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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화백 Oct 06. 2022

서비스직 의사의 이면

눈 밑 애교살과 눈가 주름은 필수


  의사는 두 부류로 나뉜다. 학계의 이론을 정독하고 끊임없는 연구가 업인 의사와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이론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환자에게 보다 나은 설명과 내가 내린 판단을 잘 설득시킬지 고민하는 의사.

아마도 의학전문대학원이라는 체제가 만들어진 것은 전자에 속하는 의사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목적과 바람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대다수가 그렇지 않았다.


나 역시 그러한 사회적 의도에 부합해 드리지 못한 것에 있어서는 개인적으로 유감이나 세상은 뜻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니 이해해 주시길 바라며 소소하게 생계를 위한 경제 활동을 하며 남들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서비스 정신이 부족한 편이라 판단하여 과 선택에 있어서도 환자들과 긴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는 과를 선택했다. 심지어 당시 매우 경쟁이었어서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나름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뎌야 했다. 하지만 현재 나는 세상 인자하고 밝은 소셜 스마일을 장착한 채 매일 하루에 수십 명과 대화해야 하는 병원에 앉아 전공한 과와는 다소 무관하게 근무하고 있다. 나는 인생 돌고 돌고 돌아가기 전문가이기 때문에 과 선택에서 역시 한결같이 내 소임을 다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선택들을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는 '인생에서 다양한 경험을 매우 중요시하는 사람'이라 말하는 자기 합리화 대장이기도 하니까.


  여하튼 현재 근무하는 병원과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나에게 친절함을 기대하고 있어서 마스크 밖으로 보이는 눈과 내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에 모든 걸 담아야 한다.

바깥 데스크에서 내 방으로 환자가 대기 중임을 알리는 호출을 넣으면 가볍게 호흡을 한 후 눈 밑 애교살을 한껏 끌어모은다. 이제는 늙어서 애교살보단 의도하지 않은 눈가 주름이 더 잡히긴 하지만. 어쨌든 그 후 방문을 노크하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진료실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첫 번째 부류는 미주알고주알 그간 있었던 고충들을 나에게 전달다. 대부분 즐거웠던 일을 함께 공유하기보다는 힘들었던 일들이다.

누군가는 아이들 어린이집이 바뀌면서 종일반 신청이 안돼 너무 일찍 하원하는 탓에 을 맛이었고 또 누구는 키우는 반려견이 나이가 들어 욕창이 생겨 매일 수십 번씩 좌우를 뒤집어 주니라 잠을 못 .   누군가는 생업이 그릇 장사인데 일을 안 할 수는 없으니 허리 통증이 낫질 않아 죽겠다 한다.

사소해 보이지만 그네들에게는 아주 큰 관심사이고 하나같이 이보다 더 '큰 일'일 수 없는  들이다.

한마디 한마디에 "아고 그러셨구나..." "하원 시간 이른 게 제일 힘들죠." 하며 눈썹을 시옷자로 급히 변경하고 나름의 추임새를 붙여 대꾸한다. 하지만 그들의 일상을 듣는 것이 나의 주 업무는 아니어야 하기에 빠르게 화제를 돌려 약을 처방하고 시술을 한다.


두 번째 부류는 반대로 반응이 없는 사람들인데 이런 분들이 사실 힘들다. 한껏 잡혀있는 나의 눈가 주름과 미세하게 떨리는 애교살이 무색하게 그들은 말이 없다.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단답형으로 이미 대답이 끝나 있고 방안이 금세 적막 해저 나는 어색하게 웃거나 "아..." "그러면..." 하고 마우스를 딸깍이며 허공에 흩어지는 의미 없는 말을 내뱉게 된다.  


세 번째 부류가 가장 내 마음을 어렵게 하는 사람들인데 본인의 치료와 약을 이미 스스로 정해놓고 내놔라 하는 식의 분들이다. 그들에게 진료실은 마치 냉면집주인과 손님 같은 개념인 것 같다.

"아줌마 여기 비냉에 다대기는 따로 주시고 고기랑 김치만두 반반씩 주세요."처럼 요구도 구체적이다.

그럼 주인은 "네~" 하고 물냉에 다대기는 친절하게 작은 종지에 따로 담아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당신 상태는 다대기 따로고 자시고 비냉보단 물냉을 먹어야 하고 야무지게 반반씩 주문하신 그 만두는 한동안은 안 드시는 게 좋겠다고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상당히 피곤해진다.

아.. 상상만으로 이미 피곤하다.


그들의 그러한 태도와 나의 상황이 피곤하다고 느껴지는 건 의사가 서비스직이냐 아니냐를 인정하고 말고의 가치문제는 아닌 것 같다. 기본적으로 나는 일상에서는 꼰대지만 직업면에 있어서는 마음 한켠에 서자庶子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라 의사'선생님'이 기대할 만한 존경과 대우 따위엔 특별히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상대가 누가 됐건 내 마음에 단단함을 더 연마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아니 됐고. 오늘은 이만 퇴근하고 싶다.



빛보다 빠르게 퇴근해야지! 그런데 집에 가면 찡찡이 두 명이 한껏 찡찡력을 충전한 채 나를 맞아주겠지. 난 정말 행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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