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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Nov 02. 2023

죽음을 만나는 핼러윈, 혼삶이 마주하는 공포

Halloween in Mexico

이불을 뒤집어쓰고 "으으으~" 하는 유령 소리를 내고, 핫도그를 먹다가도 입가에 살짝 묻은 케첩으로 처녀귀신으로 빙의하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공포에 몰입한다. 우리 문화권에서는 해골, 유령, 피와 같은 죽음의 이미지를 일상에 가져오거나 희화화하는 것에 비교적 엄격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궁극적인 두려움인 '죽음'에 대한 것들을 끄집어내어 현실 세계로 가져오는 날, 공포를 재미와 재치로 바꾸는 날, 바로 핼러윈(Halloween)이다.


여러 문화권에서 핼러윈은 궁극적으로 '죽음을 만나는 날'이다. 죽은 자들을 기리고 그리워하는 여러 의식의 한편에는 그들을 통해 '살아있는 나'를 위한 안전과 평안을 빌고자 하는 측면도 있다. 우리는 대학입시를 앞두고 조상을 찾고, 새 차와 새 집을 사면 악귀를 쫓기 위해 좋은 귀신을 부른다.



Halloween+Dia Del Muertos in Oaxaca, México



남녀노소, 국가와 문화를 넘나들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비는 소원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게 해 주세요."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들을 다 긁어모아 한 문장으로 만들면 이런 문장이 되겠군.)

이 문장과 반대되는 상황을 상상하면 우리가 삶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사랑 없는 삶, 건강과 행복이 옅어진 삶, 너무도 짧게 지나가는 삶에 대한 두려움.


반대로 죽음 자체, 심지어 죽음 이후에 대한 두려움이 삶의 중요한 결정을 이끄는 경우도 많다. 결혼을 앞둔 지인들이 가정을 꾸리기로 결심한 여러 계기들 중에는 실제로 죽음에 관한 두려움이 영향을 미친 경우가 많다. 신체적으로 사망한 후에 이 세상에서 자신이 사라져 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다른 가족들의 죽음 후에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혹은 자신이 죽은 후에 다른 가족들의 고통과 생계에 대한 두려움까지. 그런 두려움이 실제로 다가오지 않도록 대비하는 방법으로서 가족을 만들고 함께 사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다.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임종의 순간을 떠올려 보자. 나는 언젠가부터 오로지 한 종류의 장면 밖에 떠올릴 수가 없었다. 햇살 따뜻하게 드리운 아늑한 병실 침대 위에 내가 누워 있고, 그를 둘러싼 가족들은 미소를 띤 채 손을 잡고 있다. 살짝 눈물이 그렁그렁하면서 몇 마디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드는 것처럼 눈을 감고 심정지를 알리는 긴 경고음이 들리는 그런 장면. 이런 장면이 아니라면, 그 이외의 어떤 죽음의 상황도 상상할 수가 없었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Oaxaca, México



'혼자 외롭게 죽게 되진 않을까?'

'아무도 모르게 쓰러지면 어떻게 하지?'

'내가 죽으면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게 되겠지?'

1인 가구가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다인 가정에 비해서 조금 더 현실적이기도 하고, 오히려 막연하기도 하다. 설령 건강하게 오래 살다가 죽게 되는 행운이 온다고 해도, 혈육으로 남긴 후손이 없다면 내 병상에 와 줄 사람은 기껏해야 나보다 몇 살 연하인 노년의 또래 친구일 테지. 훈훈한 작별의 순간은 커녕, 사망 단계에 이르는 '기본적인 절차'를 따르지 못하고 인간의 존엄을 잃은 채 죽게 될 가능성도 크다.


'가족'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가치가 위대하고 다양한 만큼, 동거 가족이 없는 1인 가구는 삶에서 그런 가치를 지킬 수 없게 될까 봐 두렵다. 피로 맺어진 혈연조차도 각자가 원하는 삶의 형태에 따라서 분리되기도 하고 끊어내기도 하는데, 내가 꾸려나가는 유사 가족이 혈액이 많은 형태의 가족이 그만큼, 혹은 그보다 더 단단한 연대와 유대로 함께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궁극적인 두려움이 생길 수 있다. 다수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창의적인 가족 형태를 일궈내야 하는 '1인 가정'으로서 혼삶의 고민은 끝이 없다.




"우리는 삶에 대해 지나치게 몰두함으로써 죽음을 망치고, 죽음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함으로써 삶을 망친다."는 말이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를 찾고 지속해 나가는 멋지고 놀라운 삶의 과정이 자칫 죽음에 대한 지나친 염려로 퇴색되지 않도록, 죽음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핼러윈처럼 경쾌하고 즐겁기를!




(핼러윈에 떠올려야 할 공통의 기억이 한 가지 더 생겼다는 사실이 슬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적어서 슬펐고, 그 일이 이렇게나 빠르게 흘러서 벌써 일 년이 지났다는 것도 슬프다. 사후 세계 어딘가에서 그들끼리 제대로 핼러윈을 즐기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풍경을 그려보는 것은 상상력이 가진 위대한 치유의 힘이다. 그런 상상력이야말로 생존 능력이자 생명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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