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를 키우는 3가지 자기 양육 노하우
나는 나를 ‘오냐오냐’하며 키웠나 보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금지옥엽 공주처럼 키운 것은 아니었지만, 하고 싶다는 건 다 해 볼 수 있게 기회를 주었다. 스스로를 격려하는 과정에 정성을 쏟아보니, 어느덧 나는 ‘실패에 익숙하지 않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나를 잘못 키운 걸까?
부모가 아이를 양육할 때는 실패의 충격을 완충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넘어지면 손을 잡아 일으켜주기도 한다. 하지만 성인의 자기 양육은 달라야 하는 것 같다. 넘어질까 봐 벌벌 떨기만 하는 어른으로 살지 않기 위한 학습이 필요하고,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루틴과 안전장치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은 학생임과 동시에 선생님이며, 성실히 학습하고 복습하는 '나'와, 그 진지하고 귀여운 학생을 잘 가르치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경험도 열심히, 준비도 열심히 하는 따뜻하고 섬세한 선생님인 '또 다른 나'가 있다.” - 료, <료의 생각 없는 생각>
부모가 자식을 양육할 때의 목표는 ‘말 잘 듣는 아이’도 ‘성공한 자식’도 아니어야 한다. 부모가 없어도 자기 삶을 운영할 수 있는 어른을 만드는 것이다. 성인이 된 이후의 자기 양육은, “이제는 내가 나를 맡는다”는 삶의 책임을 받아들이고 정착시키는 과정이다.
자기 훈육 vs 폭력, 자기 양육의 경계
부모 양육의 ‘보호’가 성인에게 그대로 적용되면, 자기 연민 과잉이나 회피, 결정을 미루는 습관으로 굳어질 수 있다. 힘들다는 이유로 해야 할 판단을 계속 유예하고, 불편한 선택 앞에서 스스로를 면제해주다 보면 삶의 운전대는 점점 손에서 미끄러진다. 그렇다고 해서 비장한 결심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다 보면 자기 훈육은 순식간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자기 계발과 루틴, 자기 관리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자기 폭력’이다.
“게으르다”는 자기비판에 찔려, 결국 잠을 줄여가며 계획을 지켜낸 적이 있는가. “이 정도도 못 하냐”는 자극에 긁혀서 회복을 고려하지 않고 혹독한 일정을 잡기도 한다. 스스로를 다잡는 말처럼 보이기도 하는 자기 독백, 실상은 학습을 멈추게 만드는 신호에 가깝다. 이런 언어가 반복될수록 실패는 교정의 대상이 아니라 혐오의 근거가 되고, 다음 시도를 시작하기도 전에 좌절할 수 있다. 훈육이 성장을 낳지 못하고 위축만 남긴다면, 그것은 이미 폭력에 가깝다.
현명한 자기 양육은 이 두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다. 자기 훈육은 나를 아프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상태로 돌려놓는 기술이어야 한다. 그 경계를 지켜내는 일이야말로 혼삶에서 가장 어려운, 동시에 가장 중요한 양육의 역할이다.
나 스스로를 훈육하는 방법
‘착실한 학생’으로 살아왔는가? 그 자체로도 칭찬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탁월한 학생’이었던 당시 친구들을 떠올려보라. 적당히 학교 열심히 다니는 학생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발휘하는 ‘전교 1등’ 재질은 무엇이 다른가. 그들은 그저 성실하게 학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만의 ‘학습법’을 넘어선, ‘자기 교육법’이 있다. 주어진 커리큘럼만을 따라가지 않고, 내가 취약한 부분이 어디인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이해가 빠르고, 언제 학습해야 집중이 잘 되는지도 알고 있다. 그들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기 이전에, 스스로를 잘 가르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성인의 자기 훈육도 다르지 않다. 만약 내가 나의 부모님이고, 선생님이자 상사라면, 지금의 나에게 어떤 기준을 제시하고 어떤 말을 건네고 싶은가. 나를 이렇게 키워달라고 부탁해 보면 어떨까. 혼자를 훈육하는 3가지 노하우를 참고해 보자.
1. 상벌이 아닌 시스템으로 나를 다룬다
짧은 영상을 보고 갑작스럽게 불타오른 다짐과 결심은 근력이 약하다. 시간/공간/도구/규칙을 포함한 피드백의 구조를 세우는 것이 탄탄한 힘을 갖는다.
피곤함을 이겨내고 운동을 마쳤다면 ‘열심히 했으니 내일은 좀 쉬어도 되겠지’라는 보상심리 대신, 오늘 그걸 해낼 수 있었던 비결과 요인을 정리해 보는 게 좋다. 운동을 못한 날에도 핑계 없이 담백하게 원인을 되짚어보자. 운동 강도를 낮추거나, 요일을 바꾸거나, 짧은 스트레칭으로 대체하는 등의 새로운 시도로 이어갈 수 있도록 기록하고, 점검하고, 수정하는 루프를 만든다. 잘했을 때 과하게 보상하지 않고, 못했을 때의 자책도 오래가지 않아야 한다.
2. ‘행동 알고리즘’을 준비하고 습관화하라
무너진 순간에 충동적인 판단이나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행동 알고리즘’을 미리 설계하는 것이 좋다. A라는 질문에 대해 예/아니오 응답에 따라 각각 다른 선으로 이어지는 심리 테스트처럼, 나의 상황과 상태에 맞게 미리 정해둔 ‘대응표’를 따르는 것이다.
‘귀찮다’는 생각이 올라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그 생각에게 의사결정권을 쥐어준다면 문제가 된다.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는, 당황하거나 자책하기보다는 즉각적으로 해부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노력한다. 귀찮음의 원인이 무기력 같다면, 일단 침대 근처에 놓아두었던 비타민 한 포를 털어 넣고 생각해 보자. 심리적인 무기력이라면, 즐겨보는 영상 채널을 잠시 켜 놓거나 차 한잔을 마시며 기분을 환기할 수도 있다.
이런 알고리즘은 나를 몰아붙이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매번 의지를 소모하지 않기 위해 만든 자동화 장치에 가깝다. 오늘의 컨디션을 평가하지 않고, 당황하지도 않는다. 그저 각 상태에 맞게 다음에 취할 행동을 연결한다.
3. ‘지금의 나’보다 ‘내일의 나’ 편을 든다
지금 쉬고 싶은 나와, 내일 후회할 나 사이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결정하는 일, 혼자 사는 삶에서는 이 역할을 대신해 줄 사람이 없다. 오늘의 나 자신을 설득하는 일이 내일의 나를 구하는 길이 된다.
‘현재에 충실하자’는 말은 매 순간의 ‘몰입’을 위한 것이지, 항상 지금의 내 편을 들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현재의 욕구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 선택이 다음 장면의 나에게 어떤 결과를 남길지를 인식한 상태에서 행동하는 것이 진정으로 충실한 삶일 것이다.
1월에는 항상 들뜬 계획들과 벌써 망해버린 다짐이 공존한다. 좋은 훈육은 성과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력을 길러 주는 데서 완성된다. ‘실패하지 않는 어른’보다, ‘실패에 익숙한 어른’이 언제나 더 강하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의 새해도 조금 더 힘이 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