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같은 영화, 라라랜드
La La Land, 2016
오랜만에 남기는 영화 후기이다.
그간 재밌는 영화를 참 많이 봤던 것 같다.
긴장감이 가득한 영화,
달콤한 멜로 영화,
탄탄한 스토리와 반전이 인상적이었던 작품들이 수 없이 스쳐 지나갔지만
어제 본 <라라랜드>는 기존의 영화들과는 좀 다른 느낌을 안겨다 주었다.
긴장감 가득해야 관객을 몰입시킬 수 있고,
블록버스터급 액션이 들어가야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요즘.
그저 두 배우의 눈빛과
영화를 관통하는 구름 같은 음악들이
참 뻔하지 않은 시간을 선물해주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그 여운이 가득 남아
결국 글을 쓰게 만드는 그런 영화였다.
영화에 대한 스토리 언급은 하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뻔한 이야기 일 수 있지만
관객의 상상력에 더 많은 것을 맡기는 영화.
과감한 생략과 빠른 시간 전개를 통해
반전보다는 잔잔한 희로애락을 충실히 선사해주는 영화.
사실 뮤지컬 영화는 호불호가 있다.
몰입해야 되는 극 속에 춤과 음악이 들어갔을 때
관객의 집중력이 흐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극에 온전히 빠져들어야 하는데
뮤지컬 요소들이 개입하면서,
공연이 주는 비현실성이 부각되게 된다.
마치 내 친구의 이야기처럼 현실적이게 여겼다가도
춤과 노래 때문에, 픽션임을 더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라라 랜드는 그런 뮤지컬 영화에 대한 편견을 깨어주었다.
음악이 있었기에 섬세함이 날카롭지 않았고,
마치 구름처럼 둥둥 떠다녔다.
그리고 그 뮤지컬적인 요소들은
LA라는 극중 공간이 주는 '환상'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고,
그것은 색다른 울림이 되어 영화 속으로 온전히 빠져들게 만들었다.
참 동화 같았던 영화
어쩌면 한때는 누구나 꿈꾸었을 자기 내면의 무언가를 꺼내어 줄 수 있는 영화였던 것 같다.
사실 관객이 숨겨둔 내면의 꿈을 끄집어내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어쩌면 거북하거나 불쾌할 수도 있고,
현실의 비현실성 속에서 혼동을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것을 간지럽고 따뜻하게 이루어낸다.
전혀 자각하지 않도록 아주 미묘하게 다가온다.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그저 주인공들의 음악에 빠져있다 보면
그게 어느덧 내가 되고, 나의 환상이 되고, 나의 꿈이 되어버리는 기분.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사랑받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아내와 나의 인상 깊었던 장면이 갈렸다.
아내는 여자 주인공 엠마 스톤이 오디션 때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꿈을 풀어내는 장면을 꼽았다.
그녀는 ost의 12번 트랙 "Audition(The Foots Who Dream)"이라는 곡을 부르며,
바보같이 꿈을 쫓아가는 이들을 행복에 대해 노래한다.
아내는 시적인 노래와 함께 꿈을 그려내는 그 장면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남자 주인공이 재즈 바에서 여자 주인공을 마주하며 피아노 연주를 하는 장면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 찰나의 화면 전개는 나에게 폭풍 같은 감정과 여운을 선사했다.
잊고 지냈던 일기장 같은 감정이랄까.
방황하던 대학시절 이후로 한동안 실종되었던 뭉클한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마음이 너무 잘 전달되어 행복하면서 슬펐고,
뭔가,, 살면서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아니 어쩌면 이미 경험했을 수많은 가능성들이
참 허무하고, 서글프게 느껴졌다.
감히 영화 전체가 그 장면을 위한 배경이었던 느낌이 들 정도로 많은 여운이 남는 장면이었던 것 같다.
이 잔잔하고 그저 사랑스러운 영화는
감히 재즈 같은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예측하기 어렵고,
치열하지만,
그 안에 수많은 대화가 존재하는,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아름다운 선율로 완성되는 음악.
극에서 말해준 재즈의 정의와 비슷한 무언가가 아닐까.
주말 아침,
라라랜드의 OST를 반복해서 들으며,
어젯밤 느꼈던 구름 같은 기분을 정리하고 있다.
어김없이 다가오는 한 해의 마지막을 앞두고
한껏 차분해진 나의 기분을 잔잔히 위로해준 친구 같은 영화.
앞으로 한동안은,
겨울이 다가올 때마다 이 영화를 찾게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