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는 빈 땅에 집이 지어지기까지.
경상남도 함양에 와서 지낸 지 어느덧 반년.
그동안 남편과 나는 주말마다 임시집에서 지내왔다.
결혼하고 첫 일 년은 대구 신혼집에서,
그리고 올해 2월 함양으로 이사와
시아버지께서 시할아버지를 위해
십 년 전 지어두신 집에 우리가 살게 되었다.
함양에서 1/2살이를 해보니
생각보다 더 시골살이에 잘 맞았다.
함양으로 완전히 이사를 와 하던 작업실을 계속 운영하기로 한 결정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물론 남편도 함양으로 발령 난다는 전제조건 하에 가능한 이야기지만. 도시에서는 몰라도 시골에서는, 특히 마을 아닌 외딴곳에 위치한 집에서 여자 혼자 살기란 녹록지 않으니.
처음 생각은 이 집에서 계속 살면서 옆에 컨테이너로 작업실만 조그맣게 만들 계획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허가받는 게 쉽지가 않다고. 농경지대로 보호받는 지역이라서 그렇다나? 그래서 집 뒷편 부지에 새로 건물을 올리기로 결정한 아버지. 1층엔 내 작업실과 오픈매장을, 그리고 2층에는 우리가 살 방이 있는 2층집을 지어 주신단다. 생각보다 일이 커지면서 부담도 짊어진 게 사실이다. 금전적인 부담, 그리고 공들여지어 주시는데 그에 부응해야 한다는 책임감 등.
허가받기까지 수개월이 걸렸고, 이제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주중에 두 번 정도 오셔서 뚝딱뚝딱하고 계신 아버지. 주말에 오면 조금씩 변해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바닥작업을 하고 콘크리트를 붓고 단을 올린. 집을 짓는다는 건 정말 보통일이 아니다 싶다. 카피라이터라든지, 조각가라든지, 동화작가라든지, 또 내가 하고 있는 잼머 일이라든지 세상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은 많고 많지만 나는 집을 짓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창조적인 사람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봤을 땐 몰랐는데 들여다보니 보통 섬세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대충 감으로가 아닌, 정확한 단위 면적에 따라 도면도를 그리고, 또 법적인 허가 절차를 밟고, 인부를 고용하고 중장비를 대여해서 작업을 진행하고... 건축의 과정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예상보다 수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거칠기만 한 게 아니라 정교한 작업이다. 음반 위에서 가사와 멜로디를 만드는 작사가 작곡가만큼이나.
오늘은 일요일인데도 부산에서 새벽 6시부터 오셔서 처음으로 작업하시는 모습을 봤다. 높은 단을 낮추고 평탄화 작업을 한다고. 6톤 포크레인 굴삭기가 흙을 퍼면 덤프트럭이 실어다 나르길 수십 번. 그리고 근처에서는 아버지가 수시로 오가며 체크 중이신 현장. 오늘 최저기온 0도인 한파의 날씨인데ㅜㅜ 며느리는 옆에서 우주랑 놀아주고, 이따금 커피 한잔씩 타드리는 것 외엔 할 수 있는게 없네 :')
오전 작업이 끝나갈 무렵,
우주를 데리고 뚝방길을 거닐다 왔다.
이제 줄 없이도 나름 보폭 맞춰서 잘 따르는.
돌아오다 집 앞 큰 감나무에 익은 홍시들이 눈에 밟혀 말했더니 아버지가 감 따는 기다란 망을 주셨다. 그걸로 남편은 열심히 따고 나는 우주랑 나무 아래서 떨어지는 감 받아서 먹고 놀았다 허허
예상치 못한 공사로 남편은 오늘 가려했던 등산을, 나는 명화 그리기 시간을 못 가졌다. 그래도 시골 감따기 체험(?)도 처음 해보고. 추어탕을 안 좋아하고 잘 못 먹는 내 입에도 맛있는 추어탕집도 새로 알았고. 또 우주랑도 한 뼘 더 친해지고. 잠깐 드라이브 차 내가 아주 좋아하는 방앗간에 들러 인생라떼와 쿠키도 먹고. 계획에 없던 일요일이면 또 어떠랴. 나름 의미 있고 좋다. (내일 아침 첫차로 또다시 도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건 슬프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