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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Dec 18. 2019

그 밤

"책 한 번 써보는 게 어때?"

그러니까 이것은 어제의 일.


일주일 전 그와 술을 마시며 서울 출장 스케줄을 구상하다가 문득, 그가 물었다. "우리 파주 갈까?"

파주라는 건 그의 대학교 동아리 선배가 계시는,

나에겐 그의 선배가 운영하는 곳임을 모른 채

우연히 내일로 친구들과 서른 맞이 여행을 하러 간

쉼표게스트하우스 말이다.

"콜."

일말의 망설임 없이 가기로 결정했고

그의 연락을 받은 선배도 얼마든지 오라 하셨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어제.

우리는 서울로 갔고 출장길의 종착지로

합정에서 5주간의 에디터 수업을 받고 있는

형주 선배를 만나 함께 파주로 향했다.

더 따뜻해진 쉼표게스트하우스.

3년 만에 온 남자친구와 1년 만에 온 나

함께 온건 처음. 우리의 연애 소식과 동시에

2020년의 결혼 소식을 전해드렸고

남편분이 차려주신 근사한 저녁을 대접받았다.

쌉싸름한 맥주와 함께 깊어가던 밤,



그 밤의 저녁상



브랜딩에 대한 고민을 꺼냈다가 돌아온

형주 선배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책 한 번 써보는 게 어때?"



세상에. 책이라니.

나의 죽기 전 이루고 싶은 100가지 버킷리스트의

마지막 항목에 있는 것이 아닌가.

언젠가 내 이름으로 책 한 권 발간하는 것.

교육학자이신 나의 아버지는 이미 열 권의 책을 내셨다. 어릴 적부터 그런 아버지를 보며 "저도 언젠가는 아빠처럼 제 책을 꼭 쓸 거예요" 하며 커왔는데.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고 생각해오던, 그 책이란 것을 내가 말인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선 왠지 모를 뜨거운 어떤 것이 올라왔다.


선배는 이미 수년 째 책과 맥주와 바이크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자신의 책을 써 내려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책을 쓴다는 건 종교의식과도 같다고. 내가 살아온 지난 길도 정리되지만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길 역시 보이게 된다고. 인생의 길잡이와도 같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써야만 한다.' 결심이 섰다.



술을 꽤 얼큰하게 마셨음에도 잠이 오지 않던

어젯밤, 머릿속에는 이미 앞으로 써 내려갈

콘텐츠들이 자리 잡았다.

'잼, 앞장, 상아커플'.

잼이라는 먹거리를 만들고 있는 1인 기업가로서,

문화가 깃든 바르고 건강한 장터를 기획하고 있는 앞장의 주최자로서,

그리고 지극히 나밖에 모르는 개인주의자였던 내가 누군가를 만나 배려하고, 양보하고, 발맞춰나가며 이제는 한 사람과 두 번의 연애에 종지부를 찍고 결혼이라니 그런 것을 앞두고 있는 한 여자로서,


순간 수집가이고 기록 예찬론자인 내가

이 감정이 휘발되기 전에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심장이 마구마구 뛰었다.

그럼 기록의 수단은? 선배와 남자친구에게서 동시에 브런치라는 것이 있으니 해보라 추천받았고, 곧장 어플을 다운로드하여 작가라는 타이틀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에이 네가 책을?" 이 아니라

"그래 너라면 얼마든지 해낼 거야."

라며 응원해주는 든든한 조력자 콩맨이 있어서,

그리고 진짜 책을 내게 되면 아이패드 사준다는

약속까지 한 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 )



그러면서 한 가지 나만의 루틴을 정했다.


1일 1글쓰기


구체적 행동지침은

내일부터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한편씩 쓰는 것.

100일동안의 프로젝트를 실행해보기로.


오랜만에

{꿈-구체적 목표-현실적인 실천방안}

을 설정하고서 한때 지원서 자기소개란에

자주 쓰곤 했던,

'꿈만 꾸기보다 꿈을 만들어나가는

not dreamer but dreamaker'

그런 반짝이는 내 모습이 되살아난 것 같아

별일 없던 연말이, 다가오는 새해가

기대되기 시작한다.


그러면 잘 부탁한다, 브런치!

아침마다의 글 한상차림을 기대해줘.



요즘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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