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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May 04. 2022

고독을 즐기는 사람에게 사람이 모여든다

- 사람은 누구나 혼자라서

 내게는 쑥스러운 능력이 하나 있다. 길거리 노점에서 스트리트 푸드를 사 먹고 있으면, 어느새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 줄을 서기 시작하게 만드는 능력이다. 최애 소울푸드인 붕어빵은 물론이고 꼬치류, 면 요리까지 말할 것도 없다. 사람이 모이는 게 내 영향이란 걸 알게 된 건 직접 들은 말들 때문이다. "와, 저 사람 진짜 맛있게 먹는다."는 무난한 반응에 속하는 편. 직접 내게 물어오는 "이거 어디서 팔아요?" "이거 뭐예요?"는 날 뿌듯하게 하기도 하지만, '내가 너무 정신없이 먹는 데 열중했나?'싶어서 우아함 대신 먹방력에 치중한 나의 식습관을 돌아보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복스럽게 먹느냐? 많이 먹느냐? 게걸스럽게 먹느냐?라고 자문해 보면, (어느 정도는 맞지만) 딱히 유별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주변의 평에 의하면 "집중해서 먹는다", "행복하게 먹는다"라고 한다. 실제로 음식을 먹을 때 딴생각을 거의 안 하는 편이고, 신경 써서 감각을 집중하는 버릇이 있다. 과장될 정도로 감탄사(혹은 감탄음, 콧노래 등)나 웃음소리를 뱉어내면서 먹더라.


정신없이 뭔가를 즐기는 사람을 보면 '뭐야, 뭐야. 뭔데 저런 반응이 나와?' 하면서 흥미가 생기기 마련인 모양이다. 무엇이든 즐기는 사람에게는 인력(引力)이 생기는 것 같다. 혼자 하는 여행에서의 나는, 비슷한 이유와 계기로 비교적 쉽게 친구를 사귄다. 혼자 하는 여행에 흠뻑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린다. 주변 시선을 잊고 실컷 웃고 다니거나 혹은 실컷 울기도 한다.




 여행 중에 정말 못 견디게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일부러 의도하지 않아도 그럴 때는 외로움에 어울리는 무언가를 좇게 된다. 어여쁜 칵테일보다는 위스키 니트가 고독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기에 바에서 잔을 굴리면서 혼자 책을 읽는다. 외로움을 증폭시켜줄 재즈 음악을 들으러 라이브 연주를 하는 곳에 찾아가기도 한다. 거의 예외 없이 실컷 외로움을 누릴 수 있는 상황은 노을이 내려오는 언덕에서 바람을 맞으며 음악을 듣는 순간이다. 이럴 때는 또 또륵또륵 울기도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을 봤다고 상상해 보면, 그다음에 누군가가 말을 붙이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것 같다. 실제로도 그랬다. 대부분은 내가 집중하고 있던 무언가에 대한 질문으로 교류가 시작됐다. 뭘 저렇게 열심히 하고 있나 싶어서 궁금했다는 경우가 많다. 혼자서 무엇에 그렇게 빠져있는지 궁금했다고. 항상 고독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즐기는 데 성공하고 나면 어떤 이유에서든 고독은 어느새 내 곁을 떠난다. (혹은 고독이 자신의 존재감을 숨긴다.)




 고독에 집중하는 것과 침잠하는 것은 조금 다르다. 내 취미 중 하나인 '청승'을 예로 들자면, 처연하게든 처절하게든 내가 의도하는 느낌과 정서로 "청승을 떠는 것" vs 의도치 않게 타의에 의해 "청승맞은"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은 다르더라. 그러나 고독함에 있어서 정서적인 주도권을 갖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어렵기에, 명상하듯 내 정서와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아주 조용하게, 차분하게 따라간다. 뒤따라가다가, 조금 적응이 되면 옆에서 나란히 함께 가려고 노력한다. 고독의 목줄에 매여서 질질 끌려가지 않도록 집중한다. 고독에 집중하는 법을 체득한 사람은 특정한 종류의 두려움을 잊고 살 수 있다. 그것은 꽤나 큰 용기가 되고, 고독을 아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꽤 큰 매력이 된다.


여럿이 있으면 어떻게든 웃어넘길 만한 일도 혼자 겪으면 서러워지기 쉽다고 했다(by. 침착맨). 원치 않는 상황을 겪어서 생기는 서러움을 고독에 섞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해서 더 외롭다'는 생각은 정서적 하향곡선으로 들어가는 열린 문이다. 서러움이 생길 때는 메타인지가 필요하다. 객관화가 필요하고 분석과 전략이 필요할 수도 있다. 고독을 얼마나 순수한 외로움으로 남겨두고 관리할 수 있느냐가, 우리의 혼삶의 모습을 좌우할 것이다. 외로움을 그런 종류로 다듬어서 일상에서 곁에 둘 수 있다면, 이후에 그 외로움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지는 이미 우리에게 많은 노하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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