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자주 타인과 밥을 먹나요?

1인 가구에게 '밥 친구'가 필요한 이유

by 한유화

번잡했던 하루의 끝에 온전히 내 취향에 맞게 꾸린 식사 한 끼를 즐기는 것. 그야말로 일상에 햇살 같은 행복이 되어주는 혼밥의 시간은, 자신을 살뜰하게 돌보고 먹이는 충만한 순간일 수도 있지만 무기력과 고독이 비집고 들어오는 빈틈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타인의 간섭 없이 나만의 리듬으로 조용히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자유는 분명 귀한 행복이지만, 그 자유가 늘 안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행복의 핵심을 사진 한 장으로 옮긴다면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 서은국, <행복의 기원> 중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 장면이 ‘행복의 상징’으로 꼽히는 이유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식탁을 통해 관계를 회복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에게 관계력은 생존력의 핵심이다.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내가 관계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 언제든 연결될 수 있는지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식사는 그 연결을 형성하는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방식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원해서가 아닌 ‘타의적 혼밥’의 순간이 반복되면 본능적으로 불안해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람의 정서는 타인의 표정·목소리·반응을 통해 자연스럽게 조절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제 아무리 기분 좋게 시작한 아침이라도, 한숨을 푹푹 내쉬는 옆자리 동료를 마주하면 내 기분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저기압으로 시작했던 하루가 타인의 작은 배려 때문에 훈훈해지기도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일상에서 교류가 줄어들면 외부 신호에 의해 감정이 교정되는 일이 사라진다.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장점과 함께, 감정이 혼자서 증폭되는 위험도 커진다. 작은 걱정이 과도한 해석으로 번지거나, 사소한 불편이 불필요하게 오래 머물기도 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존재를 안전 신호로 인식한다. 사회적인 신호가 없을 때 우리 몸은 미세한 ‘위험 모드’에 들어간다.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높아지고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기 쉽다. 이때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이 신경계를 진정시키는 강력한 자극으로 작동한다.





얼마나 자주 타인과 밥을 먹나요?


밥 한 끼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드러낸다. 식사 시간의 리듬, 대화의 농도, 상대의 표정과 말의 간격이 서로의 정서 상태를 미세하게 조율한다. 1인 가구에게 식탁은 주로 혼자 사용하는 공간이지만, 타인과 함께할 때 비로소 다른 기능을 발휘한다. 우리는 누군가와 밥을 먹는 순간, “나도 누군가의 일상에 속해 있다”는 감각을 되찾는다. 가벼운 대화나 짧은 웃음도 정서적 배출구가 되어 쌓인 감정을 순환시킨다.


함께 식사하는 시간에는 옥시토신이 분비되어 안정감을 높이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이 낮아진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확대 재생산될 때가 있지 않은가. 옥시토신은 자기 연민·자기 수용을 높이기 때문에 ‘나만 이런가?’, ‘괜히 내가 이상한가?’ 같은 자기 비난 회로를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옥시토신은 내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감각하는 능력을 높이기에, 이후에 누군가와 함께 먹는 시간이 짧아지더라도 여전히 관계가 ‘존재한다’는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결국 동반 식사는 단순한 친교 행위가 아니라, 1인 가구의 일상을 회복 상태로 되돌리는 심리적·생리적 장치로 작동한다.




혼삶에게 ‘밥 친구’가 필요한 이유


같은 동네에서 가볍게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사람. 궁극적으로 가장 안정적으로 정서적 지지를 주는 방식은 생활권 기반 관계다. 깊은 친밀감이나 오래된 관계가 아니라, 필요할 때 내 식탁에 앉아줄 수 있는 가벼운 연대다. 도시의 1인 가구에게 이런 관계는 선택보다 필수에 가깝다. 멀리 사는 친구와의 만남은 일정 조율과 이동이라는 부담이 뒤따르기 마련이지만, 생활권 안에서 만나는 관계는 훨씬 자연스럽고 반복 가능성이 높다. 동네 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웃과의 대화 한 줄, 헬스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이어지는 짧은 식사, 단골 카페에서의 친근한 눈인사. 이런 일상의 ‘작은 연결’이 정서 회복력과 안전감을 크게 끌어올린다.


이런 이유로 평소에는 혼밥을 즐기던 1인 가구도 선택적으로 ‘함께 먹는 시간’을 다시 찾게 된다. 꼭 친밀해야 하는 것도, 특별한 약속을 잡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부담 없이 연결되는 경험 자체가 회복 장치이기 때문이다. <문토>, <동행> 같은 동네 기반 모임 플랫폼이 인기를 얻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낯선 사람과 과한 친밀감을 만들 필요 없이, 동네 단위에서 자연스러운 속도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돕는다. 익명성으로 고립되기 쉬운 도시 환경에서 ‘같은 생활권에 있는 타인’과 마주할 기회를 의도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동반 식사가 반드시 물리적 공간을 공유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현대의 식탁은 오프라인을 벗어나 디지털 공간까지 확장되어 있다. 실제로 완전히 혼자만의 식탁을 차리는 날이 얼마나 되는가. 우리는 종종 영상 통화를 켜놓고 친구와 ‘랜선 술자리’를 갖고, 애정하는 유튜버의 먹방 혹은 OTT 콘텐츠를 밥상에 초대한다. 누군가와 말없이 같은 화면을 보며 밥을 먹는 것조차 관계적 안정감을 준다.


함께 밥을 먹기 위해 꼭 누군가와 마주 앉을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원하는 사람과’, ‘부담 없는 방식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의무적 만남이 아니라 선택적 동반 식사라는 점이 1인 가구에게 특히 적합하다. 혼자지만 완전히 혼자가 아닌 상태, 그 미묘한 감각이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되고, 이런 느슨하지만 지속 가능한 연대가 1인 가구의 식탁을 더 이상 고립의 상징이 아니라 ‘정서적 회복의 공간’으로 바꾼다.


식사는 더 이상 생존을 위한 행위에 머물지 않는다. 혼자 살아가는 시대일수록, 식사는 정서적 복지를 회복하는 작은 공동체의 시작이 된다.


동반 식사의 기회가 많아지는 12월, 내심 약속이 취소되기를 바라는 내향인도, 모임 때마다 너무 ‘달려서’ 지치는 외향인도, 누군가와 함께하는 한 끼를 통해 정서적 균형을 되찾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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