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인 한유화 Jul 06. 2023

기획자 버릇(?) 못 고친 독립출판 작가의 북페어

북페어 <전주책쾌 2023> 셀러 참가 후기 2탄

지난 주말에 참석한 독립출판 북페어인 <전주책쾌 2023>은 정서적으로도 수치적으로도 의미 있는 결과를 남겼기에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기업에 오래 몸 담은 사람들은 박람회에서도 맘 편히 있질 못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고객을 만나서 생생한 피드백을 받고 조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메모지에 바를 정(正) 자를 그리며 북페어 데스크 앞을 지나는 방문객을 헤아린다.

1. 데스크 앞을 지나는 사람 수

2. 멈춰 서서 내 책을 터치하는 사람 수

3. 고객 유형 별 체류 시간

4. 책 <여행블로거의 혼삶가이드> 구매 고객 유형, 특성을 시간대 별로 정리한다.


가 알고 지내는 지인들에 한해서는 전주에 사시는 분들이 서울과 수도권에 비해서 결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고 상대적으로 1인 가구의 비중이 낮다고 느꼈다. (실제 수치는 어떤지 궁금해지네.) 문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음에도 이번 북페어 방문객 중에 혼자 오신 분들은 생각보다 적고, 가족 단위 비중이 훨씬 높은 것에 놀랐다. (일반적으로 책 관련 행사는 일행 없이 오시는 분들이 많다고 느꼈었는데!) '연꽃 맛집'으로 소문난 행사 장소의 영향도 물론 크다. 내가 대략적으로 헤아린 바로는 방문객의 80% 이상이 가족과 커플. 나머지 20% 중에서는 평소에 책을 즐기지는 않고 살짝 둘러보기만 하려고 오신 분들도 계시고(중년 남성층을 다수 포함한다), 나머지 방문객 중에서도 혼삶 키워드를 본격적으로 생각하기엔 시기가 조금 이른 청소년을 제외하면 내 책의 키워드에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예비 독자층에 해당하는 건 얼추 5%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 5% 내에서는 구매 비중이 아주 높다. 구매 행동에도 특징이 있는데, 책 중간 어딘가를 펼쳐서 오래 읽다가 구매 결정을 내린다는 점이다. 최근 독립출판 서적은 제목과 키워드, 이미지와 비주얼을 통해서 구매 결정이 이뤄지는 추세라고 들었는데 이 책의 고객들은 심지어 목차도 잘 안 보고, 휘리릭하다가 임의의 페이지에 멈춰 서서 대부분 3분 이상 열람했다. 소위 글의 톤 앤 매너, 문체보다는 내용 자체에 공감하거나 흥미를 느낀 경우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는 오히려 도서의 핵심적인 마케팅 요소를 통한 매력발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야기된 반응이 아닐까 하는 생각. 출간 전후로 계속 고민한 책 제목과 슬로건에 대한 부분은 제대로 분석을 해 보면 좋을 것 같군. 제목 공모전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


실제로 책을 구매하신 분들을 기준으로 하'20대 후반~50대 여성' 정도로 종합할 수 있을 것 같다. 매고객이 특정 연령에 집중되지 않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점이다. 이 책에서의 혼삶이 #비혼에만 초점을 둔 게 아니라는 것이 전달되었다는 반증인 거라면 행복할 것 같다.


사실 가장 기본적인 고객조사는 1) 왜 사는지, 2) 왜 안 사는지, 3) 어떻게 하면 살 것 같은지를 알아내는 것인데(전 직장에서 접하게 된 간단한 조사 원칙이다.), 내가 작가 본인이라는 걸 아는 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고 해도 의미 있는 순수한 답을 얻어내기는 쉽지 않다는 게 아쉬웠다.

"글이 통통 튀는 느낌이 들어요. 작가님 닮았나 봐요."

작가를 직접 마주한 상태에서의 독자들은 대부분 이렇게 반가울 만한 말들을 선물처럼 전해준다.




내가 북페어를 구경 다닐 때의 경험대로라면, 데스크 안쪽에서 셀러들이 너무 눈을 반짝반짝하며 적극적으로 응대할 준비가 되어 있으면 조금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북페어의 공간 구조 상 마치 뷔페에 온 것처럼 어느 정도 줄을 이뤄서 차례차례 각 테이블들을 지나게 되는데, 그러다가 서서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 있으면 오히려 사람들이 스스슥 빠르게 지나치는 것 같았다. 내 책은 특히나 적극적인 호객을 한다고 해서 구매로 연결되지는 않을 거라는 판단 하에 나는 제대로 인사를 건네야 하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주로 앉아서 응대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셀러인 나보다 테이블 위의 책들로 사람들의 시선이 먼저 향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영화로도 나온 책 <머니볼>에서 야구 경기에서 홈런을 많이 치는 것보다도 일단 안타를 쳐서 1루까지 나가는 '출루' 횟수를 높이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다는 내용이 나오는 것처럼, 세일즈에서는 일단 '터치'의 횟수를 높이는 것이 정석 아니겠는가! 오신 분들에게 첫인사할 때 "안녕하세요"나 "편하게 보시고 물어보세요"하고 하지 않고 "펼쳐보셔도 돼요."로 바꿨더니 즉각적인 행동변화가 있더라는. "펼쳐서 읽어보셔도 돼요."라는 '허가'하는 말의 형태를 시도한 것도 나쁘지 않았다.






책을 손에 집어 들지 않고 책상에 둔 채로 조심스럽게 페이지를 넘겨가며 보시는 분들에게는 "맘껏 읽고 가셔도 됩니다."라고 응대했더니 확실히 체류 시간이 늘어났다. '맘껏'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책 사야 할 것 같은 부담감 없이 편하게 오래 즐겨주셨으면 하는 뉘앙스를 전하려고 노력해서인지 많은 분들이 웃음으로 화답해 줬다.


처음이다! 남자분 중에 이 책에 관심을 갖고 펼쳐보시는 분은! 알고 보니 지인에게 선물할 의도로 '혼자서도 멋진 00에게'라고 메시지와 사인을 적어달라고 부탁하셨는데, 이거야말로 내가 책을 만들면서 기대했던 무언가였다. 나 자신의 혼삶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주변의 누군가를 떠올리며 응원하기도 하는.




개정판 및 차기작에 대한 인사이트와 아이디어도 공유할 수 있어 좋았다.


[향후 적용하고 싶은 것들]

1. 즉각적으로 '타깃 외 고객'의 관심을 끄는 요소를 적용하면 좋겠군. 이번 행사에서는 책 가격 표기 옆에 '최고심'이라는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메모지를 사용해서 책 소개를 짧게 적어두었었는데, "어! 최고심이다!" 하면서 아이들과 20대 여성분들과 소통하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이후의 다른 행사 때는 showcard, pop 등을 제대로 디자인하고 출력해서 활용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손글씨를 독립출판으로서의 야생적인(?) 매력을 더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 (+비용보다도 제작의 번거로움을 최소화하고자)


2. 일행과 얘기하고 싶은 포인트를 만들기. "이거이거 봐봐." 하면서 "나는 이건데,"하는 식의 반응과 대화를 이끌어 낼 만한 촉매제가 되는 그런 요소들. 번에는 진열대에 함께 적어놓은 혼삶 관련 카피들을 보면서 "이거 00씨 얘기 아니야?" 하며 주변 지인을 떠올리는 식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3. 굳이 적극적인 구매 유도를 위한 거창한 사은품을 준비할 필요는 없겠다. 실제로 내 책을 보시는 분들은 키워드나 몇 가지 문장 자체에 꽂혀서 구매하시는 것 같았고 선물/굿즈의 영향은 아아아 아주 적었다고 판단! 책을 사 주시는 분들에게 뭐라도 좋은 선물을 드리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조금 다른 차원으로 접근해 봐야겠다.


4. 1) 왜 사는지, 2) 왜 안 사는지, 3) 어떻게 하면 살 것인지에 대한 답을 끌어낼 수 있는 간접적인 조사 활동을 마케팅이나 현장 이벤트에 적용해야겠다. 혼삶에 관한 가벼운 질문, 밸런스 게임, 해시태그 같은 것들로 소통할 수 있도록. 스티커를 붙여서 선호도를 파악하는 도팅 테스트(dotting test) 같은 것들.


5. 옆 자리에서 함께 한 써니 작가님이 추천해 주신 내용. 그림을 많이 넣어서 이미지가 많은 책으로서 팔면 잘 팔린다는 조언. 이런 행사에서는 더더욱 그럴 것 같다. 내 책은 유쾌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적지 않게 직하고 무거운 책이기도 해서 이제는 light 한 버전으로 많은 사람들과 만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 난 그림을 못 그리는데? 책 <여행블로거의 혼삶가이드>에서는 여행 사진에 drawing effect를 더해서 마치 유화 일러스트처럼 활용했는데 반응이 대체로 좋았다. 어떤 형태로든 일러스트나 카툰을 활용할 일이 생긴다면 내 사진에서 윤곽 따서 그리면 또 어떨까 싶다. 데스크에서 어필할 용도로만 카툰 형태의 창작물을 만드는 것도 괜찮겠다.


6. 새고서림을 운영하시는 새벽고양이에서 출판한 미니북에서 영감을 많이 얻었다. 봉투 안에 쏘옥 들어가는 병풍 형태의 책. 쁘기도 하지만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내 책도 챕터 하나하나 떼어서 미니북으로 만들까? 독서 모임이나 강연을 할 때 하나씩 뽑아가며 활용하면 흥미로운 구성으로 풀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으로 신난 사람들, 혼삶으로서 온 전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