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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Oct 17. 2023

"한국에서는 결혼 안 하는 게 특별한 일이야?"

Mexican, Irish, English vs Korean

중남미 지역을 여행하면서 인상적으로 느껴지는 것들 중 하나는, 현지에서 만난 친구들이 생각보다 ‘논바이너리(non-binary)*’ 표현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여럿이 대화하던 중 서로의 연인관계에 대해 질문할 때, ‘he(그)’나 ‘she(그녀)’로 한정하지 않고 ‘they’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이런 대화 매너는 성에 따른 역할 구분을 피해야 한다는 ‘성 중립적’인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데, 한국에서는 성 중립에 대한 이슈가 조금 뾰족하게 날이 선 주제로 다뤄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곳에서의 '성 중립적 대화'는 포용적이고 포괄적인 뉘앙스와 매너를 갖기에 조금 더 자유롭게 개방적인 기분이 든다.


호스텔 안에서 여행자들끼리 영어로 대화할 때와는 대조적으로, 바깥세상으로 나와서 현지인들과 스페인어로 대화할 때는 남성명사와 여성명사가 나뉜 언어에 적응해야 했다. 나와 대화하는 상대의 성별을 이분법 안에서 명확히 나누지 못하면, 언어를 정확하게 구사할 수도 없게 된다. ‘Amigo(아미고, 남성명사)’인지 ‘Amiga(아미가, 여성명사)’인지 알 수 없다면 친구라 부를 수도 없다.


이런 대조적인 문화들을 경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혼삶, 한국의 1인 가구를 생각하게 된다. 6인실 도미토리의 2층 침대 위에서 토독토독 키보드를 두드리는 나를 친구들이 궁금해하기에 ‘혼자 사는 삶’에 대한 글을 쓴다고 답했더니 무언가 개운치 않은 표정이다. 대부분 남미와 유럽 국가 출신이었던 그들에게는 혼밥, 혼술, 혼행은 물론이고 결혼하지 않는 1인 가구의 삶의 비교적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그런 게 글감이 되나?’하는 반응이었다. 그동안 썼던 칼럼을 자동 번역해서 보여주긴 했지만, ‘비혼’이 그저 ‘unmarried’가 되는 간극은 따로 2차 번역을 해서 메워야 했다. 한국에서는 무엇이든 혼자 하는 것이 생각만큼 일반적이지는 않고, 결혼은 선택이기보다 디폴트(default, 기본값)인 경우가 조금 더 많다는 것에 대해.




"결혼하지 않고 살면 외로워야 해?"

멕시코 친구의 질문 앞에 왠지 멋쩍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사는 비혼인이 1인 가구의 형태를 유지하며 사는 경우가 다수인데, 의외로 싱글끼리 다인 가구를 꾸리고 살아가는 모습을 더 자주 볼 수 있는 문화권도 많다. 일부 국가에서는 연인과 동거하는 방식으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연인이 굳이 결혼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아이를 갖기 위한 전제라고 보기도 한다. 장기 룸메이트를 가족으로 삼고 지내는 것도 흔하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배우자와 자식이 없는 데도 1인 가구가 아닌 경우를 본 적은 있다. 배우자와 사별한 채 형제자매들끼리 살고 계신 시골 어르신 정도? 최근 들어 '생활 동반자'로서 주거를 함께 해 나가는 사례가 많아지고는 있으나 오래된 흐름은 아닐 것이다.


비혼인이 1인 가구가 아닌 세상을 쉽게 떠올릴 수가 없었던 나는 더욱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멕시코 사람들은 사랑이 너무 넘쳐서 여러 집 살림을 하는 일이 종종 있어. 예전에는 장례를 치를 때가 되어서야 그게 밝혀지곤 했는데, 요새는 시대가 바뀌어서 아예 처음부터 가족에게 사실을 밝히고 여러 사람을 사랑하는 '폴리 아모리*'가 많아."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가족의 모습이 있구나. 허헣


가족 형태가 다양해져서 이제는 1인 가구가 주류가 되었고, 그 1인 가구의 생활 형태로 더욱 세분화되어서 더욱 복합적인 모습의 '혼삶'이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가족도 개인의 니즈에 맞게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하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원하는 혼삶의 모습은 무엇인가?




논바이너리(non-binary)* : 성별 젠더를 남성과 여성 둘로만 분류하는 기존의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gender binary)을 벗어난 종류의 성 정체성이나 성별을 지칭하는 용어로, 그러한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된다. (위키백과)


폴리아모리(polyamory)* : 감정적, 성적으로 끌리는 여러 명의 대상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경우 혹은 그러한 사랑의 형태를 일컫는 말로 다자연애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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