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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좀 무던했으면 좋겠어.”

감정의 진폭이 큰 사람들의 혼삶 생존법

by 야인 한유화

유독 길었던 올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을 기억하는가. 매주 찾아오는 ‘월요병’은 어떤가. 며칠간의 달콤한 쉼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목, 우리는 종종 이상한 허무함과 마주한다. 특별한 이벤트가 끝난 자리에 행복의 여운보다 공허함의 존재감이 더 클 때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일상에는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나날들과, 상대적으로 침체된 순간들이 번갈아가며 존재한다. 간혹, 특정한 순간이 충만하고 눈부실수록 뒤따라오는 허무와 고독의 시간도 비례할 때도 있다. 너무 높이 떠오른 감정은 결국 낮은 곳으로 내려와 균형을 맞춘다.




‘좋은 날’ 이후의 공허를 견디는 힘, 혼삶력

시끌벅적한 식사 약속이 끝나고 혼자 돌아오는 귀갓길. 이제야 휴대전화도 실컷 보면서 편안하게 혼자 있을 수 있겠다 싶어서 풀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가끔은 급작스러운 고요함이 당황스럽기도 하다. 오늘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할 동거인이 없는 1인 가구에게는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후유증의 시간’이 있다.


행복의 절정에서 떨어진 후의 감정 낙차는 생각보다 크기에, 그 공허를 피하려 하기보다 통과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감정의 회복은 시간을 되돌리는 일이 아니라, 감정의 파도를 흘려보내는 일이다. 오늘의 공허는 어제의 기쁨이 남긴 그림자일 뿐이다. 혼자 사는 사람의 강점은 바로 그 공백을 스스로 채워가는 방식에 있다. 고요한 방 안에서 자신을 달래고, 다시 일상의 리듬으로 복귀하는 힘, 그것이 혼삶력이다.




“나도 좀 무던했으면 좋겠어.”

흔히 ‘감정이 풍부한 사람’을 긍정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나름의 고충이 있다. 감정의 과잉은 고립을 심화시키고, 감정의 결핍은 무기력을 낳기도 한다.


혼자라서 차분할 때도 있지만, 반대로 감정의 파도가 더 크게 요동치는 순간이 있다. 기쁨은 과장되고, 우울은 깊어진다. 에너지의 등락을 받아들이고 소화할 만한 능력이 부족하면, 삶이 늘 고조와 추락을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 널뛰는 감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면서 감정의 극단이 아닌 ‘중간 온도’를 유지하는 것도 혼삶력의 일부다.


충만과 허무를 오가는 사이, 가장 어려운 건 ‘그냥 그런 날’을 견디는 일이다. 자극 없는 평범한 하루를 버티는 힘이야말로 혼삶의 기본 체력이다. 화려하지 않은 하루, 눈부시지 않은 시간 속에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혼삶을 어렵게 하는 건 외로움보다 ‘좋았던 나’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이다. 기분 좋은 상태가 기본값일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일 때, 감정의 폭주가 줄어든다.




stably unstable,

감정의 기복은 결함이 아니라 예민하게 발달한 감각과 감수성의 증거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에너지가 오르락내리락할 때 그 낙차를 고스란히 견뎌내야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이기에, 스스로를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로서 버거워하지 않도록, 자기 파괴가 아닌 자기 이해로 전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일상을 ‘사건’으로 채워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삶을 특별한 이벤트로 촘촘히 채우고 싶은 강박을 덜어내면 루틴을 위한 자리가 생긴다. 루틴은 지루함이 아니라 감정의 파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게 해주는 생활의 리듬이다.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조언을 자주 듣는다는 연예인에게, 배우 차태현이 농담처럼 던진 문장이 떠오른다. “일희일비가 이 직업(연예인)의 매력 아니야?”


하루가 다르게 자신의 삶에 대한 기분이 달라질 수 있다. 혼자라서 느끼는 행복감에 마냥 찬란하다가도 문득 불안하고 울적해질 수도 있는 것이 1인 가구의 삶 아닌가. 그렇게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의심하고, 조금씩 다듬어서 바꿔갈 수 있다는 것이 혼삶으로서 즐길 수 있는 ‘일희일비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진폭에도 규칙이 있지 않은가. 결국 중요한 건 진폭의 크기가 아니라, 그 파동의 ‘패턴’을 이해하고 다루는 일이다. 감정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감정의 파도를 타면서 일상의 리듬을 의식적으로 설계할 때 감정의 진폭은 예술처럼 다뤄진다. 그것이 감정의 진폭이 큰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혼삶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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