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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Oct 13. 2021

생애 첫 반려견을 임시보호하다.

그것도 무려 진도견 두 마리를.




시골살이에 대한 로망처럼

반려견을 키우는 것에 대한 로망도 어린 시절부터 있었다. 말티즈, 푸들, 포메라니안처럼 많이들 키우는 소형견엔 관심이 없었고 오직 대형견.

골든리트리버 러버.

아주 어릴 때에는 진돗개를 좋아했다.

옛날에 집에 있던 두꺼운 진돗개 도감 책을

수시로 펼쳐 봤던 기억이 난다.


엔프피가 인간골든리트리버라서 골든리트리버를 좋아하나(의문)


아무튼, 어릴 땐 부모님의 반대와 더불어

아파트생활로 키울 수가 없었고

5년 전 주택으로 이사온 후 진지하게 고민해보았지만 식구들은 낮시간에 집을 비워서 없고,

집과 일터가 가까운 내가 도맡아 키우자니

털이 많이 빠지는 반려견을 위생상 차마 키울 수가 없었다. 식품제조 일을 하기 때문에.


골댕아 골댕아...ᰔᩚ



그러다 올해 초 함양으로 이사를 왔고.

아직 1/2살이 하고 있어 완전히 정착한 후에

키울까 50 vs 말까 50 고민을 하고 있는 와중에

갑작스레 진도견 두 마리를 키우게 되었다.

사연인즉슨, 남편의 당숙어른이 키우시고 계셨는데

건강문제로 병원에 입원을 하시게 되면서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당장 밥 주기엔 접근성이 우리 집이 편리하다고 시아버지께서 데려다 놓은 것이다. 어느 날 주말에 갔더니 뒷마당에 백구와 흑구(인 줄 알았는데 흑구가 아니라 블랙탄(네눈박이)이라 한다.)가 있었다.


3~4미터가량의 긴 줄로 집 뒤를 활보하고 있던 두 마리. 이름은 태양이와 우주. 아주 장꾸들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직 6~8개월 정도밖에 안된 개린이들이라서. 얼마나 호기심 넘치고 에너지 감당 안될 때인가.


그때부터 개초보 집사의 육아가 시작되었다.

긴 줄이긴 하지만 어쨌든 메여있으니 얼마나

갑갑하겠나 싶어 아침저녁으로 집 앞 뚝방길 산책도 시키고, 원래 쓰던 체인 줄은 개들도 우리에게도 무겁고 불편하니 편한 리드줄을 사 오기도 하고.

사료가 똑 떨어져 야밤에 대형마트와 식자재마트 등을 전전하며 진도견 용 사료를 구해오고.

또 사료만 먹으면 심심할까 봐 동물용품샵에 가서

단호박큐브와 오리육포 간식도 사 오고.

모든 것이 난생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남편도 나도.


얼마나 초보였냐면

처음 산책할  원래는 줄을 짧게 잡고 우리가 걸으면 걷고 멈추면 멈추고, 그렇게 철저히 주인 위주의 산책 훈련을 시켜야 하는데 우린 그저 얘네가 걷고 싶으면 걷고, 멈추면 멈추고, 뛴다 싶으면 따라 뛰고. 태양이와 우주가 시키는 대로(?) 하는 집사들이었다^^


첫 주말 동안 아침저녁 끌려다니는 속수무책 산책에, 만 보 이상 걷고 직후에 하혈을 했다. 산부인과 갔더니 원장님이 격한 운동이나 많이 걸었느냐고 물어봤는데 개들 산책시키느라 그랬다고는 차마 말 못 했지(...)


개썰매 타듯 끌려가는 초보집사들^^


하루는 심심할까 봐 소리 나는 고무공 장난감이랑 치석에 좋다는 럭비공을 사왔다. "태양아 물어와!" 하고 던지면 물어서 가지고 올줄 알았지만 문 채 도망가고, 헝겊 럭비공은 입에 문지 1분도 채 안돼서 아예 끊어져 만신창이가 되었다.....good-bye


초토화 현장^_^


그리고 줄에 메여있어 갑갑하다 싶어서 마당에서 한 번 풀어줬더니, 풀어주자마자 자기네들끼리 쏜살같이 마당 밖으로 나가더니 뚝방길 저 멀리 달린다. 귀소본능이 뛰어난 진돗개이니 큰 걱정은 안 했지만 혹시나 사람이나 차 마주칠까 봐, 사고 날까 봐 돌아오기까지 마음 졸였다.


돌아와 이 천방지축들아..ㅋㅋㅋㅋㅋ


나중에 강형욱이나 이찬종 훈련사의 유튜브 영상들을 찾아보고 얼마나 우리가 무지했는지를 깨달았다. 산책은 개들이 본능대로 천방지축 뛰어노는 것이 아닌, 주인과의 교감을 하고 훈련을 하는 시간이라는 것.


유튜브로 공부하고, 나름의 앉아&기다려 훈련도 시켰다. 가르치기엔 조금 늦은 시기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워낙 똑똑한 진도견이라 습득을 금방 했다. 문제는 다 알면서도 자기들이 하고 싶을 때 내킬 때만 한다는 거지만(절레절레)


특기 : 세상 무해한 표정으로 연기하기.                                                 "내가 모요...?"


블랙탄(네눈박이)인 태양이는 수컷, 아마도 생후 8개월. 아주 아주 호기심 많고 장난도 많다. 뭣보다 질투가 많아서 자기한테만 관심을 줘야 한다. 우주한테 관심을 보인답시면 달려들어 우주를 물고, 으르렁 짖고 난폭해진다. 백구인 우주는 암컷, 생후 6개월 추정. 역시나 호기심 많은 장꾸. 단, 엄청 똑똑하다. 눈치도 빠르고, 교감도 잘 된다. 말을 다 알아듣는 것 같다. 줄에 메여있을 땐 슈렉 고양이 같은 눈빛을 보낸다. 낑낑거리고 애걸복걸하다가 마음 짠해져서 마당에 풀어 뛰어놀게 하면 이제 우리는 아웃 오브 안중. 불러도 안 온다 치사한 녀석.

그래도 웃상이 좋아서 줄은 안 메여놓고 싶다. 집 앞이 바로 도로가만 아니라면, 대문에 울타리라도 있으면 풀어놓겠건만 아쉽다.


이제 제법 산책이 잘 되는 사이. / "엄마 잘 따라오고 있어요?"



뱃속에 차밍이를 품고 있지만 임시 개집사로서 두 마리의 진도견을 돌보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기도 마찬가지지만 동물 역시 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이니 그들이 하는 눈빛이, 표정이, 몸짓이 어떤 의미인지 세심하게 살피고 배워야 함을 깨달았다.


그 와중에 사건도 있었다. 바로 태양이의 가출사건. 동네 떠돌이 암컷 개가 자꾸 와서 유혹하는 거 같더니 둘이 사달이 나서 줄도 풀고 야밤에 도망을 쳤다. 금방 돌아올 줄 알았던 태양이는 며칠이 지나고서야 돌아왔다. 그런데 당숙어른 말로는 상습범이란다. 자꾸 집 나가 애먹인다고, 그리고 우주를 못살게 괴롭힌다고 결국 시아버지께서 맨 처음 주인에게 보내버리셨는데, 막상 주말마다 늘 반겨주던 태양이가 없으니 눈에 밟히고 아쉬웠다. 대신 둘에서 하나가 되어 외로울 우주한테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있는 중.


나의 태교여행 겸 생일여행으로, 그리고 다녀오니 이틀간 쏟아지는 폭우로 지난 주말엔 우주 산책을 시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근데 어쩌겠어 너 비 맞는 거 너무나 싫어하잖아 :') 오늘 아침 대구 돌아오기 전 작별인사하는데 축 처진 귀에 또 슈렉 고양이 눈을 발사하는데 가여웠다. 돌아오는 이번 주말엔 화창하다고 하니 뚝방길 산책 자주 시켜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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