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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괴물 Sep 17. 2016

제주 하늘은 반칙

2016 제주도 여행 이야기


몇 번을 가도 지겹지 않은 그런 여행지가 있다면 제주를 꼽고 싶다.
저가 항공이 생기며 우리에게 더 가까워졌지만,

그럼에도 갈 때마다 설레는 그런 곳.


자연 그대로의 신비로움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한라산을 지닌 것만으로도
이미 제주를 사랑하기 충분하지만,

섬을 둘러싼 동서남북의 바다가 모두 저마다의 특징이 있고,

바다와 육지에서 나는 산해진미가 가득하며,

어쩌다 보니 이효리도 살고 있다.

 
스쿠터나 자전거를 타고 섬 한 바퀴를 일주할 때 느낄 수 있는 자유.
돌과 바람을 찾아 떠나는 행복.
유네스코 세계 유산을 두 곳이나 지니고 있는 천혜의 자연이 숨쉬는 곳.

곳곳에 숨겨져 있는 관광 명소를 즐기는 재미.
해안을 따라 있는 고급 리조트들과 밤마다 파티를 여는 게스트하우스까지.

제주는 갈 때마다 새롭게 느껴져 여행자로서 늘 기대를 갖게 만든다.


매번 다른 즐거움을 주는 그곳은 그저 그리워하는 연인처럼 늘 그곳에 머물러 있다.
한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주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봤을 것이다.



제주 가는 비행기 안 풍경.
이호 테우 해변, 이정도면 제주 하늘은 반칙이다.
 제주에 처음 갔을때, 공항에서 야자수를 보며 설레는 이질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아, 여기가 제주구나. 라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야자수. 함께 여행간 제필이형과 한 컷.



작년 제주에서 봤던 하늘은 잊을 수가 없다.
바다와 하늘과 구름과 태양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그림 같은 풍경들은
그 경이로움을 다 표현해내지 못하고 소소하게 인스타그램에 올라갔지만,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여운처럼 남아있다.


작년 여름에는 혼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좋아하는 이호 테우 해변에서 하염없이 걸어도 보고, 해수욕장에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핑족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해변을 따라 드라이브하며 예쁜 카페에 들러 커피도 마셔보고, 중문에서는 하늘이 선물해준 폭포를 찾아 열심히 걸었다.


제주 여기저기에 참 많은 관광명소들이 있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왠지 자연을 더 즐기고 싶었다.


공항 근처에서 자전거를 빌리러 간 <바이크 트립> 매장에서 바라본 제주 하늘에 반해서 그만

정신없이 무언가에 홀린 듯 제주를 돌아다녔다.

이 정도면, 제주 하늘을 반칙이 아니라 마약이라 감히 표현하고 싶다. (좀, 오버해서? ㅎㅎ)



제주 공항 근처 자전거 렌탈샵에서 바라본 제주 하늘. 반칙을 넘어서, 약물 복용이 의심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쿠아리움은 빼놓지 않고 들렀다.


나는 대형 수족관을 참 좋아한다.

감히 아쿠아리움이란 공간과 '평화로움'을 연결시켜가며 방해받지 않은 온전한 차분함을 경험하고 온다.


성인이 된 내가 아쿠아리움을 다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계기는
대학교 때 봤던 영화 <클로저> 덕분이었다.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영화.



쥬드로와 나탈리 포트만, 클라이브 오웬, 줄리아 로버츠가 나오는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영화.
대학시절, 수많은 방황을 잠재워줬던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만나게 되는 장소로 아쿠아리움이 등장한다.
그때 여자 주인공이 아쿠아리움을 찾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 장면이 있었는데,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스트레스와 긴장을 해소하러 수족관에 간다고 했었던 것 같다.

'수족관이 주는 평화로움'
'잔잔한 물고기의 유영을 보며 느낄 수 있는 차분함'
정도의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 영화를 본 뒤, 당장 그 주말에 코엑스에 있는 아쿠아리움을 혼자 찾아갔었던 기억이 난다.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그곳에 머물며
마치 내가 물고기가 되어 수족관 속 어두운 핀 조명을 즐기듯, 물속을 유유히 유영하는 느낌으로 그 순간을 만끽하고 왔다.

그때부터 나에게 수족관은 거칠고 울퉁불퉁한 마음이 불편해질 때마다 안정감을 주는 장소가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수족관에서 꽤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며, 평화롭고 차분한 기분을 만끽하고 왔다.



지금은 그저 관광지로 유명한 제주.
하지만 이 섬에는 많은 역사가 숨겨져 있다.

몽고의 침략에 맞선 삼별초가 마지막까지 저항하며
고려 무인시대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던 곳.
훗날 전 세계를 호령했던 원나라의 목마장으로 쓰이며, 유목민족의 자유로움이 머물렀던 곳.
조선왕조 500년 동안에는 수 백명의 유배인들이 귀양살이를 하며, 주옥같은 작품들을 만들어낸 그런 예술이 있는 곳이다.

그저 임금만을 바라보며 살았던 그 시절,

왕과 가장 먼 곳에 떨어져서 남은 여생을 보내며
제주가 주는 아름다운 자연 왕국을 새롭게 경험했을 조선의 선비들.
유배 온 그들의 원통함과 섬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어, 그들로 하여금 절로 붓을 들게 만들었을 것이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숨은 격전지로 활약했고, 광복 후 또 다른 아픔이 있었지만, 다시 한 번 그것을 딛고 우뚝 일어선 제주.



제주가 많은 사람들에게 그저 아름다운 휴양지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더 깊고,  더 사랑스럽게 기억되는 이유는 한반도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품고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제주의 해변을 홀로 걷노라면,
때로는 죽음을 앞두고 그 신념과 나라를 끝까지 지키려 했던 고려 무인의 모습이 떠오르고,
또 때로는 억울하게 유배 와서 모든 것이 한낱 부질없음을 알게 된 고귀한 선비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역사를 안다는 것은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 순간을 즐김과 동시에 과거를 느낄 수 있다는 것.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지는 순간,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는 것.
그런 게 역사와 여행이 주는 묘미가 아닐까 싶다.               


이럴 때라도 역사학도의 흔적이 베어나와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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