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할 때, 원하는 정도로,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는 안정감과 자기 신뢰
“요즘 갑자기 추워졌죠?”
엘리베이터 안에서 낯선 사람이 이렇게 말을 걸어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머뭇거리다 고개만 끄덕일까, 아니면 짧게라도 대답할 수 있을까.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날씨 이야기나 형식적인 안부 인사를 불필요한 감정 노동으로 인식한다. 말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면 굳이 꺼낼 필요가 없다는 인식, 효율과 진정성을 중시하는 문화가 강화되고 키오스크와 AI까지 등장하면서 스몰토크는 더욱 어색한 무언가가 되었다. 이 변화는 특히 혼자 사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가족이나 동거인이 없는 1인 가구의 일상에서는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는 날이 더욱 많아질 수 있다. 출근길, 퇴근길, 식사 시간까지도 말없이 흘러간다. 이때 스몰토크는 감정을 순환시키는 최소한의 환기구가 된다. 커피숍, 편의점, 헬스장, 엘리베이터처럼 반복적으로 드나드는 공간에서 오가는 짧은 말 한마디는, 일상을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가장 작은 접속 단위다.
“그거 맛있어요.”
연말을 맞아 다시 집어 든 소설 <불편한 편의점>의 주인공 ‘독고’는 아주 짧고 단순한 말들로 사람들과 관계를 시작한다. 안부를 캐묻지도,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지도 않는다. 다만 상대가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에서 말을 건넨다. 그 짧은 대화 속에서 독고는 상대의 표정을 살피고, 말의 속도를 조절하며, 더 다가가도 되는지 스스로 선을 긋는다. 그의 스몰토크는 친해지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서로가 안전한 거리 안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에 가깝다.
편의점은 가까이 있고, 언제든 들어올 수 있고, 언제든 나갈 수 있는 공간이다. 출구가 항상 열려 있기에 관계의 부담도 적다. 혈연도, 오래된 친구도 아닌 등장인물들은 같은 시간대,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느슨하게 연결돼 있을 뿐이다. 이 느슨함이 오히려 관계를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
진정으로 스몰토크를 잘하는 사람들은, 억지스럽게 날씨 이야기를 꺼내거나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을 남발하지 않는다. 스몰토크의 핵심은 말재주나 대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에 있다. 문을 잡아주는 몸짓 하나, 눈을 마주치며 건네는 짧은 인사만으로도 이미 소통은 시작된다. 여유 있는 마음으로 건네는 스몰토크는 ‘나는 무해한 사람이다’라고 신호를 보내는 기능을 한다. 자칫 ‘오지랖’으로 느껴질 수 있는 소설 속 ‘독고’의 스몰토크가 결과적으로 따뜻한 소통으로 이어지는 것은 그의 ‘무해함’이 효과적으로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주변 환경을 무해한 공간으로 인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안정감을 느낀다.
혼삶의 인간관계, ‘마이크로 네트워크’로 더욱 풍부하게
1인 가구는 비연결, 고립, 관계 회피의 삶으로 종종 해석되기도 하고, Z세대에 대해 주변과 관계 맺기를 원하지 않는 ‘깍쟁이’로서의 프레임을 씌우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혼삶은 관계를 끊어내고 혼자가 되려는 삶이 아니라, 관계를 스스로에게 최적화하고 다시 설계하는 삶에 가깝다.
갈수록 연결의 단위는 작아지고, 연결의 범위는 넓어진다. 과거에는 배우자나 최측근 ‘베프’에게 집중되던 역할들이 이제는 분야별로 분산된다. 일 고민, 건강 문제, 경제 계획, 취향과 ‘덕질’은 각각 다른 곳에서 나눈다. 내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분야에 대한 인간관계를 취사선택하는 ‘마이크로 네트워크’로 구성된다.
소통의 지역과 시간도 세분화된다. “주말에는 시간 내기 어렵다” “회사 끝나고 거기까지 가기엔 너무 멀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시공간적 ‘접근성’이 맞는 사람들끼리 오프라인 생활권을 이루게 되고, 온라인에서도 나와 같은 시간에 접속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더 많은 교류를 하게 된다. 긴 대화를 나누는 경우는 조금씩 적어지고, ‘좋아요’와 댓글 같은 짧은 상호작용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이러한 ‘마이크로 모먼트(Micro Moment)’는, 이를 통해 극적인 행복감을 얻기는 어렵지만, 하루의 정서를 완만하게 만들어 감정의 급경사를 완충해주는 역할을 한다.
스몰토크를 잘한다고 해서 반드시 사교성이 뛰어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일상을 완전히 밀폐되지 않도록 만드는 ‘연결될 능력(connectability)’을 갖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필요할 때 연결될 수 있다는 감각, 그리고 그 선택권이 나에게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연결되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에 불안감 없이 스스로에게 몰입할 수 있다.
혼자 살고, 혼자 일하고, 혼자 노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 교류와 연결이 마냥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관계와, 어떤 거리로, 어떻게 연결될지를 잘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혼삶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외로움을 완전히 예방하는 능력도 아니고, 평생을 함께할 거창한 관계도 아니다. 언제든 “원할 때, 원하는 정도로,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는 안정감과 자기 신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