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신동(천재)은 어떻게 자랐을까

첼리스트 <<자클린느 뒤 프레, 예술보다 긴 삶>> 리뷰(1)

by 정전

취미로 첼로를 배우다 보니 첼리스트를 다룬 책까지도 손이 뻗치게 되었다. 열기가 금방 식지 않아야 할 텐데. 첼로를 키워드로 발견한 책, <<자클린느 뒤 프레, 예술보다 긴 삶>>(캐럴 이스턴 지음, 윤미경 옮김)을 리뷰한다.


원제는 Jacqueline du Pre: A Biography, 즉 ‘자클린느 뒤 프레의 전기‘일 뿐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예술보다 긴 삶‘이라는 낭만적 표현이 함께 붙어 번역되었다. 첼리스트 하면 빠짐없이 언급되는 자클린느는 그리 긴 삶을 살지 못했으며(1945-1987, 42년) 연주자로서의 삶은 더 짧았다(10년 남짓). 그런데 지금까지도 그의 첼로 연주곡이 최고의 명반으로 남아있으니 ‘삶보다 긴 예술‘이 제목으로써 더 적확할 수도 있지만, 역자(윤미경)는 뒤집어 틀어 시적인 제목이 탄생했다. (요즘 표현으로, 역자가 역자했다!)


저자는 자클린느의 말년에 자클린느의 집에서 우연히 음악 수업을 듣게 되고 그녀의 삶에 대한 호기심과 연민으로 교류하게 된다. “자클린느가 내(작가) 인생의 주제인 글쓰기에 대해 모르는 것만큼이나 나도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는 깜깜”(37쪽)했지만, “나에 대해 써보지 그래요?”라는 자클린느의 제안이 있은 후로 수없는 고민 끝에 작가는 결국 전기를 쓰게 된다. 자클린느의 인생을 세 시기로 나누어 그 시절 자클린느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은 100명 이상을 인터뷰하고 당시의 문헌(신문기사 등)이 잘 엮여내 생동감 있는 책으로 탄생했다. 자서전이 아닌 제삼자가 쓴 이 전기를 죽은 자클린느는 결국 읽지 못했다. 전기에는 자클린느의 실제 음성보다 타인의 시선과 언어의 비중이 훨씬 크지만 비로소 이를 통해 자클린느가 더욱 입체적이 되었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리뷰는 제1부만 다룬다. 챕터명은 역자의 말에서 인용했다. (462쪽)


제1부. 어머니의 헌신과 영향 아래서 첼로를 연주하던 신동의 시기

제2부. 최고의 첼리스트로 손꼽히며 빛나는 연주자의 길을 걷던 시기

제3부. 다발성경화증으로 첼로를 놓고 휠체어에서 지내야 했던 말년


요약하면 “첼로 천재로 태어나 세계 최고 첼리스트로 명성을 누리다 젊은 나이에 불치병에 걸려 생을 마감하다.” 정도가 될까.


얼마나 드라마틱한가. 감히 남의 인생을 두고 흥미진진하다 표현하기 참으로 실례지만, 책은 한순간도 클라이맥스가 아닌 게 없다.


이 이유 외에도 개인적으로도 매우 재밌게 읽었다. 그 이유로,


1. 일반 교육을 받은 나는 (음악) 신동이 어떻게 교육되는지 잘 몰랐고

2. 천재의 재능이 교육을 통해 날이 갈수록 꽃 피워지는 모습이 신기했고(누가 그러더라, 남의 재능 구경하는 게 제일 재밌다고)

3. 직업이 교사다 보니 천재를 어떻게 가르쳤는지(또는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궁금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재클린 뒤 프레‘으로 더 익숙한 자클린느는 1945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자클린느가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오케스트라 소리 중 첼로 소리만 콕 집어서 “엄마, 저 소리를 내고 싶어.”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그녀는 5살 때부터 첼로를 시작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첼로는 남성적 악기였고, 여자가 다리를 벌리고 첼로를 연주하는 것은 음란하다고 믿었던 과거(!)에서 조금 벗어난 시기에 자클린느가 첼로를 잡았다는 건 참으로 다행이다.


첼로를 사랑한 자클린느는 첼로를 매일 4시간 이상 연습했다고 하며 일반 학업은 어쩔 수 없이 소홀히 한채 음악 레슨에 더욱 몰입했다. 이 당시(1950년대)에도 어머니의 ‘라이딩’이 버젓이 존재했다! 자클린느의 어머니는 시간을 쪼개 아침 7:30부터 딸을 첼로 연습 시키고 차에 태워 학교에 보내줬다가 다시 레슨 장소로 데려다주었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첼로 연습을 하게 했다. 자클린느의 첼로 선생님이자 유명 첼리스트 윌리엄 플리스는 자클린느의 일취월장하는 실력을 이렇게 말했다. “벽에 공을 던지는 식이었다. 더 많이 칠수록 더 많이 되돌아왔다. 나는 그 애의 잠재력을 첫날 아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수업을 몇 번 해보니 마치 꽃봉오리가 열리듯이 그렇게 잠재력이 피어났고 그래서 모든 게 가능하리라는 걸 알았다. 내주는 과제마다 풀어내는 속도가 마치 고삐를 풀어준 말과 같았다.” (72쪽)


하지만 모든 일은 양면이 있다. 세계적이며 천재적 첼리스트로 성공하기 위한 당연한 과정이겠지만 이로 인해 발생하는 희생과 고통을 피할 수 없었다.


반대급부 1. 희생된 가족

신동의 재능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다. (133쪽) 신동의 특별한 재능을 얻음으로써 가족은 부모(한쪽 또는 모두)의 삶이나 신동의 형제자매의 삶, 또는 이 모두를 잃는다. ”다른 자녀가 똑같은 재능을 지녔다 할지라도, 둘 다에게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63쪽) 아!예! 불!가!능!하단다. 우리나라 최고의 스포츠 선수 뒤에, 재산을 팔고 모든 시간을 쏟아 전적으로 그들을 서포트한 부모와 일반적 직종에 있는 또다른 형제자매의 무용담이 불쑥 떠오른다. 가족의 남모를 고충을 엿보자 마음이 참 아리다.


자클린느만큼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촉망받았던 친언니 힐러리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와 함께 3중주를 하긴 했지만 즐거운 일이라기보다는 싸움이었어요. 어쩌면 서로를 질투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재키(자클린느의 애칭)의 연주를 들으러 집에 오면 부엌에 숨었던 기억이 나요. 질투심을 느꼈다는 기억은 없지만 아마 워낙 오래되어서 일상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어요. … 사람들이 저를 보면 ‘멋진 네 동생은 잘 지내니‘라고 물어보곤 했지요.”(64-65쪽) 이 문장에는 천재 여동생을 향한 질투, 동경, 두려움, 무기력 등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다. 만일 내 동생이, 아니면 내 언니오빠가 천재였으면, 나는 어떤 감정으로 그 천재를 몇십 년 간 보고 지내야 했을까?


반대급부 2. 소외, 외로움, 고립

자클린느는 시간의 대부분을 첼로에 투자한 만큼 다른 것들은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또래 관계를 통해 자연스레 얻는 사회성이 결여된 자클린느는 잠깐의 학교 생활을 매우 힘들어했던 것 같다. 학교 수업과 행사 대부분을 레슨, 대회 등으로 빠질 수밖에 없었던 자클린느는 친구를 사귀는 법을 몰랐다. 어릴 적 큰 추억으로 남는 친구들과의 파자마 파티는 언감생심이었다. 자클린느는 고립되고 소외되었으며 이럴수록 첼로만이 자클린느의 곁을 지켜줄 뿐이었다. 자클린느는 말했다. “첼로는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 나의 가장 친구였다.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다는 것, 필요할 때마다 홀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 첼로는 나의 멋진 비밀이었다. 생명이 없는 대상이었지만 나는 첼로에게 나의 슬픔과 문제들을 모두 다 말하곤 했다. 그것은 내가 필요로 하고 원하는 건 뭐든 다 주었다. 첼로를 연주하는 일이 가장 좋았다. … 하지만 나는 첼로 연주를 통해 사람들을 대하는 법을 알 수는 없음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99-100쪽)


학창 시절 자클린느의 동급생은 말했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 그녀와 소통할 수 없었고 그녀는 말을 통해 우리와 소통할 수 없었던 셈이죠. 우리의 주된 관심거리였던 남자아이들은 그녀의 삶 일부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84쪽)


저자는 이렇게 정리했다. “자클린느는 또래의 친구들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멀어졌고 정상적인 어린 시절 비슷한 것도 더 이상 가질 수 없었다. … 사춘기라는 공유된 의식을 치를 시간이 전혀 없는 세계 속으로 떨어뜨렸다.” (77쪽)


모든 삶이 그렇지 않은가. 얻으면 곧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첼로를 제외한 대부분을 잃었기 때문에 자클린느는 첼로를 득음하는 경지에 이르지 않았을까. 그러면 첼로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은 희생되는 것이 필수불가결한 것일지도.


자클린느는 17살에 비로소 처음 지하철을 타보게 되고 영화관에도 가보게 된다. 어머니의 전두지휘 아래 온실 속 첼로만 연주하다 10대 후반부터 사춘기로 진통하는 시기가 다가오게 된 거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지독한 번뇌(유명 첼리스트의 삶 vs.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일반적인 삶 사이의 갈등)로 첼로를 멈추기도 했다고. 당시 자클린느를 만났던 사람들은 자클린느가 어린아이처럼 매우 순수하고 수줍음이 많은 소녀였다고 기억한다. 물론 첼로만 켜면 온갖 열정, 생기, 에너지가 한 번에 뿜어져 나왔지만.


자클린느는 여러 유명 첼리스트에게 개인 레슨을 받았지만 윌리엄 플리스의 교육 철학에 가장 마음을 쏟았으며 그를 스승으로 칭했다. 윌리엄 플리스는 “자상함과 인내심으로 자클린느에게 용기를 북돋아줌으로써 그녀의 재능이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펼쳐질 수 있게 했다. 플리스는 악절을 소화하는 훌륭한 운지법이나 운궁법이 하나만은 아니며 작품을 연주하는 데는 다양한 방식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146쪽) 윌리엄 플리스 책 <<첼로>>에서 인용한 대목도 아래 적어둔다. 교육자의 입장과 아티스트의 입장을 동시에 엿볼 수 있는 구절이다. 첼로 초보이면서도 타 분야의 교육자인 나에게도 영감을 주는 문장이다.


“결국 연주는, 음악이라곤 배운 적도 없지만 아이의 머리맡에서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유모의 노래처럼 비과학적이고 구속이 없는 소리여야 한다.”


“연주를 할 때는 마치 맹인이 손과 손가락 끝으로 사물을 느끼듯이 오른손과 손가락 끝이 음악의 테두리를 훑고 지나간다고 상상하라.”


“(왼손은) 음악이 지시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도록 온전히 자유로워야 한다. 마치 살랑대는 미풍에도 흔들릴 만큼 기름을 매끈하게 바른, 교회 꼭대기의 바람개비처럼.”


“만일 올바른 것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머리로 연습을 한다면 매일 4시간씩의 연습이면 충분하다. 팔걸이의자에 앉아서 악보를 공부하고, 대위법을 익히고, 울림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어제 배운 것을 검토하며, 왜 나는 항상 지판의 한 지점에서만 연주를 하는 걸까를 자문해 보고, 자신의 연주와 건반악기 연주 사이의 관련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첼로만 연습해 봐야 소용없다. 세상의 모든 기법을 다 활용해도 음악을 만들 순 없다. 그건 ‘기법’ 일뿐이다. 기법이 무의식적으로 나올 때라야 비로소 창조적일 수 있다. 첼리스트가 되는 것과 음악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음악가가 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과 가슴속에 음악을 심어놓는 것을 의미한다. 가슴의 가장 훌륭한 동반자는 손이다. 손놀림은 내부 느낌의 외부적 표현이다. 연주할 때 보이는 우리의 모든 손놀림은 음악이 일깨워주는 감정의 즉자적 반영이어야 한다. 아무리 강력한 연주자라 해도, 설령 첼로의 소리를 물리적 한계점까지 끌고 갈 수 있다 해도, 작은 첼로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영적인 것만이 그 지점을 넘어설 수 있다. 자신만의 드라마로 로켓을 쏘아 올려야 한다.” (95-97쪽)



이미지 출처: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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