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분명 내게 묻고 있는 거였다. 책상 위를 물끄러미 보면서 혼잣말처럼 두 차례나 같은 문장을 말했다. 편하게 집어가도록 놔둔 막대사탕 바구니를 뚫어져라보고 있는 걸 알아채고 나니 자연스레 미소가 나왔다. 챙겨 오길 잘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지친 어르신들의 당 충전과 딱히 구경할 게 없는 아이들이 사탕을 반긴다.
<전주책쾌> 북페어는 '덕진공원'의 연못 한가운데에 있는 한옥 형태의 도서관에서 열렸다. 한가득 수면을 메운 연꽃을 보러 나들이 나온 가족들모습을 보니저절로 미소가 나온다.
내 책은 그야말로 비주류(minor)의 향기를 풍긴다. #혼삶 #혼자여행 #1인가정과 같은 키워드는 강력한 필터가 되어 독자층을 걸러낸다. 아이들 손 잡고 온, 부모님 모시고 온, 연인 팔짱 끼고 온 사람들이 걸린다.그런데 내 키워드 바깥, 내 독자층이 아닌 '여집합'에 계시는 분들로부터의 응원과 애정을 얻는 건 예상치 못한 행사의 수확이었다.
"그럼 작가님이 사장님이에요?" 연꽃 나들이를 겸해서 행사장에 오신 분들 중 상당수는 걷기 편한 차림의 어르신들이었다. 독립출판 개념 자체를 신기해하는 분들이 새로운 형태의 창작물이 넘쳐나는 이곳에서 흥미롭게 이것저것 질문하는 모습이 생그럽다. 그러다 비교적 전통적인 형태의 종이책을 발견하면 또 다른 적극성으로 반갑게 들여다본다.
이렇게 외부에서 내 책을 직접 소개하는 건 생경한 일이다. 표지 전체에 떡하니 내 얼굴이 들어가 있는 책이라 "어머, 이 분이 작가님인가 봐!" 하며 자연스레 소통이 시작된다. 어디선가 만났던 인연도 아니고, 본 적 들은 적 있는 유명인도 아니고, 불과 몇 초 전에 책에서 본 얼굴을 발견하고 이렇게까지 반가워해 주시다니!
가볍게 주고받는 대화, '스몰 토크(small talk)'를 나눌 때는 나름의 예상 가능한 흐름이 있는 법. 성취를 이야기하면 축하로 답하고, 칭찬을 받으면 약간의 겸손을 보이고, 작은 걱정에는 비슷한 크기의 응원이나 위로가 온다. 예전에는 '혼삶'키워드를 꺼내면 애정 어린 염려나 선을 넘는 참견 등 이런저런 드라마틱한 반응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멋지네요!" 하는 대답이 따라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How are you?" "Fine, Thank you. And you?"가 원치 않아도 툭 튀어나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타인의 선택과 삶을 응원하는 방향으로 소통하는 문화가 정착된 것 같아서 고무적이다.
내 책을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펼쳐보고. 휘리릭 넘기다가 어느 지점에서 멈추는지. 어딘가의 어떤 대목이 일행과 속삭일만한 이야깃거리가 되는지. 이런 건 설문조사나 리뷰로는 알 수 없는 소중한 2차 자료가 된다.
내 책을 읽다가 꺄르르 웃어주시는 분들, 이런 현장 반응이 난 유난히 즐겁다. '심심함을 외로움으로 착각하지 말자', 'fake 고독 걸러내기' 같은 소제목을 언급하며 "이거 거의 자기 암시 아니야?" 하시며 깔깔 웃어주셔서 너무 반가웠다. 그렇지, 내 책은 어찌 보면 결국 자기 발견, 자기 정리, 자기 다짐 이런 것들의 합이다.
이틀 동안 듬뿍 사랑받고 가는 기분. 본부석에서 제공하는 아이스커피가 있지만 에어컨 때문에 추워서 따뜻한 게 마시고 싶다고 했더니 캐모마일 티를 사들고 온 엄마. 전주에서의 학창 시절을 함께 한 동무들의 방문. 헿... 기분 좋다.
심지어 운영진까지도 이렇게 셀러(이 북페어에서는 셀러들을 '책쾌'라고 칭한다. 직접 목판으로 책을 찍어내서 짊어지고 다니며 파는 책 보부상 같은 사람들을 일컫는 옛말이란다.)를 아끼는 행사가 있다니. 매일 챙겨주신 김밥과 빵은 공을 들여 선별한 맛집에서 공수한 터라 맛이 남다르다.
참가한 동료(?) 책쾌 분들도 배려가 넘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있어서인지 서로의 창작물에 대한 깊이 있고 애정 어린 반응을 보인다. 다른 분들의 창작물을 구경하는 게 왜 이렇게 재밌는지. 사고 싶은 책은 많은데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명분도 부족해서 친구들의 1년 치 생일선물까지의 명목을 끌어다 놓고 쇼핑을 한껏 즐긴다.
무엇보다도, 방문하신 손님들에게서 유례없이 편안한 애정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전주에서는 이런 행사가 귀하게 열리기에 다들 즐길 준비를 갖추고들 오신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살짝 틈날 때마다 창밖 연못을 내다보면서 왠지 충만하고 겸손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내가 창작자로서 해 놓은 일들에 비해 황송할 정도로 많은 걸 얻고 가는군.
이렇게 힐링하는 와중에도 본업인 기획자의 버릇(?)을 못 버리고 이런저런 조사, 분석, 인사이트 연구를 하느라 계속 기분 좋게 머리를 굴렸다. 기획자로서의 북페어는 2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