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일의 엄마 라이프
50일의 기적?
보통 100일의 기적이라고 한다.
100일이 되면 잘 자지 않던 아가들이 잘잔다고.
근데 생각보다 통잠이 빨리 찾아왔다.
밤새 한두 시간에 한 번씩 깨서 모유를 찾곤 했는데
대구 친정에서 함양 우리 집으로 오고 난 뒤론
한 번 많아야 두 번 일어나 새벽 수유를 하게 한다.
그래서 처음에 조리원에서 나와서는
많게는 하루 17번 넘게 수시로 수유했는데
이제는 하루 평균 6~7회 먹는다.
50일을 며칠 앞두고부터였고
보름 넘게 이어지고 있으니
나름의 50일의 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그제는 늦게까지 밤잠 못 들어
아빠를 둥가둥가 인간 바운서 하게 만들더니
느지막이 잠들어선 7시간 통잠 자준 기적 같은 일이.
아 물론 하루 8시간, 10시간 자주는 아가들도 있지만 내 기준에선 6시간만 넘어도 통잠인 걸로 :>
3유 3무
아들은 3유 3무 즉,
잘 먹고, 잘 싸고, 잘 노는 아기이고
잘 안 울고, 안 예민하고, 원더윅스 없는 아기이다.
-잘 먹는 아기
출산하면서 나의 태반유착+극심한 빈혈로
태어난 날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로 보는 만남은
남편만 갔고 난 출생 3일째가 돼서야 처음으로
마주하고 안아볼 수 있었다.
혹시나 내가 또 실신할까 봐 우려되었던
병원에서는 수유도 못하게 했는데
거듭 하겠다고 조르고 또 졸라
결국 수유실에서 안아 들고 처음으로 물렸다.
그 당시 아직 나오지 않는 모유를 힘차게 빠는
아기를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동시에 휘몰아치는 생각 하나.
널 위해서라면 대신 죽을 수 있어.
스쳐 지나는 그 순간의 감정일지 모르지만
1순위가 나 자신이었던 내가 참 많이 변했다 싶던.
그렇게 아들에게 물린 날 조리원에 들어갔다.
샘물 솟듯 조금씩 퐁퐁 나오던 모유는 며칠 지나지 않아 콸콸 나왔다. 일명 샤워기처럼 뿜어져 나오는 사출도, 나오는 양이 만들어지는 양을 못 따라가
열 오르고 가슴이 돌덩이처럼 굳는 젖몸살 직전의 상황도 겪어서 환상 속의 모유수유는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실감했던.
그럼에도 양이 많은 나의 모유와
신생아답지 않게 처음부터 빠는 힘이 넘치는 아들
조합으로 지금껏 쭉 완모의 길을 가고 있다.
-잘 싸는 아기
대소변을 정말 잘 쌌다. 초반엔 하루에 몇 번씩 황금똥을 왕창. 너무 자주 싸는 탓에 설사가 아닌가 했지만 모유 먹는 아가들은 하루에 10번 넘게 싸도, 일주일에 1번만 싸도 모두 정상 변이라고 한다. 분유처럼 눈에 보이는 양을 먹는 게 아니다 보니 도통 잘 먹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매일 2~30g 이상씩 몸무게가 늘거나, 푹 젖은 기저귀가 하루에 6개 이상 나온다면 잘 먹고 잘 크고 있는 거라고.
-잘 노는 아기
혼자서도 잘 논다. 조리원에 있을 때 수유시간에 만난 아들은 툭하면 휙휙 고개를 돌려가며 주변을 살피고 수유실 벽에 있는 토끼 그림을 한참 바라봤다. 퇴소하던 날 친정에 오자말자 임신기간에 만들어놨던 흑백모빌을 아기침대에 달고 흑백 초점책을 옆에 놔둬줬다. 그랬더니 30분을 바라보는 게 아닌가. 점점 늘어서 한 달이 안됐을 때부터 길게는 한 시간씩 쳐다보고 혼자 놀았다. 참 빠른 아가라고 산후도우미 이모님도 신기해했다.
-잘 안 우는 아기
잘 안 울었다. 태어날 때 귓속을 때려 박던 우렁찬 목청에 손주가 조리원 선생님들을 괴롭힐 것을 걱정한 시어머니는 입소날 떡을 보내주셨을 정도. 근데 웬걸, 수유하러 갈 때마다 울고 모유가 안 나와 짜증 내는 아가들 사이에서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다. 하루에 서너 번 면회하러 갈 때면 항상 자거나, 멀뚱멀뚱 쳐다보거나였다. 결국 2주 동안 울음소리 한 번 못 듣고 퇴소했다. 그 후로 아들은 여전히 잘 울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친정에서 3주간 지내면서 친정아빠가 "아기 키우는 집 맞냐. 어떻게 이렇게 조용하니" 하셨다. 3주가 지날 무렵, 잠투정이 심한 날에는 한 번씩 울음을 들려준더. 짧고 굵게. 아기들에게 잠이 오는 건 멀미날 때랑 비슷한 느낌이란다. 얼마나 괴롭고 짜증이 나겠나. 그걸 알고부터는 잠투정 부릴 때 우는 건 마냥 짠하고 다 받아주고 싶다.
-안 예민한 아기
신생아들 평균 하루에 기저귀 20개 이상 쓴다고 한다. 소변은 몇 번 싸면 갈아주면 되지만 한 번만 싸도 찝찝하다고 우는 아기들이 많다고. 근데 아들은 기저귀가 젖어도, 대변을 왕창 싸도 티를 안 낸다. 두세 시간에 한 번씩 교체해주는 수밖에. 처음에는 안 예민한 아들에 무딘 아빠 엄마라서 하루에 몇 번 안 갈아줄 때도 있었다. 새벽에 가는 걸 놓치기라도 하는 날엔 다음날 아침에 갈아보면 몇 번을 싼지도 모를 기저귀는 축축해지다 못해 1kg로 느껴질정도로 묵직하다. 그럼에도 여태 찝찝해하지 않은 너를 무던하다고 할지 둔하다고 해야 할지..^^
-원더윅스 안겪는 아기
이토록 순한 아기일지라도 걱정되는 게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원더 윅스'. 아기의 신체적, 정신적 급성장기로 이유 없이 울고 보채는 시기이다. 피해 갈 수 없다고 하는 원더 윅스 기간이 찾아왔고 어느새 지금은 2주의 원더데이를 지나고 있지만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약간 뭘 아는 듯이 꾀가 늘었고, 더 놀고 싶어 하는 탓에 잘 안 잔다는 것 정도?
그래도 세상에 쉬운 육아란 없다. 통잠을 자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새벽에 한두 번씩은 꼭 깨서 먹여야 하고, 또 수유했다 하면 30분 먹고 20분은 트림시키고 그러다 보면 1시간이 훅 지나간다. 낮 시간 아기가 잘 때 나도 같이 자고 싶지만 그때만이 설거지나 빨래, 청소기를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에 잠은 항상 부족하다. 끼니 챙기기 쉽지 않지만 모유수유를 위해 거를 수 없는 밥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흡입하곤 한다. 게워낸 토가 묻어서, 똥이 새어 나와서, 씻겨야해서 옷은 하루에 두 세벌은 갈아입힌다. 잠투정으로 인해 인간 바운서가 되어 안고 둥가 둥가하며, 등 센서가 생기기 시작한 이후 낮엔 인간 아기침대가 되어 품에 안아 재운다. 새벽에 수유하다 잠들어서 눈 떠보니 수유 의자에 기대앉은 채 한두 시간이 지나있는 적도 몇 번이나 있다. 그나마 남편이 틈틈이 트림맨이 되어주고, 혹여나 내가 끼니 못 챙겨 먹을까 점심시간 회사에서 와서 같이 먹어주고, 저녁엔 셰프가 되어 언상밀을 제공하고, 또 아들 목욕도 함께 시켜주고, 밤잠 재우기 전담도 해준다. 그렇게 함께하는 육아가 있어서 버틸 만하다. 살면서 출산과 육아는 언제가 되었건 꼭 해보고 싶었던 경험이기에 도장깨기처럼 미션해내는 성취감이 든다. 그래서 앞으로 다가올 하루하루가 겁도 나는 한편 기대도 된다. 70일, 80일, 100일... 아들도 자라고 나도 자라날 테지.