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인 한유화 May 23. 2022

"여자 혼자"의 공통점이 이런 거라니.

- 안전한 것 vs 안전감을 느끼는 것

 나는 종종 취향 모임 플랫폼인 '남의집'을 통해 모임을 열고, 호스트로서 다양한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곤 한다. 호스트에게 궁금한 점을 묻는 순서에 심심치 않게 듣게 되는 질문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그런 곳에 여자 혼자 여행 다니면 안 위험해요?"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낯선 사람 들이는 거, 괜찮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여행지의 현지 치안이 어땠고, 내가 어떤 준비물이나 장비를 준비하고 어떤 사전 정보를 공부했는지 답한다. 게스트가 모임에 참여하기 전에 플랫폼에서 실명인증도 하는데 크게 위험할 만한 일이 있겠느냐는 식의 대답을 한다.

사실 더 자주 받는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위 질문들과 비슷한 것 같지만 실은 매우 다르다고 여긴다.

 "그런 곳에 여자 혼자 여행 다니면 안 무서워요?"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낯선 사람 들이는 거, 무섭지 않나요?"

이럴 때는 내가 준비하는 '안전감(感)'에 대한 이야기로 답하곤 한다. 일상에서는 오히려 '안전' 그 자체보다도 더 영향력이 클 수도 있는 '안전감'.




 "여성의 안전에는 돈이 든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여자로서 생각보다 다양한 순간에 무서움을 느끼면서 산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인 걸 티 내지 않기 위해 고안해 내는 각종 웃픈 조치들에 대해서도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되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어떤 때는 절레절레하게 된다. (전통적으로는 현관에 큼지막한 남자 신발을 가져다 두었으며, 현대에는 음식 배달을 받으러 나갈 때 집 안에 다른 사람이 있는 척 대화를 꾸며내는 등 다양한 스킬이 있다고 한다.) 여자들이 화장실에 같이 가는 문화(?)도 안전을 위한 습관으로서 은연중에 습관으로 자리 잡은 액션이라는 것에 참 씁쓸하다.


판단의 기준이 ‘무엇을 할 자유’가 아니라, ‘무언가를 하지 않아야 얻어지는 안전’이라는 일. 이 사회에서 여자로 성장하는 일은 참 고되다. - <혼자의 발견> (곽정은 지음) 중에서


고되고도, 고되다. 이 사회에서 여자로 성장하는 일. 하지만 어디 이 사회가 남자들에게는 호락호락한가? (물론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여자로서 조금 더 불안전하다고 느끼는 여러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성별 자체에 매몰되지 않도록 무던히 애를 써야 했다. 괜히 억울해지고 분노가 슬그머니 올라오려고 하면 '여성'을 '약자'라는 말로 바꾸어 대입해 보는 방법으로 훈련했다. 소모적인 감정을 아예 틀어막을 수는 없었지만(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 그 안에서 허우적대지 않도록 나를 밖으로 꺼내 놓는 연습을 계속했다.


'내가 여자라서 이런 일이 생기나?', '내가 혼자 사니까 이런 식으로 대하나?' 하는 생각은 한도 끝도 없다. 불쾌한 상황과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최소화하고 싶은 마음은 생존을 위한 자연스러운 본능이겠으나, 지나치게 문제 상황의 원인과 출발점을 자기 자신에게 찾는 것 또한 생존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자. 내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은 생각과 액션의 진화다.




 호전적인 성격이 아닌 소녀시절의 나로서 꿈꾸던 삶은 아무런 갈등 없이, 아무에게도 당하지 않고 사는 삶이었다.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고, 맞지도 않는 삶. 그렇게 너무도 귀하게(?) 자랐던 나의 사고방식은 중학생 때 친구 따라 합기도 체육관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달라졌다. 누가 나를 밀치는 경험, 내가 누군가에게 반격하는 경험, 정당하게 공격적인 눈빛을 쏘아붙이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 경험을 통해 얻게 되는 게 강해지는 신체뿐만은 아니었다. 내가 그때까지 꿈꿔왔던 것과는 달리 아무에게도 맞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맞고 나서도 얼른 정신을 차려서 도망을 가거나, 더 나아가서는 상대를 제압까지 할 수 있다는 신체적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정서적으로도 훈련 효과를 거뒀다. 나는 맞는 순간에도 안전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혼자 살면 별일이 다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별일이 일어나는 순간을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 <셋이서 집 짓고 삽니다만>
(우엉, 부추, 돌김 지음) 중에서


 원래 대부분의 인생에는 별일이 다 일어난다, 꼭 혼자여서가 아니라도. 신체적, 경제적,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는 정서적인 여유도 조금 더 무난하게 뒤따라오곤 하지만, 나를 서럽고 지치게 만드는 별일들은 조금 더 치밀하게 바쁜 빈틈을 비집고 찾아온다. 여럿이 있을 때는 웃어넘길 수 있을 만한 일들도, 혼자 겪게 되면 괜히 더 서러워진다고 하지 않은가! (feat. 이말년)


혼삶을 살면서 누구나 약자가 되는 순간을 겪는다. 아무리 염려해도 대비할 수 없는 크고 작은 위험들이 온다. CCTV를 수백 대 달아도, 탱크처럼 튼튼한 고급 세단을 타고 다녀도, 끊임없이 자산을 불리는 등 아무리 준비해도 우리는 충분히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 안전을 위해 준비하는 것처럼 안전감을 느끼기 위해 준비하고 훈련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효과가 있다. 안전에 대한 욕구(feat. 매슬로우)에서 정서적으로 해방되는 순간부터는 그 다음 단계의 욕구를 실현하는 것이 훨씬 쉬워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혼삶을 견고하게 만드는 노후준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