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원 Nov 01. 2021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지만

현실은 맥시멈리스트의  출산용품 입문기




뜻밖에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온라인이라면 더욱더.

평소 엄마에게도, 남편에게도 자주 듣는 말 한가지


"제발 좀 사."

꼭 필요한 거 아니면 사는 걸 안 좋아하는 데다가

이것저것 고르고 따지는 과정이 나에겐 굉장한 피로감으로 다가온다.

학창 시절엔 예쁘면 무조건 살 때도 있었는데,

가면 갈수록 물욕이 점점 더 사라지는 것 같다.

20대엔 바꿔 입는 옷에 따라 가방도,

귀걸이나 시계 등의 악세사리도 매일 바꿔가며

매치하곤 했던 나인데

요즘은 한 옷에 꽂히면 2~3일씩 입기도 하고

같은 가방으로 몇 달을 들고 다니곤 한다.

참, 머리도 일 년에 한 번 한다. 물론 한 번 파마를 하면 징하게 안 풀리는 반곱슬 머리라 가능한거지만.

한 때 절에 들어가 살아도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비구니가 되기엔 비혼주의가 안돼서 할 수 없었지만^^


법정스님의 무소유, 그리고 미니멀리즘을 지향하지만 실상은 가지고 있는 물건들 버리는 기본적인 것부터 하지 못한 채 다 끌어 안고 가는 맥시멀리스트인 건 함정 :P


그러니 임신 8개월, 30주 차가 되도록

내가 산 출산용품이라고는

브라운체온계 하나가 유일한.

그것도 육아 일 년 선배인 친구가 친절하게 링크까지 보내주면서 이건 필수템이니 사두라고 알려줘서 처음 핫딜이라는 걸 해보았다.


그러다 더 배부르고 몸 무거워지기 전에 이제는

슬슬 준비해야 된다는 조언을 받고서 지난주부터

부랴부랴 벼락치기 공부를 하고서 쇼핑리스트를 정리해나가는 중이다. '장비 없는 육아는 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육아는 템발이라고. 심지어 잘 들인 젖병소독기나 분유제조기 등은 도우미이모님이라고도 불린다. 그래도 과소비나 불필요한 것은 사지 말고 최소한으로만 준비하자고 결심했다.


아이 장난감에 대해서는 오래전 ebs 아이 교육 관련 다큐를 보고 충격을 받은 이후로 가치관이 생겼다. 북유럽 쪽에서는 놀이터에 가면 무색 무형태의 바위 하나, 나무둥치 하나 이렇게 놓여 있다고 한다. 아이들은 나무둥치를 올라타고서 "저는 지금 하마 위에 올라가 있어요!" 돌덩이 위에서 "이건 하늘을 나는 초록 거북이에요!"라는 식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놀이터에 가면 형형색색의 놀이기구로, 미끄럼틀은 올라가서 타고 내려오고, 시소는 양쪽에서 왔다 갔다 해야 하고... 법칙처럼 놀이방식이 정해져 있고 기구마다 롤이 있다. 과연 이런 곳에서 아이들의 창의력이 발달될 수 있겠냐는 것.


놀이터뿐만 아니라 장난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너무 많으면 생각하는 힘이 약해진다. 한정된 장난감만 있는 환경에서는 아이들이 새로운 놀이 기구를 자꾸 궁리하게 될 수 밖에 없고, 저마다의 노는 방법을 개발해내게 된다. 나는 어릴 때 주로 친오빠랑 산속 기지를 '본부'라고 부르며 숨바꼭질하며 놀고, 책을 쌓아 탑을 만들고, 빨대를 연결해서 공원 분수대에서 낚시를 하고 놀곤 했다. 그때의 경험들이 나의 창의력에 적지 않은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문득 떠오르는 영화 '카드로 만든 집'.

자폐 성향의 소녀가 건축가인 어머니의 도움으로 카드로 집을 만들며 조금씩 장애를 극복하는 내용의 영화인데, 아주 어릴  봤는데도 그때의 센세이션이란. 임신 중에    야겠다.


결론은 완구는 거의 사지 않을 것이란 것이다.

책은 가까이 해주되, 장난감은 가급적 사지 않고

스스로 놀거리를 찾아 놀줄 아는 아이로 만들어야지.


 <카드로 만든집(1993)>                                                                      영화 뽀네뜨 생각나는 소녀


어쨌든, 그럼에도 사야 하는 것은 사야지.

주말 사이 당근마켓으로

키워드 알림 등록해놓고 한참 기다린

스탠딩 욕조를 업어 왔다.

임신 전부터 작업실에 두고 싶어 했고,

출산 후엔 기저귀 보관함으로 쓰면 되겠다 싶은  

360도 회전하는 트롤리도 새것의 1/3 가격에 득템.



(좌) 스탠딩욕조 / (우) 기저귀보관함


그러고 나서 머지않아 베이비페어가서

구매하려고 했던 신생아 필수용품 5가지

베이비 네일케어세트(손톱깎이, 손톱가위, 핀셋, 네일파일), 아기 면봉, 아기 지퍼백, 수유패드, 젖병 세척솔과 소독집게 등등. 마침 블랙프라이데이를 맞아 50% 넘게 세일을 하길래 홀린 듯 주문을 해버리고서는 남편에게 자랑을 했다.

"나 쇼핑 왕창 했어"

그러며 산 것들 알려주니 돌아오는 말은,

"뭐 대단한 거 산 줄 알았더니ㅋㅋㅋㅋㅋㅋ

유모차 정돈 사줘야지."라며 비웃는 그.

생각해보니 주문한 총금액은 겨우 5만 원 남짓이었다. 어휴 그래. 내가 쇼핑왕은 되지 못하지 암요.


그래도 배 속에 아기를 통해

귀차니즘 내가 이벤트도 많이 응모하고

핫딜이라는 것도 처음 해보고

가격비교를 하고 쿠폰을 써서 할인받아 사는

온라인 쇼핑에도 입문을 했다.

아마 차밍이가 태어나고 나면 그때는

마켓컬리나 쿠팡로켓배송처럼 새벽 사이 문 앞에

두고 간다는 그런 신세계도 경험해보겠지?


요즘은 하루만에 온다는게 놀랍다.


베이비페어도

1. 사람에 치일 것

2. 막상 봐도 살게 없을 것

3. 온라인이 더 저렴할 것

이런 이유들로 자꾸만 갈팡질팡 마음이 바뀌어서

그냥 우리 가지 말자~

했더니 끄질고 간다는 남편^^

그래 임산부라면 베이비페어 한 번쯤은 경험해봐야겠지. 빈손으로 돌아오는 한이 있어도.


그리고 아마 나중에 기저귀나 세탁세제, 바디워시&로션 등의 아기 소모품들은 내가 아니라 남편이 구매 담당이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나보다 쇼핑하길 좋아하기도, 평소 쟁임병이 있어 한 번 살 때 할인받아 왕창 구입해두는 스타일의 그라서. 이럴 땐 완전히 나와 다른 남편이 있어 편하고 좋다.


끝맺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오늘의 두서 없는 글은, 그냥 이런대로

두서 없이 마쳐야겠다.



삶을 가볍게 만드는 책 6권





작가의 이전글 하릴없이 계절은 스쳐 가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