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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화백 Oct 08. 2022

덕질 총량 보존의 법칙

club H.O.Tming out

  세상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총량 보존의 법칙이 성립한다. 지금껏 나름 짧지만은 않은 인생 동안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살아오며 깨달은 것들과 흔히들 이야기하는 몇 가지를 나열해 볼까 한다. 옆집 아주미의 개인적인 나불거림이라 생각하고 가볍게 보면 된다.


일단 총량 보존의 법칙이라 함은 살면서 각각의 시기별로 그 정도는 달리할 수 있으나 결국 일생을 통틀어 볼 때 그 총량은 일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소 총량 보존의 법칙

  먼저 요즘의 내가 가장 강력하게 생각하는 청소에 대한 총량 보존의 법칙이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지금 내 기준으로 볼 때 상당히 더러운 수준이었다. 우리 집엔 항상 개가 한 마리씩을 키웠었는데 똘똘한 아이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었고 똘똘한 아이도 자기 수틀리면 반항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므로 꽤나 자주 내 방 안에서 자기표현을 해 두곤 했다.

당시 나의 엄마는 청소에 과하게 무관심했거나 아니면 오물에 관대(?) 했거나 또는 10살도 채 되지 않은 딸에게 반려동물의 관리와 책임에 대해 스스로 깨우침을 기대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것들을 보이는 즉시 치우고 닦아주지 않았고 나 역시 크게 더럽다는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라면 기함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지만 기가 차게도 그땐 그랬다. 누가 먼저 치우는지 두고 보자는 엄마와 나의 기싸움이었을까.


 고등학교 때에는 토끼를 키우고 싶다고 하자 키우는 건 자유지만 거실을 돌아다니게 하지는 말라하셔서 나는 토끼를 내 방과 방에 연결된 작은 확장 베란다에서 생활하게 했다. 너무 작고 소중했던 내 토끼는 점점 자라서 금세 소만큼 커졌고 나와 종종 침대도 공유했는데 그 아이가 배출하는 양은 실로 어마 무시했다. 방바닥뿐 아니라 침대 위에도 동글동글한 토끼똥들이 난자했고 난 그마저도 너무 귀여웠을 뿐이다. 어찌나 귀여웠던지 똥들을 알알이 모아 포장지로 곱게 포장해 친구들에게 선물(?) 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냥 평범한 여고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랬던 나는 점점 나이가 들고 내가 관리해야 하는 나의 집이 생기면서 바뀌기 시작했는데 요즘은 나 스스로 약간 병적으로 청소에 집착하고 있는 느낌이다.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매일 비어있는 집에 주 1회 청소를 해주시는 이모님이 오시는데도 불구하고 이모님이 다녀간 날 저녁엔 매트 아래를 들어 청소상태를 확인하고 침구를 제대로 교체해 주셨는지 체크한 후 매번 만족스럽지 못해 기분이 별로다.

하지만 직접 이모님께 불만을 얘기하지는 못하는 성격이라 그냥 다음날 다시 물걸레질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침 출근 전엔 역시나 하루 종일 비어있을 집이지만 청소기를 돌리고 주말에 집에서 식사를 하는 날이면 아이들이 바닥에 떨어뜨린 부스러기를 절대 그냥 두고 보지 못해 그 즉시 청소기를 든다.  

그 누구도 나에게 시킨 적이 없는데도 집에 있는 시간에는 나 홀로 끊임없이 청소기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때마침 소파에 늘어져 티비를 보고 있는 남편을 발견하면 한 마디씩 던진다.


"나만 또 콩쥐네 콩쥐여."


콩쥐를 자처한 건 나라는 걸 스스로 알면서도 괜히 열이 받는다.


다른 곳에서 숙박하게 되면 그곳의 청소상태부터 점검하고 창문 틈이나 방구석에 더러운 것들이 눈에 보이면 자는 내내 이곳의 이불과 수건은 세탁이 제대로 된 것일까 의심하면서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호텔도 바닥이 카펫만으로 된 곳은 정말이지 너무도 피하고 싶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재 우리 집이 남들 눈에 결코 깨끗하게 보이지는 않는데 또 정리정돈에는 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 장난감과 책들이 여기저기 중구난방으로 쌓여있지만 그것들을 각각의 자리에 척척 정리해야겠다는 욕구도 없고 정리 무능력자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집에 머무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서라고 변명해본다. 어쨌든 나는 단지 먼지와 오물에만 집착하는 중이다.

아무도 모르게 비밀스럽게.




덕질 총량 보존의 법칙

   두 번째는 덕질 총량 보존의 법칙이다.  내가 중학교 때 H.O.T가 첫 등장했다. 알록달록 털모자에 눈이 달린 먼지 집게핀을 달고 벙어리장갑을 끼고는 혜성처럼 등장한 5명의 오빠야들은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고 나는 그만의 '단지'가 되어 두근두근 하트를 날렸다. (캔디 가사 중 토니 안 파트에 '단지 널 사랑해'라는 부분이 있음)

매 달 아이돌 잡지를 사 모아 스크랩했고 내 방 벽은 브로마이드로 빈틈이 없었으며 나의 엽서북 속에는 오빠야들이 환하게 나를 향해 웃어 주었다.

당연히 나는 club H.O.T였고 콘서트는 물론이고 오빠야들의 스케줄을 미리 알려주는 사서함을 매일 확인하여 학교를 마치면 방송국 앞으로 달려가 대기했다. (당시에는 전화로 연예인들 스케줄을 공유하는 사서함 번호가 있었다.)

콘서트장 앞열에서 어찌나 애잔한 표정으로 오빠야들을 바라보고 있었던지 내 얼굴이 H.O.T 화보집에 실렸을 정도였다. 어디든 음악방송 1열에 서서 하얀 우비를 입고 하얀 풍선을 연신 흔들어댔고 당시 인기가수들이 모두 모이는 드림콘서트에서는 노란 풍선을 든 젝키 팬들과 시비도 붙었다. 정말이지 가지가지했다.


H.O.T외에도 몇몇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비인기 연예인들도 내 덕질 목록에 있었는데 여기저기 편지를 보내고 십자수로 쿠션과 액자를 만들어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애 둘 육아와 일을 함께 하고 있는 지금보다 훨씬 더 바쁜 하루를 소화해낸 듯싶다.


그렇게나 바빴는데 고3 무렵에 갑자기 시들해졌다. 점점 더 흥미를 잃어가더니 지금의 나는 아직도 BTS가 몇 명인지 모르고 그 구성원은 당연히 모르는 스스로 감성 노인이라 자처하는 아주미가 되었다. 알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야말로 아이돌은 노관심이다. 이 나이에도 요즘 연예인을 좋아라 하고 콘서트를 챙겨 가는 사람들(예를 들면 우리 언니)을 보면 그저 신기할 뿐이다. 지금의 나는 열정적으로 누군가를 좋아하고 선망할 에너지를 이미 다 소진해 버렸다.




잠 총량 보존의 법칙

  흔히들 말하는 잠 총량의 법칙이다. 일생동안 사람이 살면서 자는 잠의 총량은 보존된다는 것이다.  

아기가 잠을 너무 안 잔다고 친구가 걱정 아닌 투정을 하면 보통

"잠 총량 보존의 법칙이란 게 있으니 걔는 이제 고3 때 겁나 잘꺼여." 라고 위로(아닌 악담)를 해준다.


평일에 잠을 못 자면 주말에 몰아서 자는 사람들이 있듯이 단기적으로 그 양을 보충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릴 때 많이 잤던 사람들이 나이 들어 부엉이처럼 깨있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이도 저도 아닌 적절하고 평범한 수면시간을 유지했던 사람들이라면 앞으로도 그렇게 평범한 수면시간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나는 그 패턴이 길지도 짧지도 않게 반복되는 듯한데 10대까지는 그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을 맞이했었고 20대엔 해가 중천일 때도 침대에 뒹굴거리던 날이 많았다. 그때의 나는 자고 일어나면 너무 오래 누워있었어서 내 장기들이 모두 등 쪽으로 배치돼있는 느낌이 난다고 종종 말했었다.  

30대에는 자의에서든 타의에서든 숙면의 기억이 희미한데 앞으로 40대에는 또 어떨지 모르겠다.

개인적 바람으로는 40대엔 누구보다 푸지게 자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 외에도 떠나요 욕구 총량 보존의 법칙, 공부 총량 보존의 법칙 등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뭐든 중간이 없이 극적이었던 부분들이 총량 보존의 법칙에 더 와닿는 것이다.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해보고 떠나자는 것이 내 삶의 지론인데 그러기에 인생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어렸을 땐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았는데 감성 노인이 된 후론 점점 그 의지조차 메말라 가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있다.


남편은 항상 어릴 때 하고 싶은 것을 못해보고 젊고 생생한 나이를 지나버린 것 같아 아쉽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더 놀고 싶고 떠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데 난 항상 그 마음을 존중해 주고 싶다. 때문에 나는 거의 남편이 하고 싶다 하는 일에는 반대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거 다 해" 하는데 하라고 해도 잘 못하고 주저하는 모습을 보면 참 어릴 때 형성된 습관을 깨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총량 보존의 법칙에 따라 결국은 하게 될 터인데 너무 심한 노인이 되기 전에 이루어 내길 바란다. 우리네 체력도 무시할 수는 없으니.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말은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남은 인생 주저하지 말고 충분히 즐기고 후회 없이 떠나보자.

갑분 계몽 멘트로 마무리해본다.



관중석의 무수한 하얀 우비 중 한 명이었을 열정적이었던 나의 십 대. 그러나 지금은 감성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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