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결혼 10년 차이고 만으로 8년 전 엄마가 되었다. 처음 엄마가 되었을 땐 어디선가 걸려온 아기 관련 전화에 '어머님'이라는 호칭이 너무도 어색해 닭살이 돋았었다. 이후로도 아파트 앞 학습지를 홍보하는 분들이 "어머니~ 여기 좀 보세요" 하면 애써 시선을 회피했다. 누가 봐도 여기 지나가는 이 '어머니'를 부르는 게 맞는데 나는 마치 어머니의 세계는 전혀 알지 못하며 당신들은 사람을 한참 잘못 봤다는 무심한 표정을 지으면서 후다닥 지나갔다.
하지만 가는 세월을 막을 방도가 없어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을 외면하기엔 내 얼굴과 행색이 너무도 솔직해져 버렸다. 그렇게 나는 이제 어머님임을 세상 사람들에게 온몸으로 표현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내 옷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바지들을 하나씩 개어서 정리하는데 이것들 모양이 하나같이 비슷하고 색깔만 미묘하게 다르다. 바로 '맘핏진'이다.
출처 : 국민 브랜드 ZARA, 가격은 55,000 원 통일.
일단 밑위가 긴 하이웨이스트로 '어머님'께서 현재 짧은 다리를 최대한 커버하고자 일말의 노력은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전체적인 라인이 벙벙해서 어떤 부분도 나의 라인을 드러낼 필요가 없으며 애플힙 따위는 욕심 낼 필요 없는 디자인의 바지이다.
나는 오늘도 이 맘핏진을 입고 출근했고 어제도 맘핏진을 입고 아이들과 소풍을 다녀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입을 때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도대체 '맘핏'이란 네이밍은 누가 붙인 것일까. Mom-fit.
그렇다면 이 바지는 맘들만이 입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바지인가. 이런 디자인의 바지에 처음 맘핏이란 이름을 붙인 사람은 맘들은 모두 다리가 짧아서 길어 보이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는 판단에서였을까. 맘들의 엉덩이는 중력에 더 이상 저항할 힘이 없음을 이 이름에 담아낸 것인가.
혹자는 8-90년대 유행하던 디자인이 되돌아온 것이라 붙인 이름이라 추측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8-90년대생이 현시대의 맘들을 대표해야 하는 걸까. 그럼 50년대 생인 우리 엄마가 맘핏 바지를 입으면 비주류의 작은 도전이 되는 것일까. 8-90년대생이지만 비혼이거나 딩크를 선언한 여성들은 또 어떻게 되는것일까.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만 MOM이 아니기에 손이 가서는 안되는 걸까.
MOM들에게도, non MOM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이름을 붙인 그 누군가는 대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이름을 붙였을까.
여러 가지로 아주미의 자격지심을 부정하기 힘든 불만 어린 질문들로 머리 위에 물음표를 한껏 띄워본다.
분명 내가 선택해서 한 개도 아닌 여러 개를 사들였고 교복처럼 입고 있지만 입으면서도 이상하게 마냥 신이 나지만은 않는 미스터리한 옷이다.
오늘 나는 이리 보고 저리 봐도 MOM이 맞지만, 굳이 MOM이라고 해서 MOM FIT 바지를 입어야 할 의무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아하게 MOM FIT 바지가 현실 교복이 되어있는 상당히 불편한 진실 앞에 무표정한 키보드 워리어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