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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화백 Jun 27. 2023

동네 사우나 세신 체험기

이곳에선 우리 모두 언니


평일중 하루 일을 쉬는 날이 있다.

대개는 약속이 있는데 이날은 전날 친구가 일이 생겨 내일 약속을 변경해야 될 것 같다 연락이 와서 급 오전시간이 비었다. 단 하루 반나절만 주어지는 나만의 시간인지라 평소 웬만하면  무조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이 있어 눈알을 굴리던 중 혼자 사우나나 한번 가봐야겠다 싶었다.


현재 내가 거주하는 곳은 흔히들 이야기하는 신도시나 젊은 감각과는 거리가 멀고 재래시장이 크게 자리 잡고 있 마치 노인들의 성지와도 같다. 꼭 그때문은 아니지만 이 동네에 일신을 거주시킨 지 대략 13년 동안 한 번도 동네 목욕탕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동네입장에서 조금 서운할 것도 같고(?) 나도 곧 이제 서울을 떠날 사람으로서 늦었지만 진정한 동네 탐방을 13년 만에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살면서 세신은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어쩐 일인지 이날 가봐야지 결심한 사우나의 네이버평에 세신맛집이라는 글귀에 눈길이 갔다.


아침. 나의 두 번째 어린이의 등원을 마치고 그 길로 사우나로 향했다. 두리번두리번 입구에서 사우나와 찜질값을 포함하여 9000원을 결제하고 대한민국 전역 찜질방들 간의 약속인듯한 황토색 나풀거리는 상하의를 받아 들고 들어갔다. 내 기억에 20년 전에 언니와 함께 갔던 동네 찜질방 가격도 당시 9000원이었는데 20년 동안의 가격동결이 이곳이 노인들의 성지라 그런 건지 다른 동네 사우나 시세도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다.


평일 오전시간 사우나 입구 탈의실부터 할머니들의 대화소리로 시끌시끌했다. 일단 세신부터 예약하기로 했다.

"세신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죠?"

마침 나와계시던 아주머니와 할머니의 경계에 계신 세신사 한분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다.

"어, 시간 얘기해 놓고 그때 오면 돼."


한 시간 20분 뒤인 11시 반에 하기로 하고 일단 찜질방으로 향했다. 온도가 76도를 가리키는 소금방에 들어가 일단 자리를 잡고 누웠다. 주변에 널브러진 나무베개 하나를 집어 베고 누워 땀을 송골송골 내고 있으니 훈훈하다 못해 숨이 막힐듯한 열기 속이지만 곧 잠이 들것 같았다.

그때 끼익 문이 열리고 아까 세신사 아주머니와 함께 계시던 매점주인분이 들어왔고 감겨오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 역시 아주머니와 할머니의 경계에 있다.


"언니 아까 세신 받기로 했지? 미안한데 그 시간 예약 있는걸 깜박했었대네? 12시에 와달라는데?"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지만 알겠다 하고 잠시 나와 숨을 고른 뒤 얼음녹차를 주문했다. 찜질방엔 식혜가 국룰이지만 최근 일상에서 가능한 한 당분섭취를 최대한 줄여야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중이라 자제해 보았다. 차디찬 녹차를 쭉쭉 드링킹 후 다시 소금방안의 열기 속에 온몸을  잠식시켰다.

소금방에 홀로 누워 땀 빼며 스트레칭하다 힘없이 누워있기를 반복하다 결국은 이내 밖으로 나왔다. 뜨거운 열기 때문에 전자기기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으니 이시대를 살아가는 스마트폰의 노예는 잠들지 않는 이상 시간을 길게 버틸 수가 없다.


밖에 나와 이것저것 정신없는 생각들을 기록해 본다. 연신 빨대로 쪽쪽 녹차를 들이켰지만 주어진 양의 반도 다 마시지 못했다. 스마트폰을 든 노예는 그렇게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났음을 인지하고 설렁설렁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탕 안은 정말이지 동네 할머니들의 만남의 광장 같은 느낌이었다. 나만 빼고 모두가 다 친근했다.


"언니 때 안 밀고 벌써 가."

"어 오늘은 좀 바빠. 다음에 밀게. 언니 담에 봐-."


언니가 있면 누군가는 아우가 되어야 맞는데 미스터리 하게도 이곳에선 모두가 언니 뿐이다.


설령 모르는 사이여도 서로 간의 오가는 대화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물 온도 적당해요? 뜨거운 물 더 틀까?"

"어 안 그래도 하나도 안 따뜻해. 거기 좀 더 틀어둬요"


탕 안에 머리만 내놓고 눈알을 굴리며 주변을 살피고 있으니 호출이 왔다.


"언니, 와서 누워!"


역시 이곳에서 언니인 내 차례가 되었다. 평일 아침부터 세신예약이 이토록 빡빡하게 잡혀있다는 사실에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누우라는 말만 남긴 채 잠시 자리를 비우신 탓에 나는 뻘쭘하게 베드 위에 걸터앉았다. 베드 위에는 젖은 타월이 접힌 채 넓게 깔려있었다. 다른 할머니의 때를 밀고 계시던 옆자리 세신사 아주머니께서 나에게 누우라고 또 한 번 눈짓하시는 바람에 나는 누워야 했다. 나는 당연스레 베드에 있던 큰 타월을 덮고 누웠다.

나의 그녀가 도착했을 때 이내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나는 때를 밀기 위해 누워있으며 타월은 덮는 게 아니고 까는 것임을 깨달았다.

곧이어 내 인생 첫 세신타임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손길이 내 팔 위를 먼저 빠르게 한번 왕복했다. 이건 정말 뻥 안 까고 아스팔트 위를 슬라이딩하는 느낌이랄까.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혹시 좀 더 부드러운 걸로 바꿔주실 수도 있나요..?"

"아. 아파?"

"네. 조금요.."

"어 알았어. 바꿔줄게 그럼~"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는 듯, 마치 옵션은 여러 가지라는 듯 대꾸하시고는 연장을 바꿔 장착하셨다.

"아까 그게 좀 까칠해~"

그리고 다시 이어졌다.


와... 진심으로 1도 차이가 없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요구하진 않았다. 고통을 참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터라 그냥 참기로 했다. 정말이지 내 살가죽이 과연 제대로 붙어 있을지 의문인 시간이 계속되었다. 지금 이 시간 30분이 지나면 예전 인체의 신비전에서나 볼 법한 근육결만 오롯이 남아있을 것 같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어찌나 성의 있으신지 한번 전신을 훑고 지나갔음에도 재차 가죽을 한 꺼풀 더 벗겨내고 서야 마무리되었다.


이로서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세신이 끝이 났다.


베드에 누워있는 나의 머릿속에 가득했던 30분뒤 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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