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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괴물 Aug 29. 2016

2016 지리산 종주

대자연과 바꾼 두 다리 이야기.

지리산 종주와 내 두 다리를 바꿨다.
오늘은 하루 종일 걷지도 못하고 아주 다리만 주무르고 있다.

혹시라도 블로그를 보고 지리산 종주 코스를 짜는 사람들이 있다면 누가 쓴 글인지 잘 보라고 하고 싶다. 우리처럼 운나쁘게 전문 산악인이 써놓은 블로그에 걸릴 수가 있으니깐..
이틀 동안 20시간의 종주를 하며 두 다리를 잠시 동안 잃을 수도 있으니깐 말이다.
일정이 너무한다 싶어 다시 우리가 참고했던 그 블로거를 보니 매주 산을 타는 준 전문 산악인 수준 ㅠ
사무실에서 출근하며 동내 뒷산을 가끔 오르는 우리와는 다리 구조가 다른 사람이었다.
운이 좋아서 우리 같은 지리산 초보자들의 블로그를 참고했었다면, 두 다리가 아니라 한 다리 정도로 선방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덕분에 대자연 앞에서 한 없이 겸손해지는 시간을 경험했으니, 산을 오르는 인간 본연의 목적은 달성한 샘이다.


망가지기 전 사진 ㅎㅎ 동행한 현택이랑.
이른 시간 노고단 고개에서 찰칵!
숲이 지구의 해열제라고 했던가. 한 여름의 열기에도 불구히고 숲 속바람은 제법 시원했다.
지리산 종주는 다양한 코스가 있어서 등산의 재미가 있다.


지리산 인증샷을 본 친구가 물었다. '여름 지리산'은 어떠냐고.
음..
아주 더워서 땀이 비 오듯 흐르고, 뜨거운 햇볕이라도 만났을 땐 다리가 두 배로 무거워지며, 물을 봄가을 산행 때보다 세 배 정도는 많이 마셔야 하고, 얼굴에 자꾸 모기를 비롯한 벌레들이 웽웽 소리를 내며 달라붙어서 손을 잠시도 쉴 수 없지만,
....
결론을 말하자면 "너무 좋았다!"


여름만이 주는 산의 울창함!
우거진 숲 속에서 푸르디푸른 나무와 풀내음을 원 없이 만끽했다.
숲이 그 기운을 가장 뽐내는 시간. 숲이 가장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쉬는 계절. 여름 지리산이 주는 건강한 에너지를 가득 안고왔다.
산속의 모든 생물들이 힘이 넘쳐, 그 남는 기운을 산을 오르는 여행자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
흐르는 땀과 맞바꾼 지리산 일급수의 짜릿함, 도시의 지친 날숨을 나무가 주는 신선한 들숨으로 정화했던 시간.

지리산은 바위가 참 많다. 아스팔트가 아닌 자연의 바위를 걷는 시간
우리가 하루 숙박을 했던 연하천 대피소!
노고단 고개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휴식 중 바라본 숲 속 하늘 :)


꼬박 5년 전 이 곳을 왔었다.
그때를 추억하며, 그때의 감정을 곱씹으며 그때의 청춘과 지금의 청춘을 생각했다.
무모했던 청춘과 여전히 철없는 청춘.
자유를 갈망했던 청춘과 여전히 옆길로 새는 청춘.
변한 듯 그대로인, 그대로인 듯 변해버린 5년을 꺼내어 볼 수 있어서, 그리고 한결같은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물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두 다리를 잠시 잃긴 했다.)


지리산 종주는 특별하다.
먼저 이틀 치 식량을 배낭 가득 넣어둔 채 산길을 오르내려야 한다. 내가 무심코 먹는 '일용한 양식'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알게 되는 시간.
또한 세제 없이 이틀 동안 생활하며(샤워는커녕 세수도 물로만, 양치도 물과 소금으로만 할 수 있다)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시간.
산을 오르고 내리며 '정복'을 넘어선 산과의 '공존'을 잠시나마 느끼게 해주는 시간.
외부와 소통을 단절한 채 높은 빌딩 숲 대신 진짜 숲 속을 거닐 수 있는 시간.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산과 하늘 속 구름만이 존재하는 겸손한 시간이었다.

지리산을 떠나오며 생각했다.
다음에는 두 다리가 아니라 사소한 걱정 근심을 잃고 오고 싶다고.

지리산 종주는 봉우리를 여러개 오르내리는 등반이다.
벌이 꿀떠는 모습인데,, 잘 안나왔다 ㅎㅎㅎ
돌과 나무로 만들어진 예쁜 하늘길.
중간중간 있는 대피소가 가장 반갑다 ㅎㅎ 물을 보충할 수 있는 시간. 쉬어가며 체력을 충전할 수 있는 시간.
정말 산에 둘러쌓여있다. 빌딩숲이 아닌 정말 숲.
이른 아침 타먹는 커피한잔. 카누는 사랑입니다.
여름 지리산의 울창함.
이틀 동안 20시간의 종주..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서 다음 번 종주가 더 기대되는게 아닐까. 기다려라 지리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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