같네요. 할머니... 저는 지금도 후회는 없습니다. 그리고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은 소중한 것니깐요. 우리의 인연도... 현생에 함께 하는 그것이 얼마나 숭고하고 귀한 것인지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고통만큼은 제가 어찌 다 알겠습니까... 단지 추측으로 느끼는 감정이겠으나 헤아릴 수 없는 수치심과 자책감, 속상함은 이뤄 다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일 것 같습니다. 워낙 깔끔하고 스스로 해야 만족하시고 본인이 하나라도 더 움직여서 챙겨주고 싶어 하는 낙으로 살던 당신의 인생 전반을 봐왔으니... 이해가 될 법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그게 당신과 내 앞에 펼쳐졌습니다. 여전히 한 달에 한 번의 만남뿐이지만... 가끔 보는 그 얼굴은 제게 눈빛으로 말하는 듯하지만 주로 외면하는 시선에 슬픔이 느껴집니다.


묵언수행처럼 벌써 한 달간 말이 없으시니... 도대체 알 수 없는 당신의 기억과 감정에 어떤 말을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괜한 고통을 전가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죄책감을 느끼곤 합니다. 예능 프로그램을 잠시 볼 때도 웃다 보면 티브이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가 갑자기 분리되면서 거슬리는 증상. 아마도 아픈 당신을 병원에 두고서 웃거나 행복하면 안 될 것 같은 죄책감에서 느끼는 감정인 것 같아요.

그나마 가끔 이렇게나마 할머니 당신을 잊지 않기 위해 기억과 추억을 떠올리면서 적는 글과 시간이 있기 때문에 제겐 위안이 되곤 합니다. "저... 기억력 안 좋은 거 아시죠?" 그래서 이렇게 적어둬야 해요. 할머니가 워낙 산전수전 다 겪으셨다 보니 제가 자서전 써드린다고 호언장담했었는데... 아직도 못 적고 있네요. 제게 예전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들 많이 들려주세요. 제가 이번에는 진짜 적어드릴게요! 할머니의 이야기도 정말 많이 그리워요.. 할머니 치매증상 상태 살피려고 일 년 간 녹음했던 파일들을 감히 들을 수가 없네요. 할머니의 목소리와 이야기는 그립지만...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질 것 같아서.


이번 주부터 오전, 오후로 조금씩이라도 재활하신다고 들었어요. 이모에게 오늘 전해 듣기로는 토요일에도 하신다는 기쁜 소식을 모처럼 들었네요. 의지로 말할 것 같으면 세계 최고로 투철한 우리 할머니에게도 기적같이 건강을 회복하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그래도 무리하진 마세요~ 이렇게 살아있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니까요...


할머니도 살고 싶으셨던 거죠!?
함께하기 위해 노력해 주시는 거 맞죠?


할머니 옆에 있지는 못하고, 워낙 막무가내 멋대로 천방지축 손녀딸이지만 그래도 예뻐해 주셨던 만큼 저는 할머니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응원하고 기원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할머니 오늘도 건강합시다! 아셨죠?


#할머니힘내세요 #응원합니다 #사랑합니다 #할머니생각 #꽃할매병동일지 #손녀일기 #뇌혈관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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