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원 Nov 22. 2021

그리하여 그들은 지리산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우리가 사랑한 지리산


 2014년,
산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잠시 손을 놓기도 했지만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곳에서
마침내 다시 만났습니다.
이제는 인생이라는 산을
함께 오르기로 했습니다.

-결혼식 중에서-

   

등산화에 배낭가방 메고 찍은 웨딩사진



그와 그녀는 산에서 처음 만났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던 그녀는 클라이밍을 하고 싶어 네파에서 모집하는 아웃도어스쿨에 지원을 했다. 부산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그는 산을 오르기 위해 지원했다. 그렇게 둘은 서울의 도봉산에서 처음 만났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일박 이일 동안 둘은 서로    섞어보지 않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얼마  단체 채팅방에서 그의 프로필 사진   정상석이 궁금해진 그녀는 "거기 어느 산이?”라는 말로 그에게 처음 말을 걸었다.

아웃도어스쿨 단체사진


메신저로 주고받던 연락은 그 후 통화로 이어졌고, 또 때로는 편지로도 이어졌다. 그리고 한 달 후 그가 있는 부산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생각보다 교집합이 많았다. 광고홍보학을 전공한 그녀, 광고를 좋아해서 광고동아리에서 회장까지 맡고 있던 그. 교환학생을 가려고 토플시험을 치고 준비했던 그녀, 얼마 뒤 핀란드로 교환학생을 갈 예정인 그.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을 좋아하고 산에 오르는 것을 사랑하는 그녀와 그. 어쩌면 당연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연인이 되었다.

8월, 그는 쏟아지는 별을 보여주겠다며 그녀를 지리산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이날의 산행이 앞으로 이들을 등산커플, 상아부부로 만들 게 될지 그때 두 사람은 전혀 알지 못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그녀는 오르기를 힘들어했고, 그럼에도 그는 보폭을 나란히 하며 그녀의 속도에 발맞춰 걸어주었다. 산행길에서 나이 많은 중년 부부와 마주쳤다. "나는 부부간에 저렇게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거 참 좋은 것 같아." "나이 들어서도 저렇게 손 놓지 않고 걷는 게 내 로망이야." "너도? 나도!" 등의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천천히 더 깊게 알아간 시간.

해지기 전 도착한 장터목 대피소. 기억 속 그날의 그곳은 몹시 추웠고, 사람들로 비좁았으며, 그 틈에서 둘은 낯선 장소로 떠나야 하는 이유를 다룬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보다 졸다 하면서 밤은 깊어져 갔다. 다음날, 동이 채 다 트기도 전에 그와 그녀는 서둘러 다시 채비를 했다. 앞의 사람들을 따라 헤드랜턴 빛에 의지해 걸음을 계속 이어나갔고, 마침내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천왕봉에 다다랐다. 그날 해발 1,915m 위에서 보았던 강렬한 해는 두고두고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기억 속에서만 머물 뻔했던 그날의 두 사람 모습은 천왕봉을 막 하산하는 길에 만난 어느 사진 기자분이 건넨 말, "두 분 보기 좋은데 사진 한 장 찍어드릴까요?” 덕분에 지리산에서 함께 찍은 유일한 사진으로 남게 되었다.

2014년, 지리산에서


그해 겨울, 그는 예정대로 교환학생을 하러 핀란드로 떠났고 둘은 자연스레 이별하게 되었다. 둘은 그게 마지막일 줄 알았다. 그러나 4년 후, 재회를 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다시 연인이 되는 것도 물 스며들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렇게 두 번째 만난 두 사람은 그사이 공통점이 더 생겼다. 바로 자연주의 등산을 지향한다는 것. 플로깅(plogging) 하며 산행을 하는 등산 크루 '쓰담쓰담(쓰레기를 담다, 산을 쓰다듬다)'을 기획하던 그. 그리고 LNT(Leave No Trace)로 흔적 남기지 않는 트레킹과 등산을 하고 있던 그녀. 지리산만이 유일하게 함께 오른 산이었던 두 사람은 다시 만난 2018년부터 2년간 50여 번이 넘는 산행을 함께 했다.

제주도 한라산
설악산 대청봉


잼 만드는 일을 하는 여자와 산이 좋아 전국의 산에서 하는 일을 하게 된 남자는 평생을 약속하며 2020년, 결혼을 했다. 연애 시절, 그를 따라 처음 함양에 와본 그녀는 지리산이 보이는 이곳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이곳에서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면서, 산양도 한 마리 키워 산양유로 잼을 만들고, 수제 양조장을 만들어서 막걸리를 만들고 술빵을 빚으면 좋겠다.'라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 같은 꿈을 혼자서 꾸기도 했다. 가끔은 친구들을 불러 모아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지리산 예찬을 펼치기도 했다.

지리산 둘레길에서, 단체로
플로깅하면서


대구가 고향인 그녀와 부산이 고향인 그. 게다가 터전이 중요한 자영업을 하는 그녀와 몇 년마다 전국을 돌며 근무를 하는 그. 두 사람이 온전히 함께 살게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런데 꿈같은 일이 일어났다. 결혼 후 일 년이 지나고, 지리산 자락에 살게 된 것이다. 막연하게 결혼을 하면 살고 싶다 생각한 지리산 권역. 경남 산청·함양·하동군과 전남 구례군, 전북 남원시, 그중에서도 그의 부모님 고향인 경상남도 함양에서.

연인이었을 때 주말커플에서 결혼 후 주말부부로 살림을 시작한 둘. 그녀는 대구에서 그는 정읍에서, 오작교를 건너듯 중간지점인 함양에서 만났다. 그러다 다가오는 2022년엔 주 7일을 완전히 함께 살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함양 발령과, 그녀의 임신출산이 불씨가 되어.

한 사람과 두 번의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된 것도, 살면서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함양에 살게 되어 공기 좋은 지리산권에서 새하얀 진돗개와 곧 태어날 아기와 함께 살아갈 이야기. 이 모든 소설 같은 일들은 어쩌면 2014년 8월 28일 그날의 지리산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랑했던 지리산, 우리가 사랑하는 지리산, 우리가 사랑해나갈 지리산. 앞으로의 우리 두 사람 아니 뱃속의 차밍이까지. 세 사람의 삶은 지리산을 빼곤 설명할 수가 없을 거다. 그리고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는 이렇게 쓰여질 예정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지리산에서 잘 살았답니다.



우리가 지리산을 사랑하는 이유





본 글은 지리산 국립공원 전북사무소 X 지리산이음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전국민 추억소환 프로젝트 <우리가 사랑한 지리산>에 응모한 에세이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