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는 세트 메뉴만 예약 가능합니다.”

혼삶을 더 춥게 하는 '커플 정상성'

by 한유화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되면 도시는 빠르게 ‘둘’을 기준으로 재편된다. 레스토랑 예약 페이지에는 2인 코스가 기본값으로 노출되고, 숙소는 2인 기준 요금에 맞춰 설계된다. 혼자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 늘어나고, 혼자라는 이유로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구조가 등장한다.


이때 혼자 있는 사람은 선택지를 고르는 소비자가 아니라, 예외 처리된 존재가 된다. 1인 가구 증가에도 불구하고 연말이 되면 ‘커플 정상성’은 더 선명해진다. 이 계절은 차갑게 이야기한다. 당신은 둘이어야 한다고.






혼삶은 ‘인간 취급도 못 받는’ 극단적인 문장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작품, 영화 <더 랍스터>. 이 세계에서는 독신 상태가 용납되지 않으며, 모든 성인은 반드시 연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 독신자가 45일 안에 짝을 찾지 못하면, 자신이 선택한 동물로 변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인간으로 존재할 권리는 오직 커플 상태를 달성했을 때만 유지된다. 이 설정은 괴이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혼자 있는 상태를 ‘정상 범주’ 밖으로 밀어내는 방식만큼은 낯설지 않다.


이들의 일상은 관계를 선택하게 만드는 강제 장치들로 가득하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행사와 춤, 의무적인 사교 활동은 개인의 감정이나 의사와 무관하게 반복된다. 이 공간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의 질이나 관계의 의미가 아니다. 목표는 단 하나, 커플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서로에게 마음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조건이 맞고, 규칙을 충족하며, 사회가 요구하는 관계의 형태를 갖추었는지가 판단 기준이 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역시 어떤 면에서는 이와 다르지 않은 압박을 1인 가구에게 가하고 있다.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부정적이며, ‘짝을 찾지 않으면 결핍된 삶을 살고 있다’는 메시지는 노골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질문과 조언, 농담과 걱정의 형태로 반복되지만, 그 밑바탕에는 동일한 전제가 깔려 있다. 혼자 있는 상태는 일시적이거나 문제적이며, 결국 벗어나야 할 상태라는 인식이다.


혼자 있음 자체를 결핍으로 규정하는 시선은 폭력이다. 그럼에도 혼삶을 향한 불편한 시선이 반복되는 이유는, 그것이 여전히 사회적으로 ‘비효율적인 선택’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커플이어야, 가족이어야 ‘돈이 된다’?

혼삶을 비정상으로 만드는 사회 문화의 배경에는 분명한 경제적 논리와 시장 구조가 있다. 결혼과 출산은 ‘행복한 가정’이라는 감정적 서사 이전에, 국가가 가장 관리하기 쉬운 경제 모델이자 사회 운영의 핵심 변수이다. 국가는 개인을 직접 관리하기보다 ‘가족’이라는 단위를 통해 인구와 노동을 효율적으로 조직해 왔고, 가족은 가장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행정 단위였다. 재정, 노동시장, 복지 제도는 여전히 개인이 아니라 가족 단위를 기본값으로 설계되어 있다.


혼인 가구는 주거, 소비, 교육, 보험 등 장기적이고 고정적인 지출을 발생시키며, 아이가 태어날수록 국가는 미래의 납세자이자 노동자를 확보하게 된다. 가족 단위는 소비 패턴이 비교적 일정하고, 정책 설계와 예산 집행 역시 용이하다. 이 구조 속에서 결혼은 축하받는 선택이자, 동시에 권장되어야 할 시스템적 선택이 된다.


연말 시장에서는 더욱 노골적으로 ‘커플 정상성’을 통한 효율을 추구한다. 연말은 유통, 외식, 숙박 업계가 1년 중 가장 큰 매출을 기대하는 시즌이며, 기업은 이 시기에 ‘많이 쓰는 고객’을 중심으로 상품을 설계한다. 자연스럽게 객단가가 높은 집단이 우선순위에 놓인다. 커플과 가족은 한 번의 구매로 두 명 이상이 동시에 소비하고, 추가 옵션과 패키지로 지출을 확장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1인 소비는 구매 빈도는 잦을 수 있어도, 연말 시즌의 고가 패키지나 기념일 상품에서는 수익 예측이 어렵다.


더욱이 연말은 일상 소비가 아니라 ‘기념 소비’의 영역이다. 크리스마스, 연말, 밸런타인데이 같은 시기는 관계의 확인과 과시가 소비 동기로 작동하고, 시장은 이 욕망을 정교하게 포착해 왔다. 누군가와 함께임을 증명하는 소비와 관계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소비가 연말의 주력 상품이 된다. 커플 위주의 상품 구성은 시장이 가장 안전하다고 믿어 온 수익 공식이자, 우리가 어떤 삶의 형태를 중심에 두고 사회를 설계해 왔는지를 드러내는 문화적 관성이다.


다만 이 공식에도 미세한 균열은 생기고 있다. 일부 호텔과 레스토랑에서는 ‘혼자 보내는 연말’을 콘셉트로 한 1인 패키지를 실험적으로 선보이고 있고, 혼자 즐기는 크리스마스 디너나 연말 바 프로그램도 등장하고 있다. 서점과 콘텐츠 플랫폼에서는 ‘나에게 주는 연말 선물’이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운 큐레이션도 늘고 있다. 그러나 이 변화는 아직 보조적 흐름에 가깝다.


결국 커플 정상성은 가치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효율의 문제로 유지된다.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라는 말 뒤에는 개인의 행복을 걱정하는 마음만큼이나, 사회가 기대하는 구조적 안정이 숨어 있다. 왜 ‘혼자’라는 선택은 쉽게 존중받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의 시스템에서 혼자 사는 삶은 여전히 사회에 즉각적인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선택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커플 중심 설계는 단기적으로 효율적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비용을 키운다. 커플을 기본값으로 삼는 사회는 결국 많은 삶을 계속해서 탈락시킬 것이다. 1인 가구가 주류가 된 상황에서도 커플을 종용하는 사회를 지속하는 것은 다수의 삶을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구조적 실패가 될 수 있다. 혼삶이 제도, 시장, 문화에서 배제될수록 개인은 더 불안정해지고, 그 불안정은 결국 복지, 의료, 고립 문제로 되돌아온다. 사회에서 탈락되는 것은 개인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 비용은 결국 사회가 치른다.


“n명!” 하고 호루라기를 불며 진행자가 숫자를 외칠 때, 그 수에 맞는 사람을 모아서 얼른 서로 끌어안고 뭉쳐야 살아남는 놀이를 아는가. 이 단순한 놀이가 그토록 사람들을 쫄깃하게 만드는 건, 그토록 끈끈하게 서로를 붙잡아 끌어당기는 경계 안에 자신이 포함되지 않고 서늘하게 남겨졌을 때의 기분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짝을 짓지 못해도 예외가 되지 않도록, 누군가가 경계 밖에 덩그러니 남겨지지 않도록 주변을 둘러보는 연말이면 좋겠다. 그토록 포근한 계절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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