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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괴물 Aug 28. 2016

동유럽 여행 유감(有感)

2016 동유럽 여행을 정리하며

오래도록 벼뤄오던 동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그 단어만으로도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는 유럽여행.
열심히 일한 몇 년을 보상받고 싶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여행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었고,
무엇보다 그냥 이유 없이 떠나고 싶었다.

오스트리아 빈이 준 예술과 문화의 영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만끽한 낭만.
크로아티아에서 원 없이 누렸던 자유.
체코 프라하에서 담아온 보헤미안의 정신.

'여행'이라는 단어는 참 많은 것들을 건네준다.
일상에서 벗어나 생각을 쉬어줄 수 있는 시간.
더불어 몸과 마음을 재정비할 수 있는 그런 시간.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들 속에서 영감이 자라나는 시간.
강한 추억이 되어, 언제나 꺼내볼 수 있는 즐거움의 시간.
그렇다. 그런 게 여행이다.

그리고 여행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은
언제나 아쉽다는 것.
일상으로 복귀하면 다시 또 다른 여행을 갈망하게 된다는데 있다.
인간은 세상 모든 보지 못한 풍경을 정복할 때까지 여행을 시도할 것이다. 아니, 세상 모든 것을 보더라도, 때로는 익숙함을 그리워하며, 또 때로는 그 속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며 떠날 것이다. 인간에게 여행이란 결코 잡히지 않는 보물섬과 같다.

23일간의 여정을 마치며 아내는 이야기했다.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익숙한 그곳에서 편리한 삶을 누리며, 충실히 일상을 살고 싶다고.
가족들이 있는 포근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여행이 그저 좋은 나도,
가족과 친구들이 생각나고,
회사가 생각나고, 축구가 생각난다.

오스트리아 빈의 이국적인 풍경.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한 컷.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운 국회의사당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여유로운 공원 풍경.
오스트리아 빈의 오페라하우스 야경.
체코 프라하에서의 맥주투어.
체코 프라하성의 야경.


이번 여행은 걷기로 시작해, 걷기로 끝난 여행이었다. 마치 걷기 위해 여행을 온 것 같은 그런 기분.
에어비앤비 호스트들은 하나같이 우리에게 걷기를 권유했다.
구시가지가 좁으니 걸으면 된다고,
바다가 가까우니 걸어가라고.
골목골목이 예쁘니 천천히 걸어 다니며 보라고.
다리를 건너보고, 성을 올라보라고.
그러다 보니 하루 대여섯 시간을 기본으로 걸어 다닌 것 같다.

사실 한국에서는 걸어 다닐 일이 많이 없다.
교통이 너무 편리하다는 이유,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이유,
뭐 때로는 걷기에는 멀다는 이유를 대며,
가끔 걷게 될 때도 스마트폰의 화면과 함께하며,
운동을 위한 자기 합리화 정도로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걷는다는 행위의 아름다움에 대해 배웠다.
천천히 걸어 다니며 주위를 둘러보는 시간 속에 여행자의 너그러움이 숨어있었다.
주변을 여유롭게 둘러보며 낯선 풍경들을 이끌어낼 때, 그때 비로소 일상이 영감을 주는 축복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효율이 가장 중요해져 버린 자본주의와 비즈니스 세계에서 강조하는 그 이성이 아닌,
내 두 다리로 지구와 하나 되어 걸어가는 원초적인 비효율의 인간미가 주는 감성을 쫓을 때
일상을 여행자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했다.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체코 프라하성의 풍경.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서 산, 이번여행 첫 기념품
와이프와 부다페스트에서 한 컷.
크로아티아 자다르의 이국적인 풍경.
크로아티아 흐바르 섬의 풍경.
크로아티아 흐바르 섬의 일몰.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의 구시가지와 구항구 풍경.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의 성벽 투어.


여행 중에 나는 여러 차례 삶에 대해 생각했다.
살아감에 대해.
다르게 살아감에 대해 생각했다.

여행 속에서 나는 좀 더 자유함을 봤다.
유럽이란 나라.
민족주의를 앞세우고 있다지만, 결국 수많은 민족이 서로 섞여있고, 나라 간의 역사가 중복되고, 아픔과 기쁨과 전쟁과 평과를 함께 누린 그들은, 어느 한 국가의 사람이기보다는 '유러피언'에 가까웠다.
그 큰 유럽 대륙을 하나로 느끼는 순간,
그들에게는 자유의 경계가 넓어지는 것이다.

반면, 한민족을 강조하며 억지로 고립되려 하는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물론, 역사는 중요하다. 그걸 부인하려는 건 아니다만,,)
대한민국, 그중 서울이라는 작은 땅덩이에서 죽어라 경쟁하는 우리는 고층 빌딩 속 몇십 평짜리 나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치곤 한다.
허나 그것도 이뤄내기 쉽지 않아, 서울과 가까운 곳에 그 공간을 빌려 살아야 한다.
열심히 일하면 그 빌린 공간이 조금이라도 내 공간이 되리라 기대하며,
마치 산을 정복해야만 등산을 했다고 여기는 초보 등반가처럼 그렇게 쉬지 않고 올라만 간다.
그들의 삶 속에서 자유란 그저 책임의 부속품 같이 여겨져 있다. 자유의 경계가 고작 오르려는 산길의 등산로 정도로 좁혀져 있는 것이다. 광활한 산을 오르기 위한 그저 몇 갈래의 등산로 정도.

하지만 여행은 나에게 알려주었다.
산은 참 아름다운 곳이라고.
산은 참 넓고 높고 커서, 눈 앞에 보이는 정상을 올라도 또 다른 정상이 보일터인데,
눈 앞의 정상을 정복한 기쁨도 잠시, 다른 산을 또 쉬지 않고 오르지 않으면 불안할 따름이라고.
그러지 말고 그저 산의 아름다움을 좀 만끽해보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한다.
정상을 정복하지 않아도 된다고, 아니 그게 더 멋있게 산을 즐기는 방법이라고,
넓디넓은 산을 자유롭게 누리는 넉넉한 즐거움으로 살아가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체코 프라하의 풍경.
체코 프라하의 구시가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자다르의 일몰.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의 구 항구 풍경.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의 바네해변, 지중해 해수욕.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의 플라차 대로 전경.
오스트리아 빈의 시티바이크 투어.
크로아티아 자다르의 성 마르코 성당.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서 와이프와 한 컷.


#. 여행 동안 내가 쓰려고 했던 여행 에세이는 그런 게 아닌데, 그 나라의 아름다움을 사진과 함께 풀어내려고 했던 그런 에세이가 아닌데,
쓰고 보니,, 다 그런 글들이었다.
나는 그저 일기를 쓰고 싶었는데,, '여행기'가 아닌 '글'을 써내고 싶었는데,
이국적인 풍경 앞에서 나도 모르게 그 도시 마다의 흔적을 남기는데 충실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기억을 곱씹는 기능이 있다.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어 그때의 그 오감을 또다시 만끽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시점일수록 그 기억은 더 선명하고, 또 때로는 실제보다도 더 실감이 나기도 한다. 강한 기억일수록 더 그렇다.

급하게 이 여행을 풀어놓지 않으려고 한다.
와이프와 두 손 꼭 잡고 걸었던 그곳들을 급하게 끄집어내지 않으려 한다.
아직은 그 손의 온기가 남아있기 때문에, 굳이 그러고 싶지 않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이 여행의 흔적들은 아마 강한 기억이 되어 이따금씩 우리를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처럼 조심스레 다녀갈 것 같다.
그때 우리 그러지 않았었냐고 웃고 떠들며 추억을 한껏 들춰내었다가 조만간 또 오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떠나갈 것 같다.

우리의 여행은 그런 여행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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