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추석을 보내는 ‘혼추족’들이 많아지다 보니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서 음식을 해 먹던 명절 풍경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명절이 다가오면 전통시장에 가서 과일과 고기를 잔뜩 사던 예전과는 사뭇 다르게, 지금의 1인 가구는 유유히 편의점 문을 연다.
'추석 소불고기 전골 도시락', ‘한가위 명절 도시락’
누군가가 편의점에서 식사를 ‘때운다’고 하면 안타깝게 여기던 것은 그야말로 과거의 일. 혼자 추석을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서 출시되는 편의점 도시락에는 서울식 소불고기 전골에 산적, 동그랑땡 등 각종 명절 대표 음식이 넘쳐난다. 1인 가구 비중이 높은 오피스텔, 대학가, 오피스가 입지에서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는 추석 상차림 도시락은 매년 두 자리씩 매출이 성장할 정도로 인기라고.
혼자일 때 더 잘 갖춰먹는 1인 가구도 있다. 온라인에서 주문한 ‘명절 음식 밀키트’로 추석 음식을 소량으로 준비해 혼자 먹거나 배달음식을 이용해 미니 버전 추석 상차림을 즐기는 경우도 많다. 혼자 보내는 추석도 꽤나 배부른 명절이 될 것 같다.
명절 연휴, 자기 계발의 기회?
반면 명절 음식 섭취를 줄이고 헬스나 요가 등을 하며 건강을 유지하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평소에 직장이나 학교에서 자신이 원하는 식단으로 매일의 식사를 챙기기 어렵거나 약속과 술자리가 잦았던 경우에는 이런 연휴 기간을 소위 ‘디톡스(detox)’의 기회로 삼기도 하는 것이다.
쉬는 기간을 활용해서 몸을 가볍게 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과 정신을 돌보며 정서적인 디톡스를 꾀하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명절 기간에 템플스테이나 전통문화 체험 등이 더욱 인기를 얻는 것도 이러한 흐름이 반영된 것.
스마트폰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하는 ‘디지털 디톡스’, 사람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인간관계에 집착하던 습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관계 디톡스’. 성취와 성장을 끊임없이 쫓던 자극적인 삶을 돌아보고 일상의 잔잔한 행복을 되찾기 위한 ‘도파민 디톡스’와 같은 정서적 자기 계발을 위한 소중한 휴가라는 점에서 요즘의 명절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추억의 ‘오란다 강정’을 아세요?”
대전광역시에서는 1인 가구 친목 도모의 의도로 옹기종기 모여서 오란다 강정을 함께 만드는 작은 모임을 주최한다. 서울시에서는 1인 가구가 자신의 생활권에 속하는 친구를 초대해서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사골 떡국과 산더미 불고기 밀키트를 지원한다.
자고로 명절 분위기가 나려면 집에서 기름 냄새가 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1인 가구라면? 의정부시에서는 ‘맛있는 추석’이라는 이름으로 모둠전과 그에 어울리는 양파장아찌를 함께 만들어 먹는 작은 모임을 연다. 동그랑땡, 깻잎전, 새우꼬치전…… 이름만 들어도 고소한 모둠전이 있다면 명절은 그야말로 축제 아니겠는가. (반드시 참가 인원의 성별 비중을 5:5로 맞춰야만 했을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는다. 아직도 1인 가구 네트워크 형성을 통해 1인 가구 자체가 줄어들기를 기대하는 의도로 운영하는 행사가 많다는 반증이 아닌가..)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명절을 혼자 보내는 1인 가구가 소속감을 느끼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렇게 혼자서도 명절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보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여전히 긴 추석 연휴가 달갑지 않은 1인 가구도 많기 때문이다.
1인 가구의 정서적 안정감의 핵심은 ‘내가 원할 때 언제든 연결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명절만큼은 혼자 보내고 싶지 않은 1인 가구가 다양한 사람들과 언제든 교류하며 추석을 보낼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한가위’ 다운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