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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Nov 14. 2023

혼삶, 지금 꼭 결정해야 하나요?

"다들 결혼했는데, 이제 너도 원하는 가족 형태를 정해야지?"

친한 친구들 무리 안에서 한 명씩, 한 명씩 ‘브라이덜 샤워(예비 신부 축하 파티)’를 챙겨주다 보니 어느덧 결혼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남은 1인. 주말마다 또래들의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바쁜 시기도 어느새 지나가고 나면 드디어 그의 차례가 온다. 언제부턴가 ‘비혼식’이라는 것을 통해 남아있는 친구에게도 주인공이 될 기회를 주는 문화가 생겼다.

비혼식, 혹은 비혼 선언을 했다고 해서 당장 삶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기관에 비혼인으로 신고 및 등록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비혼에 대한 결정은 결혼을 결정하는 것과 대등한 무게감을 갖기에, 그 중요한 선택을 축하하고 응원하는 비혼식 행사를 치르고 나면 갑자기 1인 가구로서 여생을 살아갈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만 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마치 원하는 가족 형태를 선택할 수 있는 일정 시기가 정해져 있고, 그것이 끝난 것처럼 말이다. 시험 시간이 끝나갈 때 급하게 답안지를 완성하고 제출하는 것처럼,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의 끝에서 마지막 문을 닫는 것 같다.

결혼, 가족을 꾸리는 것은 소위 ‘적령기’를 지나기 전에 반드시 결정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결정이 늦어질수록 그 선택에 따른 실천사항을 수행해 나가는 것이 불리하거나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하기에 우리는 모두 일단 눈앞에 나 있는 길로 달려 나간다.

 



“결혼 안 하겠다더니?”
“나이 들고 보니 도저히 안 되겠어서 이젠 결혼 생각이 생겼어?”
삶이 흐르면서 우리는 그전까지의 선택을 바꾸고 새로운 삶의 형태에 도전하기도 한다. 갑자기 결혼을 원하게 된다고 해도 그것은 그전까지의 비혼 라이프를 후회하거나 부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혼삶은 평생 바꿀 수 없는 선택이 아니다. ‘비혼 선언’은 ‘국기에 대한 맹세’ 같은 게 아니기에 얼마든지 번복할 수 있다. 삶의 형태와 방식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바꿔나가는 것은 오히려 칭찬받아야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정 시기가 지나기 전에 자신의 노선을 정해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임신과 출산을 염두에 둔 경우가 아니고서는 그렇게까지 서둘러야 할 이유도 많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결혼 적령기로 여기는 시기가 끝나기 전에 자신의 선택을 확정하려고 노력한다.

“요새는 00살 넘어서 결혼하는 사람들도 많더라.”
청년기를 지나 중년, 장년, 노년이 되어서도 얼마든지 결혼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주변에서 고연령 커플의 결혼 소식을 종종 들을 수 있다면, 언제든 내가 원하면 결혼을 통해 다인 가정을 꾸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아마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중장년이 된 이후에도 가족형태를 유연하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문화에서는 반드시 청년기에 내 가족을 선택하고 꾸려나가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편안해지지 않을까.

중장년층이 이혼이나 사별로 인해 해체되고 흩어지는 사례는 온갖 미디어에서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되지만 새로 가정을 만들며 결합하고 모이는 사례는 그리 자주 볼 수가 없다. 이혼 소식보다 재혼 소식이 훨씬 조용한 경우가 많지 않은가. 우리나라에서는 ‘내 핏줄’에 대한 중요성이 강하기 때문에 가족 간의 결합을 통해 ‘자녀’라는 가족이 새로 생기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까지 있다. 하지만 타 문화에서는 재혼이나 입양을 통해서 가족이 변화하는 것에 대해 오히려 선호하는 경우가 많고, 그런 기회가 생기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기도 한다. 우리는 인생의 중반부 이후에 가족 구성원이 변화하는 것에 그리 익숙하지 않다. 한번 꾸려진 가정에서는 직접 출산을 통한 구성원 증대 이외에 다른 변화가 생기기 어렵다.


일방향보다는 쌍방향, 다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쪽이 조금 더 내 맘에 드는 미래일 것 같다. 현재의 수많은 1인 가구가 어느 날 다인 가구가 되고자 할 때, 더 열린 분위기로 그들의 변화를 응원할 수 있는 그런 사회. 스윗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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