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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Oct 29. 2021

하릴없이 계절은 스쳐 가고

흘러간다, 가장 사랑하는 시월이.



 

정신 차리고 보니 10월이 세 손가락만 꼽으면 끝난다. 내가 태어난 달이기도 하고, 좋아하는 가을을 완연하게 느낄 수 있기도 하고(9월은 아직 여름 같고 11월만 되면 시린 겨울이 느껴진다.) 가장 좋아하는 식물 억새를 만날 수 있어서, 하늘이 푸르고 청명할 때라서. 또 여행 다니기 좋은 계절이라서. 그래서 10월을 사랑한다. 근데 그런 하늘연달 시월이 하릴없이 끝나간다.



억새 내가 많이 사랑해
남편이 찍어준 억새와 배불뚝이.


이러니 가을을 사랑할 수밖에, 작년 이맘때 지리산 둘레길.


돌이켜보면 올해 뚜렷한 목표나 계획을 세우지 않고 살고 있다. 원래도 무계획적이고 즉흥도발의 끝인 엔프피기도 하지만 요즘은 더욱더 내키는 대로, 뭣보다 몸이 따라주는 것에만 집중한다. 임신을 하고 워낙 이벤트가 많았으니 그럴 수밖에. 하루하루 실시간으로 변하는 임신 컨디션에 부딪혀 플랜대로 못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너무 서글플 것 같아서 :')


생일 주간엔 훌쩍 혼자(를 늘 꿈꾸지만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다며 남편이 자꾸 동행한다) 또는 함께 여행을 하곤 한다. 재작년 생일엔 봉화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 탐방을 시작으로 낙동정맥 트레일 & 백두대간 협곡 트레킹을 떠났었고, 작년 생일 주간에는 태백으로 추억의 내일로여행과 더불어 정선 민둥산 억새 산행 & 동해 두타산의 비경, 베틀바위 산행을 갔었다. 요즘이야 베틀바위가 많이 알려지고 인기를 끌고 있지만 당시엔 40년 만에 개방된 직후라 거의 우리만의 등산을 할 수 있었다.



7년 전 추억의 내일로, 추억의 태백역에서.
봉화-정선-동해 원없이 트레킹 했었다.


그렇지만 올해는 어떠했던가. 하혈하고 일주일 넘게 눕눕 생활했던 것도 불과 얼마 전이기도 해서 이번 생일에는 아무것도  하고 보내려 했다. "그래도 생일인데 그냥 흘러 보내기엔 아깝지 않아?"  남편의 말에 남해로  떠났지만 반짝이는 다도해상을 보리란 기대와는 달리 이틀비와 함께 보냈다. 가족과도, 연인과도, 친구와도 예닐곱  이상 왔던 좋아하는 여행지인데 한적했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핫한 관광지가 되어서 발길 닿는 곳마다 사람이 많았던 것도 마이너스. 일단  여행의 모티브인 '많이 걷기' '자연을 눈에 가득 담기' 못해서 아쉬웠던 생일 여행이었다.


그래도 몽돌을 치는 파도 소리는 좋았다.


  주간 태교랍시고 클래식 음악 달고 살고, 유화 그리기에 심취해 있고,  모빌과 애착인형 만드느라 바늘과 실을 손에서 놓을  모르고 있지만 확실히 집순이가 아닌  밖으로 나가야 영감이 생기고, 에너지를 얻는다. 하다 못해 어제 관리 오는 엔지니어가 있어서 급하게 함양집에 다녀왔는데, 정말 발만 찍고 왔지만 운전해서 오가는 내내 울긋불긋 산을 수놓은 단풍과  하늘색에서 핑크색으로, 연보랏빛으로, 주황빛으로 시시각각 변해가는 노을에 빠져서 이너피스 했다. ( 시간 가량 운전이 힘들었는지 다녀와서는 골골 넉다운돼서 뻗은   비밀)


자꾸 백미러를 보게 만들었던 어제의,


오늘은 볕도 좋다. 컨디션은 그다지 따라 주지 않았지만 읽고 싶은 임신육아서적이 있어 점심시간에 대여하러 도서관으로 향했다. 할로윈 분위기를 낸 동네 카페들도 구경하고, 수녀원 앞 거리를 지나며 코로나 없던 시기 주최했던 앞장을 추억하고, 미세먼지 하나 없이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걸으니 어찌나 행복하던지. 물론 오르막길 오르다 보니 숨이 많이 차고, 또 원래의 내 빠른 속도로 걸으니 옆구리가 당기고 배뭉침이 조금씩 있었지만, 그래도 걸음을 멈출 순 없었다. 차밍아 놀라지 마. 안 그런 척하고 있지만 엄마는 원래 정적인 사람이 아니라 옴청 활동적인 사람이란다^^


그리고 책을 빌려 왔다.


11월과 12월은 아마 많은 계획을 세우지 않을까 싶다.  세울레야  세울  없는, 변화 많을 미래를 코앞에 두고 있으니. 대구의 작업실도 변화가 생길 거고. 함양의 집과 작업실도 슬슬 내부 구상을 해야 하고.  이제 탭댄스를  만큼 존재감을 뽐내는 뱃속의 차밍이를 위한 용품이나 교육에 대한 생각도. 30주를 코앞에 두고 있는 어젯밤, 가지고 있는 것과 사야  출산용품 리스트를 엑셀로 정리하다가 아기 침대 고민에 빠져 문득 엄마한테 말했다.


"결혼 준비가 훨씬 더 쉽고 재밌었어요.

내 주관, 내 취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됐는데 출산 준비는 뭐가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지."

"너 주변에 육아 선배들이 많은데 뭐가 문제야."

하길래 답했다.

"다 애바애래요... 차밍이가 침대에 잘 누워줄지, 혼자서도 잘지, 등센서는 안 달려있을지, 많이 울거나 보채는 편은 아닌지는 태어나봐야 아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결혼식을     하는  > 임신 출산하는  훨씬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돈주고 직접 산거 하나 없는데 이미 가진게 많은 건 그동안 발품 팔아            참여한 산모교실이나 이벤트, 그리고 고마운 사람들의 선물 덕분 :)


남편 많이 놀랬서?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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