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네 색을 잃지 않기를.
네 번째 이야기, 외로움(30x30)
새로운 사랑과 함께 올 것만 같았던 너였지만
너는 어느새 홀로 내게 찾아왔다.
핑크빛으로 물들어가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외로워하거나, 처량한 심정이 들지어도
주변에 색에 휘둘려
오롯한 네 색을 잃지 않기를 바라.
Fourth story, Lonely (30x30)
You, who seemed to come with new love, came to me alone.
I hope you don't feel lonely or lose your color, which is swayed by the color around you, even if you feel miserable looking at the street that is turning p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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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계절을 탄다.>라는 말을 쓴다.
그 계절의 흐름에, <봄>은 <가을>과 함께 사람의 마음을 유난히도 간지럽히는 계절이다.
그 간지러움은 어느 곳으로 표출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 이상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분명 계절을 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느껴보았을 만한 감정이다.
보통 주변을 보면 '연애', '우울', '외로움'으로 많이 표출되는 것 같다.
그 계절의 흐름에, 봄의 유난한 간지러움에 가끔 자기 자신을, 자기만의 색을 잃어버린 채 본인이 생각하고, 상상하던 그런 사람과의 연애도 아닐 분더러 사람과 사람으로서 알아가야 하는 충분한 시간도 없이 그렇게 급급하게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을 종종 본 적이 있다. 그런 연애의 끝은 열에 아홉은 비슷하게 끝이 나는 것 같다. '성격차이', '맞지 않아서', '그런 사람인지 몰라서' 등 분명 시간이 필요한 문제로 인해 '마침표'를 찍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 '마침표'가 깔끔하게 찍히는가? 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작가가 본 대개의 경우에는 그 마침표는 아름답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분명 마침표는 아름다울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상처로, 누군가에게는 아픔으로 남기에는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마침표가 분명 서로의 탓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서로의 탓은 늘 주변 지인들에게 털어놓는다. 그럼 상대방은 분명 이상한 사람이 되고야 만다. 하나부터 열까지 진실, 팩트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본인의 감정에서 상대방의 입장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이상한 소설 같은 이야기들로 주변 지인들에게 그 혹은 그녀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렇게 그 사람은 졸지에 이상한 사랑의, 이상한 연애의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만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전하더라도 당신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들을 한 토시 틀리지 않고 절대 전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 생각한다.
당신은 어떤 사랑을 하고 있고 어떤 사랑을 했었는가?
당신만 상처 받았다고 생각하는지, 상대방은 상처를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생각해보시길.
입에서 입으로 전달된 아픈 이야기들은
그 이야기들의 주인공 모두가
또 다른 상처를 서로 남기고, 또 다른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남긴다.
그 흉터가 또 다른 오랜 외로움을 낳는 법이다.
지금,
당신은 어떤 외로움을 지니고 있는가?
단순한 외로움인가, 상처를 줘서 혹은 상처를 받아 생긴 외로움인가.
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빨리 빠져나오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