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괴물 Sep 09. 2016

건담 보단 사무라이, 오사카 여행

일본 여행 이야기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일본이다.
원피스와 슬램덩크가 있는 곳.
추성훈과 사랑이가 있는 그곳.

우리와 일본은 가깝지만 참으로 먼 나라다.
과거 우리에게 많은 상처를 줬던 나라.
그래서 아직도 누군가에게 조상들 대신 미움받고 있는 나라.
그럼에도 섬세하고 아름다운 섬나라의 신비로움이 한없이 부러운 나라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할 때 <일본사>를 공부했던 적이 있다.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나라이기도했지만, 일본 그 자체에도 관심이 많았었다.

그리고 그때 알게 되었던 그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에 따른 삶의 흔적들을 공감하게 되면서
나에게 일본은 그저 미워할 수만은 없는 그런 나라가 되었다.


내가 찾아간 곳은 오사카.
사랑이는 없지만 사랑이의 할아버지가 있는 곳.

서일본의 중심이자 일본 제2의 도시.

도쿄보다 오사카를 가고 싶었던 건,

일본의 화려함보다 일본의 고즈넉한 역사를 느끼고 싶어서였다.
전통과 역사가 살아있는 교토와 나라를 거닐며,

일본의 건담이 아니라, 일본의 사무라이를 만나고 싶었다.


오사카에서 느꼈던 지배적인 감정은 '깨끗함'이었다.

도시 골목 곳곳에서 베어 나오는 차분함.
자전거에 오른 젊은이들의 한가로움.
너무 시끄럽지도, 너무 가라앉지도 않은 시내의 분위기.


기대했던 일본 특유의 깨끗함을 느껴서 참 좋았던 것 같다.
 

교토를 거닐다 만난 대나무 숲길
함께 여행한 제필이형. 한적한 교토는 모든 스팟이 포토존이었다.
교토의 금각사
오사카의 야경


여행 중 시간을 많이 보냈던 곳은 나라, 교토였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다름 아닌 오사카 성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던 곳.
아니 그의 위엄과 위태로움을 동시에 볼 수 있었던 곳.

오랫동안 막부 체제와 사무라이가 일본의 주축이었던 그 시기.
출세와 꿈을 향해 쟁기를 버리고 칼을 들어야만 했던, 누군가를 베지 않으면 나와 내 가족이 베일 수밖에 없었던, 전쟁과 배신 속에서 늘 긴장해야만 했던 영웅들의 흔적.
적을 막아내려 쌓은 성벽과 운하, 그리고 성문 안의 굽어진 미로 같은 통로들을 보며
히데요시의 거대한 위엄과 함께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고 싶었던 그의 간절함이 보였다.

당시 일본의 마룻바닥은 아무리 조심스레 밟아도 삐걱대는 소리가 나도록 지어졌다고 한다.
누군가 몰래 자신을 암살하러 오는 것을 눈치채기 위한 사무라이 시대의 지혜였다고 하는데,
세콤과 cctv가 없던 그 시절,
누군가는 칼을 들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누군가는 칼을 맞고 삶을 내어놓아야 했던 그 시절.


불과 몇 백 년 되지 않았을 그 과거의 서스런 칼날 앞에서 현재의 평화로운 우리네 삶에 대해 많은 생각에 잠겼었다.


그렇게 내가 쫓고 싶던 사무라이의 흔적을 마음껏 누리며, 성 주변의 한적한 공원을 참 오래도록 걸었다.


오사카 성 사진은 구글에서 협찬받았다. 왜 내가 찍은 사진들은 다 흔들렸을까.


무거운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오사카 여행의 또 다른 재미를 준 곳은 바로 오렌지 스트릿~!
패션과 트렌드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오사카에서도 현지 사람들, 그중에서도 트렌드 리더들이 모이는 오렌지 스트릿에서 하루를 꼬박 머물렀다.
다름 아닌 '일본 간지'를 찾아 나섰다고나 할까.

한국에서는 병행수입으로만 찾아내야 했던 브랜드와 모델들, 새롭게 선보이는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들이 즐비했고, 결코 살 수 없는 고가의 옷들도 여행자의 자유로움을 무기로 마음껏 구경할 수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그 일본 특유의 멋이 있다.

세계 어디를 여행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그들만의 특징이 있고, 그것은 어느덧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의 트렌드 한켠을 주도하는 '일본 스타일'이 되었다.


같은 남자들의 패션만 보더라도 그만의 개성이 있다.

특유의 턱수염과 모히칸 스타일을 전 세계에 유행시킨 것도,

머리에 왁스를 발라 샤기컷을 처음 구사했던 것도 그들이었으며,

남성들의 레깅스 패션과 레이어드 패션을 주도했던 것도 모두 이 섬나라에서 시작되었다.

각종 패션 브랜드는 저마다 일본만을 위한 리미티드 에디션을 출시하고 있고,

일본의 멋을 모태로 한 패션 브랜드들도 제법 생겨났다.


문득 대학시절 같은 축구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일본 친구들이 생각난다.

흔히 한국에서는 축구를 할 때 스타일링을 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어차피 땀이 나서 망가질 거고, 더군다나 남자들 밖에 없는 그 냄새나는 운동장에서 누군가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자연스럽고 편한 차림으로 축구를 하기 마련이다.

헌데 그 일본인 친구들은 꼭 헤어 스타일링을 잊지 않았으며(헤어밴드라도 꼭 착용해야만 했다)

시합 전 웜업을 할 때도 꼭 트레이닝복 풀세트를 갖춰 입곤 했다.

단체 유니폼을 맞출 때도 자신들이 선호하는 핏을 고집했으며,

심지어 유니폼을 수선해 입기도 했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멋 보다도,

그냥 자신들만의 개성과 스타일을 순수하게 좋아하는구나. 스스로를 관리하고 신경 쓰는 것이 습관처럼 배어있구나 싶었다.


물론 나도,

그때의 친구들과 함께 했던 경험에 물든 나머지

매순간, 특히 운동을 할 때에 복장과 스타일이 주는 멋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축구실력이 물들었어야 되는데, 스타일만 물들어 버린 것이 함정.

(아, 그 친구들은 실력이 뛰어난 아마추어 축구선수였다.)


이 글을 와이프가 읽게 된다면,

내가 왜 그토록 운동복 타령을 하는지 알아주겠지..

사실 복장이 갖춰지면 운동능력이 20% 정도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쓸데없는 조사들을 많이 하는 영국 어딘가를 뒤져보면 분명 이런 설문조사와 결과가 있으리라.


오렌지 스트릿의 간판이다. 오사카의 멋쟁이들이 모이는 곳.
인테리어 편집샵이나 느낌있는 카페들도 많다
함께 여행했던 제필이형. 이형은 이상하게 일본 길바닥이 어울린다.



그리고,

일본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가지 이벤트.

바로 피규어 샵이다.
한 거리 전체가 모두 피규어 샵이었고, 정말 각종 종류의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이 멋지게 서있었다.
(일부는 조립을 기다리며 분해되어 있기도 했고, 또 일부는 누워있기도 했지만)

그리고,,,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원피스 피규어 몇 개가 계산대 위에 놓여있었다.


애니메이션의 최강자 일본!
일본사 강의를 들을 때, 그들이 만들어내는 애니메이션 상상력의 근원에 대해 들었던 적이 있다.


일본은 대체적으로 <다신교>이다.
이때 다신교라 함은, 불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등 서로의 종교 간에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모든 신들을 다 믿어 버리는 것이 일본의 다신교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교회를 나가면서 절에서 기도를 하고, 또 신사에 가서 복을 기원하는 식의 종교 개념인 거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신에 대한, 아니 신계에 대한 상상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었고,
일상의 신과 다른 행성의 신, 더 높은 신, 귀신과 요괴 등 여러 가지를 동시에 상상해낼 수 있었던 거다.


상상력의 차원이 달랐던 거다.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 드래곤볼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다신교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한 애니메이션은 미국의 영웅물과는 차원이 다르며, 이성을 넘어선 각성의 상태임이 틀림이 없다.

일본은 아마 앞으로도 전 세계 애니메이션을 주름잡지 않을까.


초밥을 매 끼니 먹었다.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가..
유니버셜 스튜디오
여행을 마치고 비행기를 기다리는 간사이공항에서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다. 일본은 모든 순간이 일본 스러워서 좋다.


일본은 꼭 다시 오고 싶은 나라이다.

오사카를 다시 여행하고픈 생각도 간절하고,

새롭게 가보고 싶은 도시들도 많다.


지금도 이따금씩 떠나고 싶어 질 때면

유럽의 고풍스럽고 화려했던 거리가 아니라,
차분했던 일본의 골목길을 홀연히 거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일본인들이 무라카미 하루키 갚은 감성을 지니고 있을 거란 착각을 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일본은 <상실의 시대>이기도 하니깐.              


매거진의 이전글 대영제국의 심장, 런던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