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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Oct 17. 2021

집을 짓는 일

아무것도 없는 빈 땅에 집이 지어지기까지.




경상남도 함양에 와서 지낸 지 어느덧 반년.

그동안 남편과 나는 주말마다 임시집에서 지내왔다.

결혼하고 첫 일 년은 대구 신혼집에서,

그리고 올해 2월 함양으로 이사와

시아버지께서 시할아버지를 위해

십 년 전 지어두신 집에 우리가 살게 되었다.

함양에서 1/2살이를 해보니

생각보다 더 시골살이에 잘 맞았다.


이사오던 날, 신나게 창틀 닦던 나


함양으로 완전히 이사를 와 하던 작업실을 계속 운영하기로 한 결정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물론 남편도 함양으로 발령 난다는 전제조건 하에 가능한 이야기지만. 도시에서는 몰라도 시골에서는, 특히 마을 아닌 외딴곳에 위치한 집에서 여자 혼자 살기란 녹록지 않으니.


처음 생각은 이 집에서 계속 살면서 옆에 컨테이너로 작업실만 조그맣게 만들 계획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허가받는 게 쉽지가 않다고. 농경지대로 보호받는 지역이라서 그렇다나? 그래서 집 뒷편 부지에 새로 건물을 올리기로 결정한 아버지. 1층엔 내 작업실과 오픈매장을, 그리고 2층에는 우리가 살 방이 있는 2층집을 지어 주신단다. 생각보다 일이 커지면서 부담도 짊어진 게 사실이다. 금전적인 부담, 그리고 공들여지어 주시는데 그에 부응해야 한다는 책임감 등.


허가받기까지 수개월이 걸렸고, 이제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주중에 두 번 정도 오셔서 뚝딱뚝딱하고 계신 아버지. 주말에 오면 조금씩 변해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바닥작업을 하고 콘크리트를 붓고 단을 올린. 집을 짓는다는 건 정말 보통일이 아니다 싶다. 카피라이터라든지, 조각가라든지, 동화작가라든지, 또 내가 하고 있는 잼머 일이라든지 세상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은 많고 많지만 나는 집을 짓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창조적인 사람이라 생각한다.


몇개월 후면 이층집이 된다니.


멀리서 봤을 땐 몰랐는데 들여다보니 보통 섬세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대충 감으로가 아닌, 정확한 단위 면적에 따라 도면도를 그리고, 또 법적인 허가 절차를 밟고, 인부를 고용하고 중장비를 대여해서 작업을 진행하고... 건축의 과정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예상보다 수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거칠기만 한 게 아니라 정교한 작업이다. 음반 위에서 가사와 멜로디를 만드는 작사가 작곡가만큼이나.


맨 처음의 도면도.


오늘은 일요일인데도 부산에서 새벽 6시부터 오셔서 처음으로 작업하시는 모습을 봤다. 높은 단을 낮추고 평탄화 작업을 한다고. 6 포크레인 굴삭기가 흙을 퍼면 덤프트럭이 실어다 나르길 수십 . 그리고 근처에서는 아버지가 수시로 오가며 체크 중이신 현장. 오늘 최저기온 0도인 한파의 날씨인데ㅜㅜ 며느리는 옆에서 우주랑 놀아주고, 이따금 커피 한잔씩 타드리는  외엔  수 있는게 없네 :')



이른 아침부터 중장비들이 오가고 있는 현장


오전 작업이 끝나갈 무렵,

우주를 데리고 뚝방길을 거닐다 왔다.

이제 줄 없이도 나름 보폭 맞춰서 잘 따르는.

돌아오다 집 앞 큰 감나무에 익은 홍시들이 눈에 밟혀 말했더니 아버지가 감 따는 기다란 망을 주셨다. 그걸로 남편은 열심히 따고 나는 우주랑 나무 아래서 떨어지는 감 받아서 먹고 놀았다 허허



가을 햇살 아래 주렁주렁 열린 감


요며칠 홍시, 사과에 빠진 귀염댕씨 ¨̮


예상치 못한 공사로 남편은 오늘 가려했던 등산을, 나는 명화 그리기 시간을 못 가졌다. 그래도 시골 감따기 체험(?)도 처음 해보고. 추어탕을 안 좋아하고 잘 못 먹는 내 입에도 맛있는 추어탕집도 새로 알았고. 또 우주랑도 한 뼘 더 친해지고. 잠깐 드라이브 차 내가 아주 좋아하는 방앗간에 들러 인생라떼와 쿠키도 먹고. 계획에 없던 일요일이면 또 어떠랴. 나름 의미 있고 좋다. (내일 아침 첫차로 또다시 도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건 슬프지만)


오늘 원두 회원 카드도 발급받았다. 사랑해 마지않는 방앗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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