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한 게 용감하다고 지금생각해 보면 김여사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무식했고 한없이 용감했다. 나의 20년 운전인생동안 사고는 대략 서너 번 정도 낸 걸로 기억한다. 다행히 아주 큰 사고는 없었지만 한 번은 주차하다 벽에 혼자 박았고 또한 번은 제주도 좁은 돌담길을 지나다 역시나 나 홀로 돌벽을 긁고 지나갔고 또 한 번은 앞에 얌전히 서있는 버스를 박았다. 우회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깜빡이를 켜고 오로지 우측차선으로 우선 이동해야 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앞은 보지 않고 우측 사이드미러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속도는 시속 5km나 되었을까. 기어가면서 때마침 앞에 신호대기로 정차하고 있던 버스와 콩. 부딪힌 것이다.
콩.
분명 쿵도 쾅도 아닌 콩인데 순간 너무 놀란 나머지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걸 엑셀레이터를 밟아버렸다.
그대로 우굴우굴우굴 소리를 내며 차의 앞쪽 후드가 절반길이로 짜부러 들었다. 사고가 발생한 사실은 진실로 나만 알 수 있을 정도의 타격감이었다. 버스 안의 승객들은 그 누구도 뒤차의 콩 따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차량이 보면 사람 둘은 실려나갔을 법한 대형사고인 마냥 내 차는 처참하게 구겨졌고 앞 범퍼는 덜렁거렸다. 나는 무슨 차가 이렇게 종잇장처럼 약하냐며 되려 궁시렁댔는데 후드가 구겨지며 충격을 받아내 줘야 인명피해가 덜난다고 당시 누군가 무식한 김여사에게 알려줬다.
여하튼 그게 나의 20년 운전인생동안 있었던 가장 큰 사고였다.
이후에도 나름 필요에 의해 김여사는 운전을 계속했다.
시험기간 새벽 3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하다 잠시 눈 붙이기 위해 귀가했다가 주차자리를 찾지 못해 아파트단지 밖 골목 아무 대나 던져 넣고는 불과 3시간 눈 붙이고 아침 7시에 나왔는데 그 새벽에 차가 견인되어 사라저 있던 적도 있었다.
1교시 시험인데 그때 김여사의 기분이란 정말 참담했다.
또 얼마뒤엔 초점 잃은 눈으로 아침에 운전대를 잡았다가 얌전히 신호대기 중인 옆차와 긁은 적도 있었다. 한 시간 후 시험이었기에 누구의 잘잘못을 가려야겠단 의지조차 없이 연락처만 나누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김여사는 무식했지만 무식을 앞세워 뭐든 내가 맞다 우기는 사람은 아닌지라 당연히 정신없는 김여사 잘못이었겠지 하고 스스로를 쉽게 평가하고 자책했다.
사실 그 외에도 사고만 안났지 여기저기 도로에서 험악한 아저씨들의 언짢은 탄식소리(?)는 적잖이 들었던것 같다.
이런 김여사를 기꺼이 포용해 주는 ('그런 식으로 할 거면 운전대 잡을 생각조차 하지 말아 줄래'라는 의미를 저변에 깔고 있겠지만 다행히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는)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연애시절 함께 어디를 가거나 또는 나만의 개인적인 약속이거나 상관없이 항상 데려다주었고 약속시간이 끝날 때쯤엔 데리러 와주었다. 결혼 후에도 수년간 출퇴근을 같이 했던 터라 거의 매일 동선이 같았다. 그와 함께하는 십 수년의 세월 동안 나는 자연스레 운전과 멀어졌다. 기필코 김여사에게 운전대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그의 굳은 의지는 김여사로 인해 주변이 받을 피해를 알면서도 방임하고 있다는 죄책감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다른 일에도 대개 남을 못 미더워해서 뭐든 직접 해야 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그는 아무리 긴 운전시간이 소요되는 국내 및 해외여행에서도 결단코 절대 네버 나에게 운전대를 넘기지 않는다. 정작 본인은 꾸벅꾸벅 졸음운전으로 인해 함께 동승한 가족들이 모두 한날한시에 생을 마감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 속에 떨게 하면서도 나와 자리를 바꾸자고 하지 않는 것이다. 당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제 아이가 좀 더 크면서 내가 아이를 데리고 멀리 다녀야 할 일이 종종 생겼다. 물론 딸은 대중교통 타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항상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싶어 하긴 했지만 주변 엄마들이나 친구들을 보면 엄마가 베스트 드라이버여야 어딘지 생활이 윤택해 보인다. 나 역시 남이 운전해주는 차에 앉아 넷플릭스 보며 출퇴근하는 것에 꽤나 만족감을 느끼는지라 출퇴근의 8할은 사실 택시를 이용하고 있지만 아주 가끔씩 택시를 탔을 때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은 냄새가 나거나 불친절한 기사님을 만나거나 하면 바로 고민이 되는 것이다.
아.. 운전을 다시 할까..?
김여사의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갈대가 된다. 다수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김여사는 참는 게 맞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