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동유럽 여행 이야기
이번 유럽 여행의 피날레를 장식할 프라하.
십여 년 동안 꾸준히 전 세계, 특히 한국인의 사랑을 듬뿍 받은 이 도시는 어느새 동유럽 여행의 꽃이 되어버렸다.
'동유럽의 파리'라 불리는 이 곳.
로맨틱을 찾아 떠나는 수많은 여행자들이 프라하를 찾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맛있다는 맥주가 있어서일까.
가장 아름답다 칭송받는 프라하 성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올드타운 속 보헤미안의 예술을 쫓아서일까.
'로맨틱'이라는 단어가 주는 모호함에 대해 생각해 보니, 아마도 사랑스러운, 혹은 사랑하고 싶은 그런 감정이 아닐까 싶다.
남녀를 불문하고, 나이를 불문하고 그저 사랑에 빠지고 싶은 그런 감정.
그렇다면,
맛있는 맥주가 주는 기분 좋은 취함도 맞고,
천년 역사가 주는 아름다운 풍경도 맞고,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예술정신도 맞다.
그런 의미에선 아마 프라하가 딱이지 않나 싶다.
와이프와 나는 '프라하의 향기'를 가득 머금은 채 서울로 돌아가자 했다.
영감을 듬뿍 받은 채로 한국에서도 아티스트로 살자고. 그렇게 자유롭게, 세상 모든 사소한 것에 감동해가며 여행자처럼 살자 했다.
속박되지 않은 낭만의 삶을 살아가는 예술가라는 뜻의 보헤미안처럼 그렇게.
이번 프라하 여행은 좀 더 특별한 게 있었다.
와이프가 7년 전 오스트리아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시절 친구였던 베로니카가 직접 3일 동안 가이드를 자청한 것이다.
와이프와 한 학기 동안 단짝이었던 베로니카.
방학이 되면 유럽 여기저기를 함께 여행했다고 한다. (당시 프라하의 베로니카 집에도 놀러 와서, 어머니께 식사도 대접받고 함께 여행했다고.) 그래서 그 후로도 종종 소식을 주고받으며, 최근의 결혼 소식까지도 공유했다는 친구.
그렇게 해서 우리는 3일 동안, 베로니카와 그의 남자 친구 올리버와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너무 완벽했던 시간이었다.
마음씨 좋은 체코 친구들과 함께, 그들이 먹는 로컬 음식점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체코 구석구석을 함께 다니며 가이드도 받고, 심지어, 그들이 빌려준 자전거 타고 이른 아침 체코의 구시가지를 라이딩하는 영광을 만끽할 수 있었다.
프라하의 구시가지는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있다. (체코에는 무려 12개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있다) 구시가는 그야말로 중세 유럽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체코의 1000년 역사를 증언하는 프라하 성. 우리가 갔을 때 마침 12시가 되어 근위병 교대식이 있었다. 체코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한 수많은 이들의 희생 속에서 프라하 성은 당당히 체코 공화국의 국기를 펄럭이며 서있었다.
중세시대 이후 여러 민족과 국가에 의해 지배를 받아왔던 체코의 독립은 정말 눈물겨웠다.
종교분쟁으로 인한 국가의 분열,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와 나치 점령, 스탈린과 소련의 잇따른 침략과 공산주의의 어둠, 슬로바키아와 분리되어 체코 공화국이 생길 때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근위병 교대식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이건 분명, 프라하성의 야경이 아름다우면서도 왠지 모를 슬픔을 함께 건네주는 이유일 것이다.
구시가는 야경이 더 아름답다. 노란 조명과 함께하는 은은한 아름다움이랄까. 그래서 더 낭만적인 프라하의 밤.
그리고 또 인상 깊었던 곳은 시내에선 조금 떨어진 비셰흐라트 언덕이다.
블타바 강과 프라하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구성이라고 부르는 이 곳은 성 베드로와 바울 성당, 그리고 비셰흐라드 공동묘지가 있다.
공동묘지라고 해서 조금 무섭다고 생각한다면 이 곳에서 과감히 그 편견을 깨어보라고 하고 싶다.
이 묘지는 정말 묘한 아름다움으로 잔잔히 다가온다. 정치, 예술, 문학, 과학 등의 분야에서 체코를 빛낸 약 600명의 위인들이 묻혀있는 곳. 그들의 예술 혼이 만들어 낸 그림 같은 묘지. 아마 그들을 사랑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추모하며 만든 경외로움의 표현들이, 아름다운 과거의 흔적들을 더 빛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공동묘지를 마치 공원처럼 그들의 삶 속으로 가져오는 프라하 사람들의 열린 마음, 막연하게나마 보헤미안의 정수를 맛볼 수 있었다.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던, 프라하 자전거 여행.
비록 오전 동안이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자전거로 프라하성과 구시가를 둘러보는 그 짜릿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자전거 위에 오르는 행위만으로도 힐링 그 자체인 데다가, 자전거 여행이라니. 사진으로 많이 담지도 못했다. 순간을 즐기느라고.
나중에 언젠가는 나의 브롬톤으로 유럽여행을 떠나는 꿈을 꾼다.
큰 배낭을 메고, 작은 자전거와 하나 되어 유럽 땅을 구석구석 돌아보는 여행.
버킷리스트에 늘 상위 랭크되어있는 여행! 언젠가 내가 진정한 아티스트나 여행자가 된다면 꼭 도전 해보리라. 지금은 무늬만 아티스트고, 직장생활 중 겨우 시간을 내어 여행을 오는 초보 여행자라,, 친구의 자전거를 빌려 반나절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만족한다.
그리고 체코에서는 맥주를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체코 맥주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맛있다는 데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독일 맥주가 맛있다는 소문에 자존심 상해하는 그들. 독일 맥주는 맥주로 쳐주지도 않는다며 자신들의 맥주를 더 권하는 그들. 그들은 정말 체코 맥주를 사랑했다. 덕분에, 점심에도 맥주, 저녁에도 맥주, 밤에도 맥주,, 술을 잘 못 마시는 와이프까지 가세해서 원 없이 맥주를 마셨다. 원래 여행을 떠나면 맥주가 더 맛있는 법인데, 거기에 세계 최고라는 체코 맥주가 더해지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게다가 체코 맥주와 함께 했던 그들과의 많은 대화들이 나에게 새로운 시야를 건네주었다.
우리나라의 치열함에 대해 놀랐던 그들.
여전히 대한민국의 전쟁을 걱정하는 그들.
체코 맥주만큼이나 일본 초밥을 사랑하는 그들.
50%나 되는 이혼율 때문에 결혼을 망설이는 그들.
만나고 헤어질 때 꼭 포옹으로 격하게 인사하던 그들.
나중에 꼭 서로의 아이들과 함께 프라하에서 다시 만나자던 그들.
꼭 다시 보고 싶은 그런 친구들이다.
베로니카와 올리버 덕분에 우리의 프라하 여행이 훨씬 즐거웠던 것 같다.
정말, 언젠가 아이들이 생기면 베로니카 이모를 만나러 프라하에 다시 가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때 다시 와이프의 비포 애프터 사진을 찍으며, 우리의 이 여행을 고스란히 떠올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