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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괴물 Sep 27. 2016

사랑의 도시, 파리 이야기

파리 여행 에세이

사랑의 도시 파리.

내가 다녀왔던 파리는 그야말로 여유와 낭만이 넘치는 곳이었다. 물론, 여행자의 눈에 비춰진 자유로움이 한껏 투영되었음이라.

나에게 파리는 우뚝 솟은 에펠탑 보다, 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바이올린 연주의 아름다움으로 기억된다.
거리의 예술가들.

지하철역마다 은은하게 들려오는 그들의 연주가 너무 멋있어서, 길을 걷다 말고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의 음악을 감상했다.
그 어떤 화려한 콘서트 보다도 더 깊은 감동이 있었던 연주. 클래식을 잘 모르는 나도, 내 친구도 그저 하염없이 빠져들었다.
 


파리를 사랑과 예술의 도시라고 했던가.
골목골목 마냥 걷다가 운치 있는 벤치에 앉아서 마신 커피 한 잔도 좋았지만,
무리해서 시켜본 이름 모를 와인 한 잔도 좋았지만,
지하철역 한켠에서 들려오는 음악이 훨씬 달콤했던 것 같다.
거리의 화가들이 내뿜는 아티스트 향기와

벤치 속 연인들의 속삭임이 더 황홀했던 것 같다.





파리는 왠지 그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곳이다. 유럽 사람들 사이에서도 낭만의 도시라 불리는 그곳.


축구를 예술로 만들어버린 지단과 앙리가 있는 곳.

세계 패션의 흐름을 주도하는

샤넬, 루이비통, 디올의 탄생지.

에펠탑과 세느강의 노을이 아티스트의 감성을 자극하는 바로 그곳.



하지만 이 아름답기만 한 프랑스는

인류 역사를 주도하기도, 역사 속에 희생되기 했던 희망과 슬픔이 공존하는 나라다.


파리의 어느 이름 모를 카페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그들의 역사를 떠올렸다.


그 역사의 중심에는 늘 카페라는 공간이 함께 해왔다는 걸 알기에, 커피 한잔 속에 깃들어있는 몇 백 년 동안의 희로애락을 생각했다.

이미 1600년대에 문을 연 파리의 카페는 지성과 예술이 만나 발전을 거듭했던 중요한 장소였다.


급진적인 부르주아 사상가들이 민중들과 만나며 프랑스의 자유와 평등사상을 키워나갔던 장소.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바탕으로 노동운동과 사회주의가 꽃피던 곳이었다.

예술가, 망명객, 지식인의 회합과 토론, 글쓰기 장소이자 사랑을 나누는 장소이기도 했던 이곳에서

바로 인류 역사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어준,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프랑스 국토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왕과 귀족들에 대항한 시민들이 자유·평등·박애를 부르짖으며 일으켰던 이 혁명은 세계 많은 나라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고, 결국 오늘날까지 이어진 민주주의의 큰 원동력이 되었다.


수많은 민중들의 희생 앞에서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었던 그들의 신념이 얻어낸 사랑과 예술.


파리의 이름 모를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가 더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한 도시를 넘어서, 전 세계의 사상과 문화, 예술을 견인했던 파리의 카페.

길거리의 흔한 카페에서도 도시가 주는 역사의 흔적들이 느껴지는 듯했다.




이러한 프랑스인의 정신은 그들의 교육문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내가 그들에게서 가장 부러웠던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수능과 가장 많이 비교되어온,

프랑스의 수능격인 바켈로레아.

프랑스 교육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철학 및 사고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이 시험의 목적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강한 시민을 길어내는 것”이라고 한다.


시험이 진행되는 날은 학생들만이 아닌 전 프랑스 사회가 관심을 보인다.

성인들은 자신의 지적 수준과 토론의 주제로 시험문제를 함께 보고, 정치가들은 저마다 자신이 작성한 답안지를 언론에 공개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사회적이고 철학적인 접근을 요구하는 이들의 교육문화.


그와 반대로 생각하기보다는 더 많이 암기해야 하며, 남들보다 더 빠르게 배우는 게 미덕이 되어버린 우리의 교육문화가 생각났다. 교양과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방식이 아닌, 성적에 들어가는 무언가를 공략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버린 우리의 교육 현실 앞에서 그들의 교육 철학이 참 많이 부러웠다.


물론 장단점이 존재하겠지만,

한국의 교육을 고스란히 겪으며 답답함을 느꼈던 나에게는,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어떤 교육을 건네주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적지 않은 고민 앞에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덕목이다.



문화가 다르고, 역사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곤 하지만,

그들의 교양에 괜시리 질투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내가 파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은

다름아닌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미술사에 대해서는 깊게 공부해 본 적 없지만,
그래도 역사를 전공한 사학도로써 세계 최고의 박물관을 정복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예술과 역사는 언제나 하나였으므로.

루브르 박물관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많은 박물관들이 그 마다의 색깔을 지니고 있지만,
이 곳은 뭐, 나 같은 소인으로서 감히 색을 논하기 어려운 그런 곳이었다.

어떤 이는 말했다.

(그 어떤 이가 아마 박웅현 씨였던 것 같다.)
파리의 박물관 한 작품 앞에서, 몇 시간을 서있으며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감성에 대해서.

인문학과 예술을 연결시키며 했던 그의 말이 내 맘속에 오래도록 맴돌았었는데,
나는 아무리 그러려고 해봐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물론, 십여분 봤던 작품이 있었지만 그 이상의 더 깊은 정신세계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아직 삶의 정수가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무늬만 아티스트라는게 티가 났던 것인지,

나는 그저 작품 하나하나보다는 박물관 그 자체가 더 좋았다.

웅장하고, 차분한 장소.
때로는 아담하고, 신비로운 장소.
노인과 중년과 청년과 아이가 모두 공존하며 감동받을 수 있는 장소.
그 많은 작품들을, 그것도 하나같이 대단한 작품들을 소중히 품고 있는 조심스런 장소.
매일같이 전 세계 수 만 명의 관광객들에게 영감을 주는 풍요로운 그 장소.


그저 그 박물관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었음이라.

이런 박물관 하나로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인도하는 파리라는 곳이 참 부러웠다.



문화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결코 아닐 것이다. 수 세기에 걸쳐 형성되는 그들의 자유로움과 낭만. 거리마다 사랑 가득한 로맨틱 시티.

세느강변에서 관광객들을 보고 손을 흔들어 주는 젊은이들의 여유로움과 에펠탑 꼭대기에서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 연인들의 모습이 그 자유로운 낭만의 정수를 찍어줬던 것 같다.

만들어진 이미지라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나에게 파리는 몇 번이고 다시 찾고 싶은,

그런 사랑의 도시로 기억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다시 찾아야지 다짐했던 파리.

아내와 함께 세느강의 노을을 함께 맞이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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